[종합]'횡성한우' 2심 판사 "대법원 교조주의 빠졌다" 비판

신정원 2012. 11. 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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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글 적절성-법관윤리 부합하는지 검토"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최근 대법원의 한우 원산지 표시 판결과 관련해 2심 재판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대법원 판결 내용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대법원이 교조주의에 빠졌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판결은 횡성에서 2개월 미만 키운 한우를 횡성한우로 표기한 것을 원산지 표기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12개월 이상 키워야 원산지 표시를 할 수 있다'는 기준이 마련되기 이전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3·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대법원이 교조주의에 빠져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춘천지법 형사항소부장 당시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맡으면서 농산물품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농협조합 관계자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른 지역 한우를 데려와 2개월도 키우지 않고 도축했다면 '사육'이 아니라 단순한 '보관' 또는 '도축 준비기간'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2개월이라는 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선고에서 "다른 지역 한우를 도축하기만 한 경우 원산지라고 표기하면 원산지 허위표시에 해당한다"면서도 "다만 단기간이라도 사육했다면 일률적으로 원산지표시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육한 기간이 2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고 단순히 보관 또는 도축 준비행위에 불과하다면서 유죄라고 본 원심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통업자들이 소에게 먹인 사료, 소가 머문 장소, 소의 건강상태, 이동 후 도축까지 걸린 시간 등 '개별 상황'에 대해 더 심리해 '사육'으로 볼 수 있는지 다시 판단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소가 팔린지 6년이나 지난 지금 대법원이 요구하는 조사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며 대법원이 '불가능한 조사방법'을 제시했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명품 횡성한우에 대한 권리자와 일반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유통업자의 탈법 행위에 대해 굳이 불가능한 조사기준까지 제시하면서 무죄판결을 선고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의 형식적인 의미에만 집착하거나 죄형법정주의 또는 입증책임 이념만을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일을 크게 과장해 말함)해 사건의 본질에 맞지 않은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며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사법부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멀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설민수(43·25기) 부산동부지원 판사는 반론 댓글을 통해 "형사재판에서 죄형법정주의는 형사법을 지탱하는 마지막 대원칙"이라며 "이를 교조주의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소비자나 축산인들을 위한 광범위한 보호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법관이 임의적으로 기준을 세워 행정규제상 형사처벌을 강화해서는 안된다"고 피력했다.

한편 보수적인 법원조직 체계에서 하급심 판사가 대법원 판결 내용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 향후 대법원의 대응이 주목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제3자가 비판한 경우는 있었지만, 하급심 판사가 이렇게 학술논문 등의 형태가 아닌 반박글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며 "글이 적절한지, 법관 윤리에 문제는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jwsh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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