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간 딸 위해 '글꼴'만든 아빠.. 감동 RT

양정민 기자 2012. 9. 2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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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체' 무료배포 "병마로 떠난 아이들 기억해주길".. 보령시에 '김도희 도서관'도

[머니투데이 양정민기자]['도희체' 무료배포 "병마로 떠난 아이들 기억해주길"… 보령시에 '김도희 도서관'도]

도희가 아빠 김정환씨(44)와 지난해 2월 집에서 찍은 사진. 당시 제대혈 이식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열한 살 도희의 별명은 '쫑알공주'였다.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와도 금세 친해져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아빠가 우울해하면 막내딸은 괜스레 "엄마, 나 예뻐?"라며 애교를 부렸다. 여덟 살 때인 지난 2009년, 급성 백혈병의 전 단계인 골수이형성 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MDS)이라는 병이 찾아온 뒤에도, 지난해 재발 판정을 받았을 때도 '쫑알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2년 6개월의 병원생활 동안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TV나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면 공책에 적어 두었다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하던 아이였다.

"오랜 병원 생활에도 가라앉지 않았어요. 영화 한 편을 봐도 슬픈 내용은 보지 않을 정도였어요. 기특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좋은 게 뭔지 본능적으로 아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마지막 항암치료도 잘 견뎌낼거라 생각했는데…"

◇ 딸아이 글씨체 본뜬 '도희체' 배포…

"백혈병과 싸우다 간 아이들 기억해 줬으면"

올해 4월 이후로 더이상 '쫑알대는' 도희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도희가 남기고 간 글씨는 지난 17일 '쫑알공주 도희체'라는 글꼴로 새롭게 태어났다. 도희 아빠 김정환씨(44)가 전문 디자이너에 의뢰해 5개월여 만에 완성된 글꼴이다.

(위) 지난 2009년 10월 도희가 병원 앞에서 찍은 사진. 이날 오후부터 도희는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고 소아암병동으로 옮겨 2년 6개월간의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아래) 도희 아버지 김정환씨(44)가 '쫑알공주 도희체'로 작성한 일기 중 일부. 분홍색은 딸 도희가 가장 좋아하던 색깔이다. (사진=김정환씨 제공)

또박또박 눌러 쓴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글씨는 생전 도희의 글씨를 쏙 빼닮았다. 도희의 일기장과 독후감 공책을 스캔하고 다시 전문 디자이너가 이를 하나하나 다듬었다.

"처음에는 세상에 도희의 흔적을 남겨주려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과 부모가 생각났어요. 이 순간에도 무균실과 소아암 병동에서 투병하는 아이들이 있고, 또 세상을 뜨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병원 바깥에서는 예전에 비해 백혈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더라고요. 사람들이 백혈병과 싸우다 간 아이들을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꼴을 만들게 됐어요."

◇ 영화배우 김여진씨 등 SNS 이용자들 뜨거운 반응

지난 24일 도희 아빠 김정환씨가 올린 트윗이 네티즌 사이에서 500회에 가까운 리트윗을 기록하며 화제다 됐다. (사진=영화배우 김여진씨 트위터 캡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을 잊지 않길 바라는 김씨. 그 마음이 전해지려면 블로그를 통한 홍보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아이가 아픈데 무슨 소용이냐" 싶어 관심 갖지 않았던 SNS가 새로운 창이 됐다.

"딸아이를 잃은 아빱니다. 아이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꼴을 만들었습니다. 엄마,아빠 곁을 일찍 떠난 아이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무료 배포합니다."

파워트위터리안인 영화배우 김여진씨(@yohjini)를 비롯한 수백 명의 네티즌이 김씨의 글을 리트윗(재전송)하며 글꼴 알리기에 나섰다. 하루만에 트위터로 수십 개의 격려글이 날아들었다. PC용과 스마트폰용 글꼴을 내려받기 위해 김씨의 블로그( dohhee.tistory.com)를 찾는 이들도 평소의 서너 배로 껑충 뛰었다.

◇ "곁에 있는 아이들,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세요"

도희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글꼴만이 아니다. 지난 6월28일, 도희의 11번째 생일을 맞아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는 '들꽃마당 김도희 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도희가 즐겨 읽던 책과 인근 지역 초중생을 위한 책으로 책꽂이를 채웠고, 시에 정식 도서관 등록까지 마쳤다.

도서관이 문을 열기까지는 주위의 도움이 컸다. 인터넷으로 인연을 맺은 들꽃마당 시온교회 김영진 목사(52)는 교회 옆 문화관으로 쓰이던 공간을 내어주고 책꽂이 등 내부 집기를 마련해줬다. 김씨가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 직장 동료, 친구들도 매달 정기적으로 책 후원을 해주고 있다. 모두 도희가 투병하던 시절부터 김씨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이들이었다.

이제 김씨 부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5년 뒤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 도희의 이름을 딴 학교를 세우는 꿈이다. 글꼴을 만드는 일도, 도서관에 책을 보내는 일도, 학교를 세우는 일도 적잖은 경제적 부담이다. 하지만 김씨 부부의 바람은 단 한 가지다. 이 순간에도 병마로 고통받는 수많은 '도희들'이 있음을 꼭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죽음과 직면한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곧 명절이 다가오는데 가족과 같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해요. 그리고 곁에 있는 아이들을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양정민 기자 트위터 계정 @101_mt]

머니투데이 양정민기자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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