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 사형당한 북파공작원 55년 만에 무죄
'이중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한 북파공작원 심문규씨가 55년 만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심씨와 유족의 명예가 일부라도 회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22일 남한에 위장자수해 이중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1961년 사형당한 심씨의 아들 한운씨(62)가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와 한운씨의 말을 종합하면 심씨는 육군첩보부대(HID)에서 공작원 훈련을 받고 1955년 9월 북한에 갔다가 붙잡혔다. 북한은 그에게 간첩활동 교육을 시키려 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북에 귀순한 HID 대원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아버지를 찾아 부대로 온 자신의 8살 아들에게 HID가 북파공작원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 한운씨는 실제 "산 타기, 바다 헤엄 훈련 등 어린 나이에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심씨는 결국 북측의 요구에 따라 간첩 교육을 받고 1957년 10월6일 남파됐다. 그는 아들부터 찾아갔다. 심씨가 "정말로 훈련을 받았느냐"고 묻자 아들은 "그렇다"고 했다. 한운씨는 "그 길로 나간 아버지가 부대에 자수를 했다"며 "아마 나를 북한에 보낸다고 하니 살리려고 다시 오신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심씨는 그날 이후 다시 아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군은 563일 동안 심씨를 불법구금하고 심문했다. 민간인 자격으로 HID에 들어온 심씨는 일반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사건은 군 검찰로 넘어갔다.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는 사형 판결이 나왔다. 애초에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단순 간첩 혐의였다. 하지만 고등군법회의는 위장자수한 것으로 판단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61년 5월 심씨의 사형이 집행됐다. 군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군 당국은 2006년 3월30일 경향신문의 보도 이후 4월 가족들에게 사형집행 사실을 통보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는 군이 기소 이후 제출한 조작된 '심문경위'에 근거해 고등군법회의가 사형을 선고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심씨가 떳떳한 대한민국의 일원이었다고 선고함으로써 심씨와 유족의 명예가 일부라도 회복되기를 빈다"고 말했다.
한운씨는 선고 후 "반세기가 넘어서라도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감격적이지만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도 믿었던 동지들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시신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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