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의 명물 '코스모스 유람선'의 비밀

2012. 11. 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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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금체불·정리해고·불법체류…유람선 코스모스호의 비극

코스모스유람선에서 공연하고 임금 못받은 중국 서커스단원들,해고 당하고 불법체류 처지…파견 형식 고용 탓에유람선 운영사에 책임도 못 물어중부지방고용노동청·영상물등급위 등은 방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인천 월미도 앞 코스모스유람선에 모처럼 단체관광객이 들었다. 공치기 일쑤인 평일 대낮, 그것도 올 가을 들어 가장 쌀쌀했다는 지난 10월23일이었다. 고마운 손님은 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노인들이었다. 형형색색 선상 공연장이 금세 흥에 취했다. 우크라이나 무용수들이 반라로 현란한 브라질 카니발 춤을 추며 노인들을 홀렸다. 필리핀 서커스단도 갖은 묘기를 부리며 재롱을 떨었다. 여성 무용수의 풍만한 가슴팍에 1만원짜리를 찔러주며 호기를 부려본 할아버지도, 낮술 한잔 걸치고 신나게 몸을 흔들던 할머니도, 두둑한 팁을 챙긴 공연단원들도 모두 남는 장사를 한 하루였다.

코스모스유람선을 탄 뒤론 제대로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장밍을 한국으로 데려온 ㄱ기획사 사장은 "코스모스유람선이 돈을 안 주니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그는 코스모스유람선에서 일했지만, 월급은 기획사 사장한테서 받았다. 그는 처음 일부러 한국말을 배웠다. "돈 주세요." 자동으로 몇 개의 한국말을 더 익혔다. "돈 없어" "내일" "다음".

600만원 못받아 여관방에 갇힌 신세

한 달 전 코스모스유람선에서 밀린 공연비도 못 받고 쫓겨난 중국 서커스단원 3명에겐 어제보다 못한 오늘이었다. 그들은 코스모스호가 운항을 마친 즈음, 유람선을 운영하는 인천해양관광페리(주)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과 실랑이 끝에 겨우 일주일 식사비로 8만4천원을 손에 쥐었다. 1명당 하루 밥값이 4천원이다. 그나마 사장이 또 자리를 비워 밀린 월급 얘긴 꺼내지도 못했다. 선상 무대에선 관광객에게 화려한 공연을 선사하며 무대 밖에선 공연단이 임금과 식비를 구걸하게 만드는, 코스모스유람선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중국 산둥성 량산현 출신 장밍(22ㆍ가명)은 지난해 9월 코스모스유람선을 탔다. 그는 중국 서커스단에서 7년 넘게 우슈와 변검 공연을 해온 베테랑이다. 중국 서커스단에서 그는 대기업 직장인 월급에 맞먹는 3천위안(약 52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유람선을 타면 월급이 그 두 배였다. 1년 일하면 할머니, 부모님, 형, 여동생이 한데 모여도 덜 비좁은 집으로 옮겨갈 수 있을 터였다. 누구도 새로운 회사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3년 전 한국의 놀이동산에서 일했을 때도 별 탈이 없었다. 혼자 석 달 일해 부모님이 1년간 농사로 얻는 소득을 벌어갔다. 하지만 운은 거기까지였다. 코스모스유람선을 탄 뒤론 제대로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를 한국으로 데려온 ㄱ기획사 사장은 "코스모스유람선이 돈을 안 주니 기다려달라"고만 했다. 그는 코스모스유람선에서 일했지만, 월급은 기획사 사장한테서 받았다. 그는 처음 일부러 한국말을 배웠다. "돈 주세요." 자동으로 몇 개의 한국말을 더 익혔다. "돈 없어" "내일" "다음".

속이 타는 사이 지난 8월 말 비자가 만료됐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두려워 중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곧 포기했다. 그가 지난 4월 중국에서 초청한 두 후배 자오윈하오(18ㆍ가명)와 왕레이쥔(21ㆍ가명)가 눈에 밟혀서다. 중국에서 서커스 공연을 다니다 알게 된 허베이성 창저우시의 한 서커스단 동생들이었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자기 말을 믿고 한국까지 온 이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더 악착같이 "돈 주세요"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지난 9월19일 코스모스유람선 직원이 "모두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새로운 우크라이나 공연단이 코스모스유람선에 합류한 다음날이었다. 하룻만에 중국 서커스 공연이 우크라이나 춤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밀린 임금 600만원을 받으려다 작은 여관방에 갇혔다. 영영 돈을 안 줄까봐 중국으로 떠날 수도 없고, 법에 걸려 다른 곳에서 일할 수도 없다.

기획사, 민사소송 해도 대금 받기 어려워

코스모스유람선에 올랐다가 고약한 임금 체불을 당한 해외 공연단은 이들 말고도 여럿이다. 일부는 악착같이 밀린 임금을 받아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비자 만료 등으로 떠밀려 한국을 떠났다. 덩달아 이들을 코스모스유람선에 파견했던 기획사들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봤다. 건설업계의 하도급과 같은 이중적인 고용 구조 탓이다. 기획사들은 해외 공연단을 초청한 뒤 코스모스유람선과 같은 공연장에 이들을 파견해 중개수수료 수익을 얻는다. 이때 기획사는 공연장 운영자인 인천해양관광페리와는 '근로자파견계약'을, 해외 공연단과는 '공연계약'을 맺는다. 해외 공연단이 코스모스유람선에서 일해도, 그들의 사용주는 기획사란 뜻이다. 기획사는 인천해양관광페리로부터 매달 용역대금을 받으면 20~50%를 떼고 해외 공연단에 월급을 준다. 용역대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노동자인 공연단에 월급을 제때 줄 의무는 기획사에 있다. 인천해양관광페리는 기획사에 용역대금을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공연단을 책임질 필요는 없는 탓이다.

중국 서커스단을 코스모스유람선에 파견했던 ㄱ기획사 사장은 지난 2월에도 곤욕을 치렀다. 우크라이나 무용단이 공연 계약 기간이 끝나 출국할 때가 됐는데도 인천해양관광페리가 밀린 용역대금을 해결해주지 않은 탓이다. 자연히 월급도 주지 못했다. 무용단은 직접 사용주인 ㄱ업체를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로 신고했다. "무용수 6명한테 180만원씩 6개월치 월급을 해결해야 할 의무는 내게 있었다. 돈을 끌어모아도 부족해 일부를 못 주자 결국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인천해양관광페리가) 영세한 기획사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

기획사들이 원청업체인 인천해양관광페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사소송이다. 하지만 법원이 "떼먹은 용역대금을 기획사에 지불하라"고 선고하더라도 기획사가 피해액을 모두 구제받기란 어렵다. ㄴ기획사는 200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여러 러시아 무용단을 코스모스유람선에 파견했다가 1억4천만원의 용역대금을 받지 못했다. 공연단 월급은 회삿돈으로 먼저 지급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인천해양관광페리를 상대로 소송을 내 이겼다. 하지만 인천해양관광페리는 법원 판결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법인카드 등에 대한 압류를 해서야 6천만원을 변제받았다.

코스모스유람선에서 공연한 이주노동자들은 이렇듯 철저하게 방치돼왔다. 지난 8년간 국적만 바뀐 노동자들이 코스모스유람선에서 매일 네 차례씩 일주일 내내 공연 노동을 했지만 누구도 근무 여건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문을 닫기 직전인 이곳으로 계속 이주노동자들이 공급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나같이 수수방관하는 관련 기관들

코스모스유람선은 나름대로 기념비적인 배다. 2004년 8월 선상에 무대시설을 갖추고 정식 공연장 등록을 한 첫 해양관광유람선이다. 지금도 공연장 등록을 한 유람선을 보유한 회사는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배의 규모도 남다르다. 보통 1천t급 미만인 유람선들 사이에서 1500t의 위용을 자랑한다. 가장 오래되고 큰 배이다 보니 기획사들 사이에선 이 배를 운영하는 인천해양관광페리가 '슈퍼갑'으로 불릴 정도였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에 공연단을 파견하겠다는 기획사가 줄을 섰다. 그런 회사가 상습적으로 임금 체불을 유발하게 된 이유를 박아무개 대표에게 듣고자 여러 차례 사무실을 방문하고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회사의 직원이 대신 해명했다. "고의는 아니다. 돈이 없어서 용역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서해 연평해전 등으로 관광객이 줄어 영업수익은 감소하고 채무는 크게 늘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재무 상태는 최악이었다. 신용정보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인천해양관광페리(주) 신용분석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는 2009년만 해도 4억3천만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4억7천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자와 법인세 등을 빼니 지난해 순손실이 8억원이 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61%에서 382%로 급격히 높아졌다. 보고서는 "신용능력이 매우 낮으며, 현금흐름 수익성이 적자인 위험상태"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엔 각종 세금 체납과 소송건도 열거돼 있었다. 박 대표는 지난 8월 직원들의 임금을 주지 않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법인은 여러 민사소송에 휘말린 상태였다. 이 회사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기획사 대표는 "오늘이나 내일 폐업 신고를 내거나 부도 처리가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인천해양관광페리는 량옌룬이 공연을 시작한 지난해에 이미 해외 공연단 용역비는커녕 직원들의 임금 지불 능력도 상실한 '식물법인'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코스모스유람선에서 공연한 이주노동자들은 이렇듯 철저하게 방치돼왔다. 지난 8년간 국적만 바뀐 이주노동자들이 코스모스유람선에서 매일 네 차례씩 일주일 내내 공연 노동을 했지만 누구도 근무 여건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 문을 닫기 직전인 이곳으로 계속 이주노동자들이 공급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가장 무신경했던 곳이 고용노동부 산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었다. 그나마 노동청은 코스모스유람선의 열악한 고용 여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쥐고 있었다. 임금을 받지 못한 해외 공연단도, 일반 직원들도 모두 이곳으로 달려가 도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청은 서류상 사용주인 기획사만 닦달했을 뿐, 원인 제공자인 인천해양관광페리에 대해선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노동청 관계자는 "인천해양관광페리엔 도의적 책임만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청에도 도의적 책임 정도는 있었다. 해외 공연단이 국내로 들어오는 첫 관문인 영상물등급위원회로라도 코스모스유람선에 관한 귀띔만 해주면 될 일이었다. 영상물위원회는 해외 공연단이 국내의 특정 공연 장소에서 일정 기간 공연할 수 있게 추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상물위원회가 코스모스유람선이 공연 장소로 부적격하단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해외 공연단이 그곳에서 일하려고 애초에 입국하는 일은 막을 수도 있었다. 이들의 공연 추천을 받지 못하면 해외 공연단은 법무부에서 예술흥행(E-6) 비자를 받기 어려운 탓이다. 영상물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코스모스유람선과 관련한 공연 추천건이 종종 들어왔지만 (해외 공연단 임금 체불) 문제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노동부나 다른 부처에서 정보가 오는 채널이 없다"고 말했다.

침몰하는 유람선에 외국인 밀어넣은 책임

유일하게 코스모스유람선 공연장에 대한 제재 수단을 가진 인천시 중구청도 무관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인천시 중구청 관계자는 "우리는 공연장 등록만 받아줬다. 이는 신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사후에 코스모스유람선을 통제할 의무와 권한이 없다"며 책임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공연법을 보면 공연장에 대한 행정처분과 폐쇄 조처 등의 권한은 공연장 등록을 받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정기적으로 관리·감독할 방법이 명시된 건 아니지만, 제재 권한이 보장된 만큼 관리·감독의 의무도 분명히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결국 침몰하는 코스모스유람선에 끊임없이 이주노동자들을 밀어넣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단 얘기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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