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생선 맡긴.." 삼성·LG 핵심기술 '뻥' 뚫렸다

박준호 입력 2012. 6. 27. 16:36 수정 2012. 6. 27. 16: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국가가 90조원 가치를 지닌 핵심 산업기술로 지정할 만큼 철저한 감시와 보안이 요구되는 삼성과 LG의 아몰레드(AM-OLED) 기술이 해외로 버젓이 유출돼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27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김영종)에 따르면 삼성과 LG가 보유한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 경쟁업체에 넘긴 혐의(산업기술의유출방지및보호등에관한 법률 위반 등)로 외국계 검사장비업체 한국지사인 O사의 김모(36·LG영업담당) 차장 등 3명이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또 기술 유출에 가담한 이모(43·LG영업담당) 부장 등 3명을 산기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양벌 규정에 의해 O사 한국지사도 재판에 넘겼다.

◇기술은 일류, 보안의식은 삼류?

이번 국가 핵심기술 유출사건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첨단 특수장비를 사용하거나 생각보다 치밀한 수법이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삼성과 LG 내부에 기술유출에 묵인한 공모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초일류의 기술 수준에 못 미치는 안이한 삼류 보안의식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차장과 안모(36·삼성영업담당) 과장, 김모(30·삼성영업담당) 대리는 삼성과 LG의 아몰레드 패널 생산 공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검사장비 협력업체 직원의 업무특성을 이용, 검사장비를 점검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평판 디스플레이 패널을 검사하는 장비를 납품하기 때문에 장비 유지·보수 작업을 이유로 생산현장에 접근해 아몰레드 패널의 레이어별 실물 회로도와 구조를 제약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시장출시를 앞둔 55인치 TV용 아몰레드 패널의 레이어별 실물회로도를 검사장비로 촬영해 신용카드형 USB 등에 저장한 뒤 주로 신발, 벨트, 지갑 등에 숨기는 수법을 썼다.

김 차장 등은 아몰레드 기술개발이 본격화 된 지난해 8월~10월에는 거의 매일 생산공장을 방문했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는 기술을 빼돌리지 않았다. 삼성과 LG의 기술개발이 궤도에 오르고, 공장 가동상태나 내부 사정을 어느정도 익힌 11월 이후에 집중됐다.

김 차장은 지난해 11월~올해 1월 USB를 몰래 갖고 들어가 2~3차례에 걸쳐 LG디스플레이의 55인치 TV용 아몰레드(화이트 올레드) 패널의 실물 회로도 등을 사진촬영한 뒤 이를 O사 본사 임원과 본사 마케팅 담당 직원, 고객사 관련 정보 수집·관리를 총괄하는 DAP(홍콩 소재), O사의 중국·대만 지사 영업 담당자 등에게 유출했다.

안 과장과 김 대리는 같은 기간 신용카드형 USB 등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55인치 TV용 아몰레드 패널의 레이어별 실물 회로도 등을 비슷한 방법으로 취득해 본사 임원 등에게 넘겼다.

이들이 유출한 기술은 O사의 이스라엘 본사가 홍콩에 세운 산하조직 DAP로 축적됐고, 이 기술은 고객사를 관리하는 중국, 대만 등 해외지사를 통해 삼성과 LG의 경쟁업체인 다른 회사로 무단 유출했다.

O사의 가장 큰 고객이자 진출시장인 중국 BOE나 CSOT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히 삼성은 아몰레드 기술이 유출된 사실은 확인됐지만 어느 나라의 기업으로 흘러갔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고, LG는 중국이나 대만의 기업으로 기술이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기술이 본사, 외국지사를 통해 외국 경쟁업체에 유출됐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삼성 아몰레드 기술이 O사를 통해 일부 유출된것 같다는 정황을 잡고 검찰에 제보를 했다"며 "이후 삼성 감사팀과 같이 수사를 진행했고, LG 기술유출은 O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이나 LG의 보안시스템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안점검을 소홀히 한 측면은 있다"며 "삼성은 수사착수 전에 기술유출 정황을 확인했지만 LG는 검찰이 통보한 이후에 기술유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철수하면 삼성, LG 망한다!"…기술유출하고도 '으름장'

삼성과 LG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만큼 시시각각으로 다국적 산업스파이들의 '표적'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자체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체계적인 보안시스템을 구축해놓은 상태지만 이런 시스템도 안이한 보안의식 앞에선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전락했다.

삼성과 LG가 불량 제품을 최소화하고 제품의 안정적인 생산·공급을 위해 검사장비를 들여놓고 관련 협력업체인 O사에 믿고 장비 결함 여부 등을 점검토록 맡겼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볼 때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O사가 보안체계를 의심할만큼 허술한 업체는 아니다. O사는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LCD, 아몰레드 등 평판 디스플레이 패널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77%)를 차질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검사장비 납품 업체다.

주요 고객사로는 삼성, LG를 비롯해 중국의 BOE, CSOT, 대만의 AUO, CMI 등이 있다. O사의 한국지사는 이스라엘 본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외국 기업이다.

O사는 아몰레드 기술개발에서 앞선 삼성과 LG에 대한 영업을 담당하는 한국지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기술자료 습득내용을 보고토록 했고, 이 자료를 중국이나 대만의 고객사에 넘김으로써 검사장비 납품을 요구해 매출을 끌어올렸다.

결국 O사의 영업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고객사의 경쟁기업에 기술을 팔아 넘긴 것이다. O사의 이런 수법의 기술유출이 적발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지금껏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O사의 기술유출 사례가 발견된 적이 없다.

다만 O사의 기술유출은 우리나라에 국한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각 국가에서 설립된 해외지사를 통해 현지 고객사의 기술자료를 취득한 뒤, 이 자료를 다른 국가의 고객사에 넘기는 방식의 '영업활동'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국가핵심기술을 취득한 O사 본사 및 해외 지사 소속 외국인을 상대로 기술 유출경로와 추가 유출여부 등을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이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O사의 적반하장식 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O사는 검찰이 수사를 계속하게 되면 계약을 맺은 삼성과 LG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삼성과 LG의 생산에 차질이 생겨 망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수사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국가적 자산으로서 이를 빼돌리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같은 행위로 규정해 더욱 엄중하게 수사할 예정"이라며 "O사 이스라엘 본사 임원에 대해서 출석을 요청하고 있고, 관련지사 직원에 대해서도 인적사항을 파악하며 계속 내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스라엘과의 공조는 현재 여러가지 고민 중이고 인터폴 등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며 "사법공조는 그 나라에서도 범죄로 인정해줘야하지만 O사가 직접 유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지사에서)넘겨받은 것 자체를 범죄로 인정해줄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pjh@newsis.com

<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