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애니 봤다 전과자 될판? "취직 어쩌라고"

성세희 기자 2012. 10. 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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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음란물 처벌, 좋은 취지불구 '과잉' 논란.. 일부 위헌소송 움직임

[머니투데이 성세희기자][아동음란물 처벌, 좋은 취지불구 '과잉' 논란… 일부 위헌소송 움직임]

검찰과 경찰 등 사법당국이 아동 성폭력 처벌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아동·청소년 음란물 한 편이라도 소지하면 처벌하겠다며 날을 벼렸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준없는 과잉 처벌로 애꿎은 전과자만 양산, '전국민의 전과자화'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동 성범죄자 잡겠다며 '신바람 칼날' 휘두르는 검·경

대학 졸업을 앞둔 휴학생 A씨(24)는 지난 9월말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지난 5월 인터넷 웹하드(동영상과 파일 등을 공유하는 사이트)에서 공유했던 음란물이 화근이었다.

A씨는 "당시 인터넷으로 공유했던 음란물 18편 가운데 2편에서 교복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며 "경찰에서 일제단속을 벌이기 전 이미 관련 동영상을 모두 삭제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웹하드 운영진에게 문의한 결과 성인이 교복을 입은 기획물이라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초범이고 사안이 심각하지 않다'는 말로 A씨를 회유했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한 편이라도 소지했다면 무조건 기소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A씨는 그 날 이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든 성폭력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던 사법당국이 변했다.

불똥은 묘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사법당국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조자룡 헌 칼'로 활용하겠다고 나섰다. 삼국지 장판교 전투에서 조자룡이 용맹무쌍하게 적병의 창칼을 빼앗아 마구 휘둘러 승리를 거두듯 검찰과 경찰도 조자룡 헌 칼 쓰듯 국민을 상대로 수사권을 휘둘러 전국민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단서는 최근 아동 성폭행을 저지른 용의자 컴퓨터에서 아동 음란물이 수십 편 발견된 것. 나아가 교복을 입은 성인이 등장하는 영상물은 물론 그림이나 만화에도 확대 적용해 단속키로 했다.

◇제멋대로 법 집행…처벌 잣대 모호

검찰은 지난 3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제2조 5항에 근거해 '아동이나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장면에 등장하면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적 법 해석 탓에 음란물이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을 컴퓨터로 내려 받은 여러 누리꾼도 아동 음란물 소지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대학생 B씨는 웹하드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R-15' 12편을 공유했다.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15세 이상 관람 판정을 받았고 성행위 등은 없으며 여성 상반신 노출이 한 번 있다.

B씨는 "성행위 장면이 하나도 없고 여성이 벗는 장면도 없는데 왜 음란물이냐고 경찰에 따져 물었지만 소용없었다"며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성적 유추가 가능해도 아동·청소년 음란물로 간주한다는 말에 결국 혐의를 인정하는 조서를 썼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맞는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뢰해 심의하고 판단하도록 맡겼다"면서도 "심의를 하더라도 아동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나 아동이 아니어 교복을 입고 나왔다면 음란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법당국이 웹하드 서버에서 검색기록을 검색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검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원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각국은 아동음란물을 유통시키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를 형사 처벌하는 일을 모두 확인하고 통제하는 행위가 일종의 검열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한다"며 "경우에 따라 선량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부당한 처벌을 가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법 해석으로 전과자 양산…헌법소송 움직임

검찰 등은 1997년 '청소년 보호법' 발효 당시 음란만화 제작자와 유통업자 등을 구속할 때에도 만화를 읽은 사람을 상대로 사법처리한 적은 없다. 최근 사법당국이 벌이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단속은 과거 '음란만화' 단속보다 되레 더 퇴행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경찰관은 "아동 포르노를 막는다는 취지는 환영하지만 지금 같은 무리한 법 집행은 인권침해"라며 "웹하드를 주로 이용하는 10대부터 30대 남성만이 검거되면서 연령층을 걸러 검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단순한 벌금형으로 그치지 않는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5항에 의거, 벌금형 등은 범죄경력 자료로 남아 최고 5년까지 보존된다. 또한 제44조에 명시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병원 등에 취업할 수 없게 된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아동 음란물을 공유하면 벌금형 등 전과기록이 남을 텐데 죄목 때문에 전자발찌를 찬 사람처럼 취급받을 수 있다"며 "이 같은 죄목으로 전과기록이 있다면 공공기관이나 공무원으로 임용될 때 결격사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A씨 등은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공유했다는 혐의로 검찰 기소된 누리꾼을 모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소송을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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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성세희기자 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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