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대나무숲' 열풍이 부는 까닭은?

양정민|황보람 기자 2012. 9.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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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이슈]12일 시작, 열흘만에 100여 개로..약자,乙의 목소리 담아

[머니투데이 양정민기자][[위클리이슈]12일 시작, 열흘만에 100여 개로...약자,乙의 목소리 담아]

(사진=전남 담양군 제공 ⓒNews1)

"신라 경문왕은 즉위 후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이 사실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만이 알고 있었다. 평생 왕의 비밀을 지켰던 장인은 죽기 전에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삼국유사』권2 기이2 48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 (한국콘텐츠진흥원 디지털 삼국유사에서 인용.)

그리고 2012년, 약 1200년의 시차를 두고 도림사 대나무숲은 트위터에서 부활했다. 지난 12일 출판업계 내부고발 기능을 하던 '출판사X'(@excfex) 계정이 사라지자 '출판사 옆 대나무숲'(@bamboo97889) 계정이 문을 열었다.

이후 'OO 옆 대나무숲' 계정은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갔다. 21일 현재 트위터에 개설된 대나무숲은 100여 개에 이른다. 정규직 전환만 믿다가 '팽' 당한 인턴, 퇴근 후에는 휴대폰을 꺼버리는 IT회사 직원, 5년 이상 일하고도 명절에 비누 한 장 받지 못하는 번역가가 대나무숲에 모여들었다. 특정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며느리, 중학생, 백수, 성노동자, 성소수자를 위한 대나무숲도 생겨났다.

◇ "학계 표절관행 폭로하자" 논의의 장 되기도

트위터에 개설된 각종 대나무숲 계정 중 일부

트위터 대나무숲은 비밀번호를 공유해 한 계정에 여러 사람이 접속해 글을 남기는 방식을 사용한다. 특정 인물/업체의 실명을 언급하지 않으며 원색적인 욕설을 자제하는 것도 이들만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누가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없는 익명성 덕에 특정 업계·집단에 대한 신랄한 내부 비판이 올라온다. 때로 이런 비판은 단순한 넋두리가 아닌 집단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원생,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이 주로 찾는 우골탑 옆 대나무숲에서는 학계에 만연한 표절 관행을 폭로하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출판 노동자의 임금과 근무환경 실태조사를 해달라"는 글에 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happybooknodong)는 "조만간 '출판 노동 가이드북'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며 실태 조사도 하고 싶다"고 참여를 당부했다.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나무숲 계정에서 이뤄지는 논의들도 실제 노동상담 사례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약자라는 위치 때문에 근로계약서 작성·최저임금 준수처럼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고용주에게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한 위원장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부당함을 인식하고, 노조 설립 등 조직화된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더욱 긍정적일 것"이라며 "대나무숲이 단순한 하소연장에 그치지 않고 단계별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익명게시판과 '대나무숲' 다른 점은…"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이같은 '대나무숲' 현상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통의 문화를 유희적 참여로 뚫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송 교수는 특히 "'OO옆 대나무숲'이라는 아이디어가 새 것에 민감한 트위터 이용자의 속성과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SNS상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완전한 익명성은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한 채널이 바로 트위터 대나무숲"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 누구나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는 열린 구조 ▲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에 기반 ▲ 빠른 확산성 등을 기존의 '익명 게시판'과 구별되는 대나무숲의 특성으로 꼽았다.

그러나 대나무숲의 익명성은 '양 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악의를 품고 계정 운영을 방해하는 사람을 잡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댁 옆 대나무숲, 촬영장 옆 대나무숲 등은 한 차례 '계정폭파'(이용정지)를 당했고, 대학 시간강사들이 주로 찾는 우골탑 옆 대나무숲은 한때 욕설이 도배되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대나무숲 이용자들은 그동안 올린 트윗을 저장(백업)해두거나 제2, 제3의 계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대나무숲의 긍정적인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송 교수는 "대나무숲이 별도의 커뮤니티나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진다면 지속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익명성으로 시작한 공간 인만큼 각자가 신분노출의 위험성에 부담을 갖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 교수 역시 "심리학적으로 부정적 메시지는 일시적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지만, 장기간 이어질 경우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메시지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나무숲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정 교수는 "초기 위키피디아도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올라오자 편집자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트위터 대나무숲도 집단지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부작용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정민 기자 트위터 계정 @101_mt]

머니투데이 양정민기자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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