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을 만큼 미술관이 많은 섬

허태우 입력 2012. 10. 20. 02:43 수정 2012. 10. 2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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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산업이다. 무역과 서비스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 한 지역이 여행 산업으로 흥하려면 매력적인 아이템을 개발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뿜어 나오는 석유처럼 방문객을 분출하는 아이템을, 다른 곳에는 없는 그 무엇을. 물론 이것도 유행을 탄다. '운때'도 맞아야 한다.

요새는 '길'이 최고의 여행 아이템이다. 올레길을 비롯한 수많은 테마 길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전에는 '미술'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문화산업을 다루는 신문 기사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감초처럼 소개되던 스페인 빌바오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을 보라. 도시 하나를 살렸다. 여행을 괴롭게 하는 자연환경을 지닌 지역은 아직 '미술'에 매달리고 있긴 하다. 일례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는 오일머니를 대거 투입해 구겐하임·루브르·대영박물관의 분관을 세우는 중이다.

아시아에서 '미술'로 성공한 사례는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나오시마다. 이곳은 시코쿠와 혼슈, 규슈로 둘러싸인 바다 세토 내해의 여러 섬 중 하나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3500여 명 주민이 사는 섬에 연간 30만명이 넘는 여행객이 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를 주도한 베네세 그룹은 데시마·메기지마·오기지마·쇼도시마·이누지마·오시마(大島) 등 주변 섬들도 덩달아 예술의 섬으로 변신시키고 있다.

ⓒ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형물이 놓여 있는 나오시마 항구 터미널.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추천 1순위

나오시마에는 미술관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많다. 나도 가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고 가늠할 수도 없었다. 가가와 현의 다카마쓰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나오시마로 향할 때는 '우리나라 다도해해상국립공원보다 심심한 풍경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섬에 발을 내디딜 때부터 놀라움이 엄습해왔다.

이 시골 섬의 항구 터미널이 (일본어를 빌리면) 그야말로 간지(感じ)다.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외관에 라운지와 카페도 들어서 있다. 퀴퀴한 고깃배 여러 척이 묶여 있는 부두에는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인 호박 조형물 하나가 무심히 놓여 있다. 순간, 우리나라 동해안의 한 관공서 건물에서 마주친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해물 조형물이 오버랩됐다.

이후로 내가 방문한 곳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메이저급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세 미술관, 지추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그리고 각각 한 채의 건물(혹은 구조물)이 하나의 미술관이자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7개 아트 하우스. 덧붙여서 미술관스러운 목욕탕 하나. 미술관만 빨리 둘러보는 데 이틀이 걸렸다.

여기서 미술관 기행을 끝냈다고 한숨 돌리는 것은 금물. 옆 섬 데시마에 가면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일본의 또 다른 스타 건축가인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미술관이, 이누지마에 가면 근대화 산업 유산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가 기다린다. 배를 타고 또 타야 한다.

ⓒ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베네세 하우스에 있는 니키 드 생팔의 작품.

이곳 섬들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 나는 미술관과 리조트가 결합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추천 목록의 제일 위에 놓는다. 세토 내해의 미술관 대다수는 건축물이나 전시 공간 자체의 존재감도 강렬하기에, 고루한 관람에 익숙한 나는 1992년에 문을 연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같은 곳이 아직 친숙하다.

이곳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걸쳐 전시 공간을 따로 두어 작품을 관습적 방법으로 배치해 놓았다. 잭슨 폴록, 브루스 나우먼, 앤디 워홀,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현대 미술계의 총아가 탄생시킨 작품을 모은 컬렉션은 꽤나 역동적이다. 여러 미술관과 작품이 흩뿌려져 있는 이 섬에서도 가장 기운이 센 공간이랄까. 외계에서 온 건축가가 현대식 미술관을 지어도 그 안의 작품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건 그렇고 나오시마의 주민은 아트 프로젝트 덕분에 소소한 디자인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문패를 아기자기하게 만들거나 집안 인테리어를 할 때도 좀 더 신경을 쓴다는 것.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당연하다는 듯이 니키 드 생팔이나 구사마 야요이의 설치 작품을 배경에 넣는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문화를 향유하는 일상이 나오시마가 지닌 참된 매력이 아닐지.

ⓒ론니플래닛매거진코리아 제공 나오시마에 있는 혼무라 골목. 아기자기한 풍경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오른쪽).

✚ 볼 곳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8시~오후 9시, 입장료 1000엔. +81-87-892-3223. www.benesse-artsite.jp

지추 미술관

이름 그대로 땅속에 자리한 나오시마 섬의 상징과 같은 미술관. 바다에서 바라보는 지추 미술관은 마치 섬의 일부인 듯하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클로드 모네 세 명의 작가의 작품들은 자연과 빛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담아 공간과 완벽하게 조응하며 이곳을 현대미술의 신전처럼 느끼게 해준다.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3~9월), 오전 10시~오후 5시(10~2월). 입장료 2000엔. +81-87-892-3755

이우환 미술관

'만남의 방' '침묵의 방' '그림자 방' '명상의 방' 전시실에 설치된 이우환의 작품 15점이 관객을 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3~9월), 오전 10시~오후 5시(10~2월). 입장료 1000엔. +81-87-840-8285

가도야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중 첫 번째로 완성된 곳. 마을의 버려진 집을 아트하우스로 복원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선택한 숫자 125개가 집 안의 바닥을 채운 물 위에서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다. www.benesse-artsite.jp/en/arthouse

미나미데라

절터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목조 가옥을 새롭게 세우고 그 안에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전시해놓았다. 어두컴컴한 가옥 내부에 들어서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빛의 화면을 천천히 인식하게 된다. www.benesse-artsite.jp/en/arthouse

고오진자

에도 시대에 지은 신사를 복원한 곳. 고오진자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진작가 스기모토 히로시는 신사를 마치 카메라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www.benesse-artsite.jp/en/arthouse

✚ 즐길 곳-공중목욕탕 아이러브유(I ♡ 湯)

일본의 아티스트인 오타케 신로의 아이디어로 구현된 예술적인 공중목욕탕이다. 일본 각 지역에서 가져온 다양한 오브제들로 내·외관을 꾸민 거대한 설치작품 같은 모습이지만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이곳에서 실제로 목욕을 할 수 있다. 입장료 500엔. www.naoshimasento.jp

✚ 머물 곳-베네세 하우스

미술관과 리조트가 결합된 이곳은 세토 내해의 풍경과 현대미술에 파묻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다.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리조트와 미술관 곳곳에서 언제나 방문객을 맞이한다. 2인에 3만 엔부터. +81-87-892-3223. www.benesse-artsite.jp

허태우 ( <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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