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쌀집 옆에 디자이너숍·갤러리·카페 .. 환해진 한남동 뒷골목

서정민 2012. 6. 22.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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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의 가로수 길' T자 골목 가보니

카페 플리 플리에서는 젊은 아티스트에게 책장을 한 칸씩 대여하는 '칸칸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쇼윈도 왼쪽으로 길게 비친 골목길이 요즘 '핫'하다고 소문난 한남동 'T자 골목'이다.

6호선 한강진역부터 이태원동 제일기획 건물까진 걸어서 고작 10분 거리다. 행정구역상 한남동으로 분류되는 이곳 왕복 4차선 도로 양 옆엔 유명 패션숍 '꼼 데 가르송'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고급 레스토랑과 패션숍이 진을 치고 있다. 일명 '꼼데길'이다. 그런데 요즘 가장 '핫'하다고 소문난 곳은 그 뒷길에 있는 'T자 골목'이다. 재기 발랄한 젊은 패션디자이너·아티스트들의 아지트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제2의 가로수 길'이라고 불리는 한남동 뒷골목을 찾아가 봤다.

글=서정민 기자 < meantreejoongang.co.kr > 사진=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 shotgunjoongang.co.kr >

유학파 디자이너들의 새 아지트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을 닮은 풍경에 바로 여기다 싶었죠."

색깔 있는 패션숍, 오래된 주택가, 그리고 개성 있는 젊은이가 묘하게 어울린 풍경. 한남동 'T자 골목'의 특징이다.한 달 전 이곳에 의상실을 연 패션디자이너 양해일씨는 파리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브랜드에서 25년간 활동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파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의 명품 브랜드들이 들어오면서 사라진 '양장점(맞춤복) 문화'를 살리고 싶어요. 가장 멋져 보이는 옷은 비싼 옷이 아니라 내 체형에 맞는 옷이거든요." 그는 올 초부터 압구정동·청담동·부암동·삼청동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들른 데가 이곳 한남동이다. "한강진역부터 대로를 따라 걷다가 아랫길과 연결된 좁은 층계를 발견했죠." 양씨는 채 30걸음도 안 되는 짧은 계단이지만 그 아래로 연결되는 작은 골목길에서 아기자기한 파리의 풍경이 떠올랐다고 한다. "좁은 골목과 계단으로 연결된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구석구석에 작은 의상실과 예쁜 카페들이 숨어 있죠."

유럽에는 오래된 골목길이 많다. 그래서인지 이곳 T자 골목에 들어선 패션숍의 오너 디자이너들 중엔 유럽에서 공부한 유학파가 많다. '엉플래뉴(en pleine nuit)'의 허지인(30)·지예(26) 자매, '하이아데스(hyades)'의 김현서(33)·김은제(32)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했다. '류이케(ryuikei)'의 김희영씨는 영국 런던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이곳에 자신의 첫 번째 숍을 냈다.

런던 출신의 인기 디자이너 스티브J·요니P 부부의 숍도 이곳에 있다. 지난해 초 이들이 강남 신사동 가로수 길의 숍을 정리하고 낯설고 후미진 한남동 골목으로 이사했을 때 패션계에선 꽤 술렁거렸다. 한창 잘나가던 그들이 왜? 그런데 당사자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가로수 길에선 더 이상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없었어요. 몇 개월 동안 새로운 동네를 찾다 이곳을 발견하고 유학 시절 우리가 즐겨 가던 런던 골목길의 자유로운 정서를 느꼈죠."

젊은 아티스트를 위한 열린 공간

T자 골목은 패션뿐 아니라 음악·공연·미술을 공부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도 열려 있다. 대중에게 작품을 소개할 만한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카페와 상점을 '문화공간'으로 대여하고 있는 젊은 사장들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카페 '플리플리(flee flee)'를 운영하는 박관주(37)·최충환(37) 사장은 지난해 12월 카페 문을 열 때부터 '칸칸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이름 있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려면 비싼 수수료와 대관료를 물고도 불공정한 대우를 받기 일쑤죠. 그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우리 카페의 공간 일부를 빌려 주자는 게 칸칸칸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칸'은 카페 내에 설치된 철제 책장의 '한 칸'을 말한다. 각종 창작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와 작가라면 누구라도 이 책장 한 칸을 대여할 수 있다. 대여비는 칸의 위치에 따라 한 달에 4만~9만원 사이다. 책장 한 칸을 대여한 작가는 한 달 동안 그 가격만큼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다. 한 잔에 5000원씩, 말하자면 커피 쿠폰을 미리 사면서 작품도 전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웨이즈오브시잉(waysofseeing)' 역시 보기에는 평범한 카페지만 정기적으로 밴드 공연, 미술작품 전시 등의 행사를 연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임정윤(28) 사장은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며 "카페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임 사장의 공간 활용 아이디어는 색다른 협업에서 또 한 번 빛난다. 이 집 메뉴 중에는 '종찬국수'라는 게 있다. 사진가 이종찬씨가 개발한 특별한 육수로 만드는데 하루에 5그릇만 한정 판매한다. 케이크 전시대에선 베이커리에 심취해 있는 음향전문가 배여정씨의 '작품'을 전시·판매한다. 임 사장은 "어떤 장르든 창작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라면 환영"이라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사진·음악·영상·음식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구(新舊) 문화가 공존하는 따뜻한 골목

지난 1년간 T자 골목에 둥지를 튼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이 골목의 진정한 멋은 신구 문화가 공존하는 따뜻한 풍경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젊은 아티스트들의 개성 있는 패션숍·카페 중간중간에 오래된 쌀집, 미용실, 수퍼마켓이 섞여 있다. 합덕슈퍼·경기부동산·은조미용실·헤어모아 등등…. 모두 이 골목에서만 30년이 넘었다. 이 골목의 터줏대감인 경기부동산 김선현(66) 사장은 "젊은이들의 아이디어가 좋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하루에도 2~3명씩 새 건물을 찾는 이들이 찾아오지만 대부분이 일반 가정주택이라 쉽게 풍경이 바뀔 것 같진 않다"고 했다.

새로 이 골목에 입주한 젊은이들과 오랫동안 이 거리를 지켜온 어르신들이 어울리는 소박한 이야기도 정겹다. 플리플리의 최충환 사장은 "지난겨울엔 카페 영업보다 눈 치우는 일을 더 많이 했는데 동네 어르신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풍경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생활방식은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쉽게 무시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골목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웨이즈오브시잉의 임 사장도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 집들을 일일이 방문해 양해를 구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의 밤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공연과 매장 영업시간을 자정까지로 한정하는 건 이 골목의 규칙"이라고 했다. 3주 전 문을 연 액세서리 공방 '먼데이 에디션(monday edition)'에서도 어르신들과의 소박한 일화가 종종 벌어진다. 진주와 황동을 주 소재로 하는 이곳의 쇼윈도 제품을 보고 동네 할머님들이 "진주반지와 목걸이를 수선할 수 있느냐"며 들고 오신단다. 맘씨 좋은 먼데이 에디션의 젊은 처자들은 기꺼이 할머님들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있다.

이처럼 한남동 뒷골목에선 지금, 사람 냄새 나는 새로운 문화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다.

서정민.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권혁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shotgun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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