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몰려오는 제주도, 제2의 지산 될까?

고재열 기자 입력 2012. 7. 13. 10:32 수정 2012. 7. 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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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새벽 2시, 제주시 탑동 흑돼지골목의 어느 고깃집. 경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50여 명이 이리저리 잔을 부딪치며 유쾌한 술자리를 갖고 있다. 밴드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한경록씨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밴드 게이트플라워즈와 브로큰발렌타인 멤버들은 돌아가며 개인기를 선보인다. 술자리 분위기는 동창회, 송년회처럼 흥겹다.

이들은 이날 저녁 공연을 마친 가수와 팬들이었다. 밴드와 팬이 함께 음악여행을 하는 'GET in JEJU(Great Escape Tour in JEJU)'에 참여해 여행 코스 중 하나인 '겟라이브'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하러 온 것이었다. 숙소인 펜션에 돌아와서도 술자리는 이어졌다. 물을 채우지 않은 수영장 주변에 자리를 펴고 제주의 밤을 즐겼다. 마치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마친 인디밴드와 팬들이 공원에서 함께 뒤풀이를 하는 모습 같았다.

ⓒ곽원석 제공 5월에 열린 첫 번째 'GET in JEJU'에서 '오르멍 들으멍(야외 공연)'에 참여한 밴드 '바이바이배드맨'.

이들이 처음 만난 곳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김영갑갤러리-두모악' 근처에 있는 '곳간 갤러리'였다. 귤 보관 창고를 개조한 이곳에서 밴드 게이트플라워즈가 '창고 콘서트'를 열고 < 후회 > < 나뭇잎 사이로 > 등 자신들의 대표곡을 어쿠스틱한 음악으로 들려주었다. 넓지 않은 창고 안은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동네 나쁜 형들' 콘셉트로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 차림으로 노래를 부른 이들은 대표곡 < 서울발라드 > 를 < 제주발라드 > 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공연을 마치고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관람했다. 2005년 사망한 사진가 김영갑씨는 제주에 머무는 20여 년 동안 오름 사진을 주로 찍었다. 김영갑의 사진이 오름을 재발견하게 해주었듯 음악을 통해 제주를 재발견하게 한다는 것이 'GET in JEJU' 행사의 취지였다.

저녁식사 자리로 이동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이 여행을 기획한 3인 중 한 명인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행자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확인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행 가이드였다. '밴드와 함께하는 제주 생태 여행-GET in JEJU'는 고씨가 대중음악 평론가 박은석씨, 부스레코드 부세현 대표와 의기투합해 만든 프로젝트다. 셋은 모두 제주 출신이다.

고건혁 대표는 여행자 안내를 맡았고 부세현 대표는 공연 준비를 맡았다. 의전을 담당한 박은석씨는 뮤지션들이 공항에 내려 다시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박씨는 'GET in JEJU'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우드스톡 같은 록페스티벌을 제주도에서 하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으로 제주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에 음악생태계 구축하는 것이 목표

고건혁 대표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 밴드 '시구어 로스'가 수몰 예정인 공장지대에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GET in JEJU'가 차용한 모형은 세계적인 멀티페스티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페스티벌(SXSW)이다. 음악과 IT와 영화를 포괄하는 멀티페스티벌인 SXSW처럼 'GET in JEJU'도 음악과 생태와 강연(힐링)을 결합한 여행상품으로 만들어졌다.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음악)과 제주도가 지켜야 할 것(생태), 그리고 제주도가 나아가려는 방향(전시 컨벤션 산업-MICE)을 결합한 모형인 셈이다.

2박3일간의 일정은 '겟라이브(콘서트)' '오르멍 들으멍(야외 공연)' '제주의 바람(강연-힐링)' '에코 노마드(생태 여행)' '겟 위크엔드(뮤지션과 함께하는 여행)'로 구성된다. 빡빡하다 싶은 일정이었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어렵게 휴가를 냈다는 직장인, 시댁의 눈총을 뒤로 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주부 등 참가자 중에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어 이 여행에 따라나섰다는 이가 많았다. 박주현씨는 "꿈같았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나를 잠시 잊고 그 순간 자체를 순수하게 느끼고 즐겨보려는 것인데, 그러한 바람에 충실하게, 더 몰입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공연장만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결합된 일정이어서 참여한 밴드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브로큰발렌타인의 보컬 '반'은 "이번 공연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팬들과 함께, 또 다른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평소 정말 원했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곽원석 제공 6월 열린 두 번째 'GET in JEJU'에서 밴드 크라잉넛이 열정적인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GET in JEJU' 팀은 여행자들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제주를 여행할 수 있게끔 제주에 대한 생태 대안관광을 추구하는 '제주생태여행' 팀과 함께 프로그램을 짰다. 제주생태여행 고제량 대표 등은 겉핥기식으로 제주를 소개하는 일반 가이드들과 달리 오름의 공동체 목장과 해녀들이 물질하는 공동체 어장 등을 소개하는가 하면 우도에 해안도로가 나면서 산호사 해변 백사장이 쓸려나가고 있다는 사실, 비자림로가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알려주며 제주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하기도 했다.

여행 둘째 날인 토요일 밤, 본격적인 콘서트가 열린 한라대학교 한라아트홀은 850석 공연장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공연장에는 다음, 넥슨 등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기업체 직원들, 바람카페를 운영하는 이담씨 등 제주에 온 '문화 이민자'들도 함께 어울렸다. 관객은 주로 인디밴드 음악을 즐기려는 제주 젊은이였는데 주말에 맞춰 제주도로 여행을 온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GET in JEJU' 관광버스 운전사는 "공연이 정말 열정적이었다. 나이 쉰셋에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놀았다"라고 말했다.

'GET in JEJU'에서 콘서트 제작을 맡은 부세현 대표는 "앞으로 제주에 오는 여행자들이 '제주에 오면 여행 중 좋은 공연도 볼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제주에 음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려면 제주도 사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문화판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에는 조금씩 문화 생태계가 구축되는 중이다. 제주올레 열풍 이후 문화 이민자들이 늘면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밴드들도 음악여행을 마친 뒤 강력한 우군이 되어 있었다.

자라섬이나 지산처럼 제주 또한 음악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실험이 막 시작됐다. 5월 첫 여행에 이어 6월 두 번째 여행을 마친 'GET in JEJU'는 가을까지 매달 계속된다(www.getinjeju.com). 7월에는 밴드 강산에, 마크 코즐렉(Mark Kozelek), 피터팬 컴플렉스가 함께한다(7월20~22일).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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