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범죄가 담장 없어서라며 "담장 설치"

이혜리 기자 2012. 10. 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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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 '공원화 사업' 비판에 교과부·교육청 담장 점검지도최근 범죄 학교들은 '사업 무관'

최근 발생한 서울 강남 사립초등학교의 흉기 난동 사건 때문에 애꿎은 학교 담장에 불똥이 튀었다.

일부 언론에서 학교의 치안대책을 거론하면서 '학교 담장을 치웠더니 범죄가 들어왔다'고 보도한 뒤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교육청은 갑자기 학교안전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안전대책을 점검한 뒤 학교 실정에 맞게 담장이나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학교방문사전예약제를 도입하거나 학교 정·후문을 통제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안전조치 소홀을 애꿎은 학교 담장 탓으로 몰고 있다"면서 "이는 졸속행정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담장을 없앤 학교 공원화사업은 2001년 시작돼 2010년 완료됐다. 딱딱하고 음침한 콘크리트 담장을 없애고 학생들의 정서나 개방감을 줄 수 있도록 녹지를 조성하거나 다양한 재질의 소재로 대체했다. 서울시내 70개 초등학교가 콘크리트 담장을 녹지공간으로 바꿨다. 또 휴일에는 학교 운동장을 인근 주민들의 휴식 및 운동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전국 초·중·고 825개 학교가 개방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 같은 학교 개방정책은 교육당국이 그동안 택한 정책 중 주민 호응도가 가장 높은 사업으로 꼽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 사업이 학교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화풀이 대상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학교에서 발생한 강력사건은 학교담장이나 학교시설 개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2010년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은 물론 최근 서울 강남지역 초등학교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학교는 모두 담장 허물기 사업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문제가 된 서울 강남 초등학교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10대가 수업 중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후문을 통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학교를 드나든 게 문제였다. 학교 현장의 안전조치 소홀이 문제가 됐을 뿐 이다.

박승배 도시연대 사업국장은 "학교 담장을 높이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심리적인 것에 불과하다"면서 "수용소처럼 학교 전체를 다 막아버리는 게 아니라면 담장은 (범죄예방에) 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도 학교 안전시설을 강화한다며 담장을 세우거나 높이는 경우는 전례가 별로 없다. 학교 현장의 무차별 총기 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미국도 대부분 학교에 담장이 없다. 대신 교실로 드나드는 현관에 출입 제한장치를 설치한 뒤 방문 용건을 확인하고 출입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학교공원화사업을 맡았던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강력범죄가 일어난 학교의 경우 담장 없애기 사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뿐더러 담장이 없다고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담장허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임은아 안산별자리도서관관장은 "2009년부터 안산 초등학교에서 담장을 없앴지만 범죄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담장을 없앴다고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은 주객이 전도된 얘기"라고 밝혔다.

교과부 관계자는 "담장을 설치여부는 학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담장을 없앤 대부분의 학교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라"면서 다그치자 앞다퉈 담장을 다시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려면 학교로 들어가는 통로를 가급적 줄여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담장 설치가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김인호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교수는 "학교 공원화사업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는 학생들의 감수성과 친환경적인 학교 조성에 기여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투시형 담장이 있기 때문에 담장이 없어서 범죄가 늘어난다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며 "(학교 범죄를 막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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