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14층 아파트 "배달원은 승강기 타지마"

2012. 8. 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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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4층 은마아파트 경고문 붙여

배달원들 죄인처럼 주민 눈치

7일 새벽 3시4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들머리. 40대 박은자(가명)씨의 손에는 신문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박씨는 14층짜리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서 경비실을 살폈다. 경비원은 잠들어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슷한 시각 정영자(가명·53)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아파트 입구에 나타났다. 우유팩 30개가 담긴 상자를 든 정씨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복도를 살폈다. 밖에 나온 주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박씨와 정씨는 벌써 열흘째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을 피해 다니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전체 27개 동 입구마다 '배달사원 승강기 사용 자제'라고 적힌 경고문(사진)을 붙였다. "배달사원(신문·우유 등)들은 배달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배달해 주시기 바란다"고 적혀 있다.

배달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뒤 층층이 내려 우유 또는 신문을 넣는다. 이를 입주민들이 문제삼았다. 경고문에는 "배달사원들이 각 층마다 승강기 버튼을 눌러 사용하므로 주민들의 불편과 전기료 발생 등으로 인해 입주민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폭염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자 주민들이 배달원들에게 그 '책임'의 일부를 물은 셈이다.

배달원들은 엘리베이터 이용을 완전히 포기하진 못했다. 폭염 탓에 새벽 기온조차 30도를 웃도는 요즘, 14층 아파트 몇개 동을 오르내리는 일은 이들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배달 시간이 늦어지면 주민들은 그것도 문제삼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배달원들은 주민과 경비원 몰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얼마 전, 우유상자를 싣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주민이 쳐다보면서 '전기세 내고 이용하는 거냐'고 따졌어요.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개만 숙였지요." 10년 동안 강남구 아파트에서 우유를 배달해온 정씨는 "배달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서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은 있는 사람들 인심이 더 각박하다"고 덧붙였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공동부담하는) 엘리베이터 전기료 등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입주민들이 민원을 넣어 경고문을 붙였다"고 밝혔다. 은마아파트는 평균 105㎡ 넓이의 중형 아파트가 대부분인데 한 채당 8억~10억원 사이에 매매되는 고가 주거단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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