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꼼수 '투표율을 낮춰라'

유혜영 2012. 11. 6. 10: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투표를 통해 뽑는 공직자는 50만명이 넘는다. 인구 1만명당 19.2명의 선출직이 있는 셈이다.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주지사는 물론이고, 각 주의회 의원, 주 검찰총장과 회계 담당자, 교육감에 보안관까지 시민이 투표로 선출한다. 공직자를 뽑는 일 말고도 주류세 인상이나 인터넷 쇼핑 세율, 초·중·고등학교 교육 프로그램,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 등 온갖 사안도 투표 대상이다. 투표로 뽑는 사람도 많고 바꿀 수 있는 사안도 많은 미국이다 보니 투표 절차나 방법도 간단하고 쉬우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각 주 의회를 장악하고 주지사 자리를 차지한 뒤 유권자 등록이나 부재자 투표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투표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흑인이나 라티노(중남미 이주민) 등 소수 인종이나 저소득층이 다른 유권자보다 투표하기가 훨씬 더 까다로워진다는 점이다.

먼저 미국에서 투표일은 법정 공휴일이 아니다. 투표가 마감되는 시간은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저녁 7~9시에 마감된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부지런히 투표장을 찾거나 근무시간 중에 짬을 내 투표장에 가야 하는데, 영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사는 곳과 직장이 멀리 떨어져 행정 구역이 아예 다른 경우도 많다.

ⓒAP Photo 이번 미국 대선의 경합주 중 하나인 오하이오 주에서 유권자들이 조기투표를 하고 있다.

둘째, 미국에서 투표를 하려면 미리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주민등록 주소지를 토대로 자동 등록이 되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10개 주에서는 투표 당일 등록을 한 뒤 곧바로 투표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다수 유권자는 선거일 전에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한다. 유권자 등록은 우편이나 온라인을 통해서 할 수도 있고 세금을 납부하면서 할 수도 있다. 유권자 등록은 대개 투표 2주 전에 마감된다. 선거 당일에 투표를 하고 싶어도 미리 등록을 해두지 않으면 투표를 못한다.

셋째, 투표용지가 복잡하다. 시민들이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건 오바마냐 롬니냐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안이 한둘이 아닌 만큼 투표용지는 무척이나 길고 복잡하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 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시 벡사(Bexar) 카운티의 경우 유권자는 59번이나 화면을 넘겨야 모든 투표를 끝낼 수 있다. 투표 관리 인력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유권자 수에 비해 전자 투표 기기나 투표소가 너무 적은 경우 서너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2004년 대선 때 오하이오 주에서는 무려 10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투표를 하는 황당한 일도 발생했는데, < 워싱턴 포스트 > 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가 오하이오 전역에서 5000~1만5000명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올해는 대부분 지역의 투표용지가 지난 선거에 비해 길어지고 투표할 내용이 많아져 유권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질 전망이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고 투표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부재자 투표와 조기투표(Early Voting) 제도이다. 특히 조기투표는 32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안착했는데, 특별한 사유가 없더라도 미리 투표를 하고 싶으면 각 주별로 정해진 조기투표 기간에 투표를 할 수 있다. 주마다 조기투표 기간은 다른데 최대 선거 45일 이전, 평균 19일 이전에 조기투표가 시작된다. 2004년에 조기투표로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는 전체 투표한 유권자의 23%였고, 2008년에는 31%였다.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조기투표를 한 셈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경합주(Swing State)인 노스캐롤라이나·콜로라도·네바다 주의 조기 투표율이 매우 높은데, 2008년 자료를 보면 각각 유권자 61%, 79%, 67%가 선거일 이전에 미리 표를 행사했다. 조기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주로 학생들이나 선거 당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 흑인과 라티노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다. 민주당은 지지자들에게 조기투표 기간에 투표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지자들을 독려하기 위해 10월25일 고향인 시카고에서 미리 투표했으며, 미셸 오바마도 부재자 투표로 이미 투표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공식 선거일에 투표를 하지 않은 최초 사례를 만들었다.

모든 유권자가 미리 등록을 해야

그런데 이런 조기투표나 부재자 투표 또는 현장 투표에 변수가 생겼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각 주정부와 주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투표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여러 제도를 금지하거나 무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선거 부정'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런 조치를 취했다. 대표적으로 공화당 출신 오하이오 주무장관 존 허스테드는 조기투표 기간이 너무 길다며 주 정부가 조기투표를 일찍 마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미국 정치에서 가장 큰 논쟁이 된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유권자 신분증 법안(Voter ID Laws)'이다.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주들에서 제정된 이 법안은 유권자 등록을 미리 한 유권자가 투표 당일 미국 정부가 발급한 자신의 사진이 담긴 신분증을 투표소에서 보여줘야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성인이 되면 주민등록증이 발급되고, 많은 국민이 여권을 갖고 있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 법안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투표를 할 때 당연히 본인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본인 확인 절차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2006년 전에는 투표를 하기 위해 사진이 있는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법으로 명시한 주가 미국에 단 한 곳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사진이 있는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제시하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유권자는 자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은행 고지서나 전기세 납부 영수증 등만 제시해도 투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2006년 인디애나 주가 처음으로 국가가 발급한, 사진이 들어 있는 신분증이 있어야 투표할 수 있다는 법을 통과시켰고 대법원이 이 결정에 손을 들어준 뒤 30개 이상의 주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이 법안이 적용될 예정이다.

공화당의 논리는 신분 확인절차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선거 부정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 뉴욕 타임스 > 는 지난 5년간 미국 법무부에 접수된 선거 부정 사례 120건 대부분이 실수로 유권자 등록 서류를 잘못 작성했거나 투표 조건을 잘못 이해한 데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2000년 이후 발생한 선거 부정 관련 사례 2068건 가운데 공화당이 우려한 이중 투표는 고작 10건이었다. 유권자 1500만명당 한 명꼴이다.

이 법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선거 부정에 대한 우려는 공화당의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뉴욕 대학 법대의 브레넌센터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미국 유권자 중 2100만명(11%)은 사진이 들어 있는 신분증이 없다. 인종으로는 흑인이나 라티노가 많고, 소득 수준으로는 저소득층이나 젊은 유권자가 많다.

문제는 필요한 신분증을 발급받는 과정도 무척 까다롭다는 점이다. 유권자 50만명은 신분증 발급 사무소까지의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도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 산다. 또 신분증 발급 사무소가 매일 문을 여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위스콘신 주 소크 카운티의 사무소는 매달 '다섯 번째' 수요일에만 문을 여는데, 2012년에 다섯 번째 수요일이 있는 달은 2월, 5월, 8월, 10월 단 네 번밖에 없다. < 뉴욕 타임스 > 는 유권자 신분증 법안 때문에 투표율이 0.8~2.4% 감소하리라 내다봤다. 1~2%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합주에서는 선거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는 수치다.

유혜영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정치경제학) /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