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배달했다는 그날 이시형 강남에 있었다"

주진우 기자 2012. 11. 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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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는 검찰에 보낸 이메일 조서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아버지가 '여러 가지 편의상 사저 부지를 먼저 네 명의로 취득해라. 사저 건립 무렵 다시 내가 재매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시형씨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알짜배기 땅을 싸게 사고, 대신 청와대는 그린벨트 땅을 비싸게 샀다. 이 거래만으로 시형씨는 15억원가량 이득을 봤다. 검찰은 시형씨가 공시지가만으로도 6억~8억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손해는 청와대 몫이었다. 청와대의 배임 혐의는 확실해 보였다. 여기서 검찰의 마법이 등장한다. 검찰은 "그린벨트에 세워질 경호동의 지목이 나중에 대지로 바뀌면 땅값이 오르게 되니 미래 수익을 고려해 시형씨 부담을 낮춰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래에 생길 국가의 이익을 시형씨에게 미리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시사IN 이명익 장남 이시형씨(가운데)가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통령이 살 집을 아들 명의로 계약했다. 아들은 어머니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1년 뒤에는 아버지에게 명의를 넘기기로 했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은 더욱 명확했다. 하지만 검찰은 "시형씨가 자기 명의로 대출도 받고 세금도 내서 명의신탁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검찰의 판단대로면 부동산실명제법의 개념이 무너진다.

이시형씨 죄 줄이려 번복 가능성

결국 지난 6월10일 검찰은 시형씨 등 내곡동 땅 관련자 7명 전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내곡동 땅 매입을 지휘한 이 대통령의 집사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에 대해 검찰은 "살펴볼 필요도 없이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각하 처분을 내렸다. '면죄부 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시형씨를 소환조차 안 한 것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송찬엽 1차장검사는 "이시형씨에게 서면을 받으니 아귀가 딱 맞아 추궁할 게 없어서 안 불렀다"라고 밝혔다.

아귀가 딱 맞는다는 시형씨의 진술. 그러나 10월25일 특검에 소환된 시형씨의 진술은 바로 바뀌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시킨 대로 돈 심부름을 했을 뿐 구체적인 사항은 알지 못한다." 이랬던 검찰조사 때의 시형씨 말은 특검에서 "명의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내곡동 땅의 실제 매입자이며 구체적인 과정을 청와대에 맡겼을 뿐이다"라고 바뀌었다. 한 부장판사는 "배임과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부분에 대한 죄를 줄이겠다는 계산에서 번복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진술을 번복했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시형씨가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씨(다스 회장)에게 빌렸다는 6억원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상은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관리인으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시형씨가 검찰에 낸 답변서 내용이다. "5월23일 내곡동 땅 매입 대금으로 6억원을 큰아버지에게서 빌렸으며, 큰 가방을 직접 들고 가서 큰아버지에게 현금 6억원을 받아 주거지에 보관했다. 큰아버지(이상은)에게서 연 이자 5%로 6억원을 빌렸으나 사저 명의가 아버지(이명박)에게 넘어간 뒤에 이자는 일괄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특검에서 시형씨는 돈을 빌린 날짜를 2011년 5월24일로 수정한다. 검찰에서는 5월23일이었다고 했다. 이창훈 특검보는 기자들과 만나 "착오에 의한 오류라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코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시형씨 측은 검찰에 낸 답변서를 청와대 행정관이 대필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형씨의 특검 진술과 지인의 말을 종합해 지난해 5월23일과 24일을 재구성해보자. 시형씨가 서울 구의동에서 돈을 받았다고 당초 진술했던 2011년 5월23일. 시형씨는 경주에 있었다. 경주 다스 본사에 출근해 업무를 봤다. 23일 밤 시형씨는 경주에서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24일 청와대에서 점심을 먹은 시형씨는 여행용 트렁크, 보스턴백, 서류가방 등 6억원을 담을 가방 3개를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서울 광진구 구의동 큰아버지 이상은씨 집으로 갔다. 당시 집에 있던 상은씨의 부인 박 아무개씨가 집 붙박이장에 있던 1만원권 5억원, 5만원권 1억원 등 총 6억원을 건넸다. 시형씨는 이 돈을 가방에 담아 청와대로 와서 김세욱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실 행정관에게 건넸다. 김 전 행정관은 내곡동 땅 매입 자금과 세금·이자 등을 처리한 담당자다. 그리고 시형씨는 청와대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사IN 이명익 이명박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 다스 회장(가운데),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특검에서의 시형씨 진술 또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찰에서 밝혔던 6억원을 담은 큰 가방은 특검에서 가방 3개로 바뀐다. 시형씨가 5만원권 1억원을 담을 서류가방과 5억원을 담을 가방 사이즈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50㎏ 넘는 돈의 무게와 부피를 가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1년 5월24일도 아니다?

이상은씨 측근은 언론과 만나 "지난 4·11 총선 때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집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해왔다.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에게 빌려준 6억원은 이 중에서 꺼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한 측근은 10월29일 < 경향신문 > 기자와 만나 "(이 회장이) 2006년부터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출금한 금액과 입금액의 차액만 10억원이 넘는다. 이 차액을 전부 현금으로 자신이 보관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형씨가 큰아버지에게 6억원을 현금으로 받았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상은씨는 "들은 게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상은씨의 부인 박 아무개씨의 최초 반응도 비슷했다. 특검의 압수 수색 과정에서 박씨는 "6억원을 내가 주었다고요? 누가 그러던가요? 모르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은씨는 주로 경주 다스 본사의 사택에 머물고 서울에는 가끔 올라온다고 한다. 서울 구의동 집에는 부인 박씨가 혼자 지내는 때가 많다. 팔순에 가까운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10억원씩 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 간다. 특검의 압수 수색 당시 이상은 회장의 구의동 자택에서는 현금 100만원가량이 발견됐을 뿐이라고 한다.

청와대와 구의동을 오가며 돈을 실어 나른 5월24일 오후와 청와대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시형씨 행적도 명확하지 않다. 시형씨 지인은 5월24일 시형씨가 청와대가 아닌 강남에 있었다고 기자에게 증언했다. 시형씨의 한 여자 지인은 "시형이는 청담동에 사는데 웬만하면 (강남구) 청담동·압구정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직장 때문에 경주에 내려가곤 했다. 시형이가 5월24일 오후에 강남에서 주식 관련 일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시형씨의 다른 지인은 "이시형이 친구들과 어울리다 학동사거리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압구정동에 있는 가라오케에 갔다. 5월24일이 특별한 날이어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5월24일에도 시형씨는 서울 구의동에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시형씨가 돈 배달을 위해 상은씨 집에 아예 가지 않았을 가능성과 6억원이 상은씨와 무관한 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라도 시형씨에 대한 재조사가 불가피하다. 청와대 출입 내역에 대한 압수 수색 역시 선택에서 필수 사항이 되고 있다. 또 시형씨에게 돈을 마련해준 김윤옥 여사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해졌다.

내곡동 사저 특검이 시작된 날 청와대 분위기를 한 청와대 관계자는 "쥐 죽은 듯 고요하다"라고 전했다. 다른 한 청와대 관계자는 "특검이 시작되자 대통령은 입을 닫고 청와대는 초상집 분위기다. 압수 수색을 의식해서인지 모두가 조용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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