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그늘'.. 내몰리는 폐지 수거 노인들 "종일 주워도 점심 한끼 못먹어" 절규

2012. 10.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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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의 여파가 폐지 수집 노인들의 생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최근 골판지 회사들이 일제히 폐지 매입 단가를 내리면서 노인들은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도 4000원을 벌지 못하는 형편이다. 여기에 실직한 40·50대까지 폐지 수집에 가세하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29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고물상 D자원. 김모(82) 할머니는 카트에 폐박스와 신문지를 겹겹이 싣고 나타났다. 김 할머니는 폐지 수집을 위해 오전 7시부터 인사동 등 종로 일대를 돌아다녔다. 고물상 입구에 설치된 철판 저울 위에 폐지가 담긴 카트를 올리자 무게는 55㎏을 가리켰다.

D자원 최영근(55) 대표는 김 할머니에게 3400원을 건넸다. 카트 무게 7㎏를 빼면 폐지 ㎏당 71원을 쳐준 셈이다. 김 할머니는 가뭄에 갈라진 논처럼 생긴 손바닥에 놓인 지폐와 동전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그는 "요즘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봐야 3000원 넘으면 잘 받는 거야.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하나"라며 탄식했다.

최 대표는 "골판지 회사나 중간업체가 단가를 계속 떨어뜨리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D자원 사무실 앞에는 29일부터 폐신문지 단가가 110원에서 90원으로 조정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폐지 단가는 고물상 기준으로 파지(박스)는 ㎏당 30∼50원, 폐신문지는 90∼120원이다. 이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단가가 떨어진 것은 파지를 최종 처리하는 골판지 회사들이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통상 고물상이 수집한 폐지는 중간업체를 거쳐 골판지 회사로 들어간다. 골판지 회사는 폐지에 수분과 오물 등을 감안해 폐지 무게를 차감하는데, 지난해까지 평균 10%였던 감량 비율이 올 여름을 지나면서 20∼30%까지 올랐다. 당연히 중간업체들은 폐지 매입 단가를 낮췄고, 고물상들은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뚝 떨어진 가격으로 폐지값을 매겼다.

한국제지원료재생협동조합 관계자는 "골판지 회사들이 불황이라고 하면서도 올해에만 1000∼1400% 넘는 이익을 냈다"며 "감량을 통해 이익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측은 지난달 국내 6개 골판지 회사를 담합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했다.

치열해진 폐지 수집 경쟁도 노인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서울 사당동 정모(73) 할머니는 지난 26일 밤 애써 모은 폐지를 도둑맞았다. 정 할머니는 "폐지 정리를 하려고 잠깐 꺼내놓은 사이 트럭을 몰고 온 사람들이 훔쳐갔다"며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 놓인 폐지를 싹쓸이한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고물상 관계자는 "최근 영세 자영업자나 실직자까지 폐지 수집에 나서고 있어 장비나 힘이 부족한 노인들은 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만난 박모(83) 할아버지는 2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매달 정부로부터 독거노인 지원비와 폐지를 수집해 모은 돈으로 생활해 왔다. 그는 "요즘은 점심은 아예 안 먹어.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이것마저 안 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라며 울먹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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