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피해 구미 봉산리 현장 르포] 분노한 주민들 "정부가 국민 버려.. 살기위해 떠난다"

2012. 10. 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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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에라도 암 환자가 나오면 어찌 할 겁니까. '여기가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해 주소."

"안 죽을라고 피난 갑니다."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10일째인 7일. 사고 현장인 ㈜휴브글로브로부터 450m 떨어진 인근 마을인 산동면 봉산1리 일대는 조속한 피해보상과 국가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 10여개가 걸려 있을 뿐 썰렁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측정팀과 검진차량, 구미시 관계자 등만 눈에 띌 뿐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분노한 주민들, 스스로 이주 결정=불산 누출사고로 2차 피해를 본 인근 지역 일부 주민들은 전날 터전을 버리고 이주했다. 봉산1리 주민 240여명이 자원화 시설로, 임천리 주민 190명이 해평면 청소년수련원으로 대피했다. 박명석 봉산리 이장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주지 않아 우리 스스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봉산리와 임천리 주민은 1200여명이다.

마을이 통째 빈 곳도 있었다. 봉산리의 산마을타운은 빌라 6개동에 300세대가 모여 살았으나 주민이 모두 떠나 방치된 현관 유리가 뿌옇게 변했으며 주차장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입주자 강모씨는 "사고 직후부터 하수구에서 독한 냄새가 역류해 더 이상 살 수 없었다"며 "입주민 대부분 추석을 쇠자마자 200만원 가량인 월세 보증금을 포기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동식물·농작물 피해=봉산1리 마을회관 근처에는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났다. 주변 감나무는 잎이 다 떨어지거나 말라 죽었으며, 대추나무도 잎의 절반이 타들어갔다. 고춧잎도 노랗게 변했다.

주민 서성일씨는 "새와 쥐의 시체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메뚜기, 귀뚜라미, 잠자리는 물론 청설모까지 사라졌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었다. 또 다른 주민은 "농작물 가운데 호박이나 미나리 정도만 살아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운영위원장은 "사고 현장과 가까운 마을 숲에 불산이 대거 잔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불산이 다시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숲과 논·밭 등에 있던 불산이 땅으로 스며들거나 강으로 흘러간다면 먹이사슬을 통해 농작물과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3차 피해'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당국은 피해축소 급급=구미시는 사고 발생 직후 '농작물 식용금지' 팻말을 부착했다가 6일 오전 떼어냈다. 먹어도 되는지를 물어보면 묵묵부답이다. 한 주민은 텃밭에서 말라비틀어진 대파를 가리키며 "농촌에서 먹을 것을 자급하지 못하고 먼 곳까지 나가 사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6일 현장을 찾은 유영숙 환경부 장관 일행은 기자들에게 "방제용 마스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TV 화면을 통해 마을의 건강 피해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거칠게 항의했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공기가 나쁜 곳에서 열흘간 살았다. 마스크도 어제서야 지원받았다.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고 따졌다. 이재혁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전문가와 의료진으로 팀을 구성해 잔류오염도 검사 및 진단을 실시한 뒤 주민들의 궁금증을 소상히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환경과학원은 8일 정밀측정 장비를 투입해 2차 피해 지역의 불산 잔류를 측정하기로 했다. 이날까지 구미시에 신고된 기업들의 피해 금액은 77개 업체 177억1000만원이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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