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앙감질이 뭐예요?

이진희기자 2012. 9. 2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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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국어 교과서 너무 어려워.. 단원평가는 '수능' 비슷

'앙감질로 깡충깡충 뛰어오다가'(초등 1학년 1학기 교과서 내용 및 받아쓰기 문제)

'인물의 모습을 상상하여 이야기를 들으면 좋은 점으로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①이어질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②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습니다. ③이야기의 때와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④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의 수를 알 수 있습니다. ⑤장면을 손으로 만져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초등 1학년 1학기 단원평가 문항)

학원을 보내거나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대학강사 박영희(가명ㆍ44ㆍ서울 중랑구)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1학기 국어 교과서를 보고 기가 막혔다. '앙감질로/깡충깡충/뛰어오다가//깔깔대며/배틀배틀/쓰러집니다'라는 피천득 작가의 시 '오는 길'를 보고서다. 아이는 '앙감질'이 뭔지, '배틀배틀'이 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쓰기 시험까지 봤다. 교과서에는 주석으로 '앙감질: 한 발을 들고 한 발로만 뛰는 짓'이라고 돼 있다. 박씨는 "주석은 마치 부모더러 보라고 달려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수준의 시간표를 편성하고 문제집을 풀게 하며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가 있더라"며, 어려운 초교 1학년 국어 과정을 비판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한달 가량은 한글의 획 등 기초적인 것을 배우지만, 한달 정도 지나면 갑자기 통달할 수준의 국어를 요구하고, 단원평가는 마치 수능 시험 문항을 보는 것 같다. 국어가 학습능력의 기초인데 국어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다른 과목에서도 뒤처지게 된다.

특히 교과서 지문을 토대로 한 단원평가 문제들은 어른도 선뜻 답하기 어렵다. 박씨의 아이가 1학기 때 본 단원평가에는 거인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없는 지문을 내놓고 '글에서 거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쓰시오'라고 요구하고,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에서 은구슬이 무엇을 뜻하는지 은유를 물어본다. 친구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 바른 자세를 물어보는 문항은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말합니다''발밑을 바라보며 겸손하게 말합니다'등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제시문을 모두 오답으로 처리하고 있다. 필기시험에 낼 필요가 없는 연필 잡는 법을 묻는 문항도 있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연필을 받칩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모양을 둥글게 하여 연필을 잡습니다'라는 제시문을 골라야 정답이다.

박씨는 "아이가 문제조차 읽기 벅차하고, 어떤 단원평가는 너무 어려워서 시험으로 보지 않고 과제로 내줘서 부모와 함께 풀게 한다. 그래도 100점이 안 나오더라"며 "학원도 못 보내고 집에서 가르칠 여건이 안 되는 조손 가정 등은 초교 입학하자마자 천덕꾸러기가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단원평가가 없어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절반 이상의 학교들이 실시하고, 교사들이 문제은행식 유료사이트에서 다운받아 사용하는 등 문항도 정형화돼 있다. 박씨의 아이가 푼 문제도 대부분 인터넷에 올려진 문항으로,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한 경우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수원 D초등학교 김모 교사는 "수학은 초 1년 1학기 때 1~50까지만 배우는 등 상대적으로 쉽다"며 "국어는 지문이 길고 문항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기 때문에 선행을 받지 않으면 어렵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현행 교과과정은 초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깨치도록 하고 있다"며 "내년부터 새로운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는데, 현재 여러 의견을 듣고 최종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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