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오빠, 박근혜에 불법 통치자금 수백억 건넸다"

입력 2012. 6. 18. 09:29 수정 2012. 6. 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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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호 기자 전두환 취재펀드 1주일만에 3천만원 모금

[미디어오늘 최훈길 기자]

이상호 기자가 최근에 주로 일을 하는 곳은 홍대 부근 카페다. MBC C & I < 손바닥 뉴스 > 가 일방적으로 폐지된 뒤 사측은 이 기자에게 광고 영업을 제안했지만, 그는 취재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회사로부터 더 이상 취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 기자는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이 카페에서 제작진 회의를 하고 취재 계획을 짜며 취재원을 만난다.

이 기자가 이번에 도전하는 것은 국민 모금으로 '전두환 특별 취재'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수십 차례 연희동을 찾으면서 '훈장 수여', '황제 경호' 등을 잇따라 비판해 왔다. 욕설은 기본이고 협박과 구타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그 당시보다 현재가 더 열악한 상황이다. 회사는 < 손바닥 뉴스 > 에서 전두환 관련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소송에 일체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프로그램을 폐지했고, 제작팀을 해산시켰다. 또 현 정권 출범 이후 공안 분위기에 제보자들은 '잠수'를 탔다.

하지만, 이 기자는 굿펀딩( www.goodfunding.co.kr)에 '전두환 소송비 및 특별취재팀' 모금에 나섰다. △소송비 마련 △전두환 특별 취재팀 구성 △ < 손바닥 뉴스 > 후속인 < 발뉴스 > 제작비 마련을 목표로 지난 12일부터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소액의 기부로 프로젝트 수행에 나서는 방식)을 시작했다. 언론사 취재·제작비를 국민 모금 형식으로 마련하는 것은 미국 등에서는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이례적인 일이다.

발뉴스 이상호 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기자의 시도에 시민들은 폭발적으로 화답했다. 1주일도 채 안 돼 700여 명으로부터 3천여만 원(목표 1달 5000만 원)이 모금됐다. 해외에서도 모금에 참여했고, 심지어 한 고등학생은 "독재자 전두환씨를 꼭 좀 봉인시켜주세요"라고 당부하며 모금에 참여했다. 어떤 광고도 없었고 언론의 관련 보도도 드물었는데, 트위터 등에서는 '입소문'으로 이번 모금 소식이 퍼져 나가고 있다. 이 기자는 "국민의 마음이자 준엄한 명령"이라고 촌평했다.

그는 "상식적인 질문부터 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5공에 부역했던 언론인, 재벌, 지식인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현실, 전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에 대해 '상식'을 다시 묻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시절 '통치 자금'을 받은 것,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재직 시절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의 관계도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 그가 "전두환은 현재 대한민국 주류의 모태인 빅브라더"라고 촌평한 이유도 이 같은 현실 권력과의 관계 때문이다.

이상호 기자는 "펀드 2호는 이건희"라고 밝혀, 향후에도 정치·경제의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카메라를 들이댈 계획이다. "박제화 된 기자, 와이파이 없는 네이게이션"을 거부한 이 기자를 지난 15일 오후 '집무실'이 돼버린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공익 펀드에 1주일도 안 돼 600명이 넘게 참여했고, 모금액이 3천만 원을 돌파했다. 예상했나?

"만 사흘(15일 점심 현재)이 안 됐는데 이렇게 폭발적인 반향이 있을지 몰랐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로, 국민들이 정말 진실에 목말라 있고 전두환 5공 세력이 다시 정치에 복귀하는데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후원금이 돈이지만 사실은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점이다. 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해야겠구나', '취재하고 기사 쓰는데 정말 더 신중해야겠구나', '더 철저하게 해야겠구나'하는 부담감이 크다."

- 공익 펀드로 제작비 등을 마련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도하게 된 계기는?

" < 손바닥 뉴스 > 에서 영화 '26년'을 펀딩하는데 참여했다. (이후 < 손바닥 뉴스 > 가 폐지됐고, 자발적으로 방송을 하려고 했지만 제작비가 부족했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 손바닥 뉴스 > 제작팀들이 '우리도 이 펀드로 비용을 마련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시작을 하게 됐다."

- '전두환 특별 취재팀'에는 누가 참여하고, 방송은 어떻게 나오나?

" < 손바닥 뉴스 > 제작팀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는데, 사실 팀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직 못 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어떻게 생산성 있는 보도물을 만들 수 있을지, 지속력을 갖춘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보도물은 내 홈페이지( www.leesangho.com)와 팟캐스트에 올리기로 했다."

- 이상호 기자의 트위터로 공익 펀드 소식을 알리기도 했는데 시민들 반응은 어떤가.

"어디 광고를 하거나 인터뷰를 한 적도 없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분들이 화답해줘 놀랐다. 트위터 같은 SNS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멘션을 보내주셨고 관련 글을 리트윗(RT)하면서 서로가 알려 나갔다. 몇몇 분들은 홍보일꾼을 자처해 시시각각 적립 상황을 안내하면서 모금을 독려하기도 했다. 특히,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조성하 학생(고등학교)은 트위터에 "인터넷 쇼핑한다고 거짓말치고 엄마 카드로 펀딩했어요. 이럴 땐 제가 어른이었으면 좋겠네요. 저희 세대까지 판치지 못하게 독재자 전두환씨 꼭 좀 봉인시켜주세요"라고 멘션을 올렸다. 찡했다. 그래서 답글(RT)로 눈물 두 방울(ㅜㅜ)을 썼다.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우리 어린 세대들에게 미안하다."

- 여러 가지 사안 중에서 공익 펀드의 첫 주제로 '전두환'을 선택한 이유는?

" < 손바닥 뉴스 > 에서 전두환을 취재한 이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나뿐만 아니라 오디오맨, AD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검찰은 강경한 입장이다. 나만의 소송이면 혼자라도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두 친구들은 젊은데 이번 수사로 인생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비정규직인 두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회사는 '무리한 취재를 지시한바 없기 때문에 이상호 개인의 문제'라며 선을 긋는 상황이다. 화가 났다. 그동안 MBC가 국민의 사랑을 받고 공영방송으로 자리매김한 것에는 국민의 방송을 한다는 자부심, 예기치 않는 일을 당했을 때 회사가 책임져 준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당하고 중요한 사안에 회사는 나몰라라 하고 있다. 우리가 전두환씨한테 빚 받으러 간 게 아니지 않나.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퇴보하는 MBC 저널리즘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검찰, 경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재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10년 이상 연희동을 찾았다. 경호원들도 나를 알고 있고, 민감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전두환 수하처럼 움직인다. 이미 보도가 됐지만 경호원들이 요즘도 전두환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전두환은 철마다 이들을 잘 챙겨준다고 한다. 그 양반들 입장에서는 심기가 안 좋으니까, 어떻게든 우리가 오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엮으려는 것 같다. 이렇게 엮어버리면 골치 아파서 안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니까. 그런데 난 상식적이지 못하다. 연희동에 자주 갔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

- 연희동에 그렇게 오랫동안 자주 간 이유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전두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다. 신군부가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에 폐해를 끼쳤고, 민주주의를 후퇴 시켰는가. 1년 선배인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그 장소에 있었다. 누구보다도 전두환의 폭력성, 야수성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두려움도 있다. 사실 나도 한동안은 '그 정도면 됐다, 역사적 청산이 됐다. 사면 복권 소식에 분하지만 받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회가 혼란스럽고 공동체가 무너지더라도 70~80년대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적 봉인이 공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0년 초에 우연한 기회에 < 시사매거진 2580 > 에서 훈장에 대해 취재하게 됐다. 깜짝 놀랐다. 전두환, 노태우씨 집에 훈장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시 어떤 내용을 취재, 보도했나?

"DJ,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인사들이 전두환에게 세배를 했다. 세배한 장면을 입수해 살펴보니 한쪽 벽면에 30~40개의 훈장이 붙어 있었다. 정말 충격을 받았다. 국가 훈장은 대한민국 명예의 상징이다. 반란수괴로 확정된 독재자 집에 훈장 30~40개가 붙어 있는 게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 당장 취재를 했다. 행정자치부 장관, 사훈 과장을 인터뷰했다. 사훈법에 따르면, '징역 3년 이상 형이 확정되면 훈장을 박탈'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훈장을 박탈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두환씨한테 가서 '훈장 내놓을 생각이 없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전두환 체포조'로 가본 적이 있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연희동에 가봤다. 가서보니 너무 서슬이 시퍼랬다. 기자들도 가보면 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 싸여 무지하게 맞았다. 겨우 겨우 전두환씨를 만나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왜 MBC에 그 얘기를 해주냐'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후 훈장 관련 보도가 나갔고 정치권에서 뒤늦게 비상이 걸려 1년이 지나 겨우 훈장을 뺏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현실 속 권력이구나. 아직도 전두환 시대는 끝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 이 보도 이후에도 연희동을 계속 찾은 이유는?

"이른바 '황제 경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전직 경호팀을 대상으로 탐문을 하다 중요 취재원을 만났다. 당시에 '황제 경호'의 문제 몇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경호 인력의 사병화다.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니, 조폭들이 오야붕 모시듯 경찰들이 전두환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전두환이 일요일에 배드민턴을 치면 무릎 보호를 위해 경찰들이 매트리스를 깔았다. 그 이면에는 경찰 행정의 부조리한 의혹도 상당수 있었다. 전두환씨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게 우려되기 전에는 과잉 경호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두환이 골프를 칠 때 경찰이 총을 들고 경호를 했다. 전두환이 등산하러 갈 때는 교통 신호를 차단해 줬다. '황제 경호'를 중점적으로 취재한 때가 노무현 정부 때였다. 연속 보도를 해도 일절 시정조치가 없었고 관계자 징계도 없었다. 도리어 기자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취재 방해만 있었다.

침여정부 때도 그랬는데, MB 정부에서는 더 (과잉 경호가)심해졌다. < 손바닥 뉴스 > 의 취재를 하면서 다시 연희동을 갔는데 놀랐다. 전두환의 위세가 현저하게 커졌다. 전두환 측근들이 DJ, 노무현 때는 욕은 안했는데 이번에는 욕설을 했다. 과거에는 경찰이 출동을 안 했는데, 이번에는 신고한지 3분 만에 도착했다. 첫날부터 체포됐다. MB 정부가 출범하고 공안 분위기가 생기고 5공 세력이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 현 정부와 전두환쪽과의 일종의 커넥션 같은 정황이 있다는 건가?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추대됐다. 그는 하나회 막내다. 공개적으로 전두환을 멘토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전두환)보안사령관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은 청와대에 남아있던 불법적인 자금인 이른바 '통치 자금' 중에서 현재 시가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박근혜에게 줬다고 했다.(10·26 이후 청와대에 들어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박정희 집무실 제1금고에서 9억 원을 발견하고는 박근혜를 불러 준 일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재직 당시 5공 치하에서 전두환과 대단히 큰 이해관계를 교환했던 사이다. 전두환은 현재 대한민국 주류의 모태인 빅브라더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헐거웠던 봉인이 현재 일시에 해제된 걸로 보인다."

- 그렇다면 과거와 달리 '전두환 특별 취재팀'으로 어떤 보도를 할 것인가.

"경천동지할 특종보다는 상식적인 질문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이를 테면, 전두환과 5공에 부역했던 수많은 지식인들, 언론인들, 재벌들이 현재 어떻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추적해 보려고 한다. 원점에서 전두환 일가의 재산을 검증해야 한다. 국가 예산이 10조 원 하던 시절에 전두환이 가져간 돈이 9500억 원이었다. 오늘로 따지면 최소 수십조 원이다. 그런데 정부 추징액은 300억 원에 불과했고, 지금 전두환 일가의 재산이 2~3천만 원이라고 한다. 5공 피해자들의 증언도 들을 것이다. 끝으로 해외 비자금에 대한 제보 취재도 하려고 한다. 스위스에 있는 전두환 비밀 계좌를 관리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제보였는데, 그분들은 '아직 전두환의 시기가 끝나지 않아 (구체적인)제보를 못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제보를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만, 국민들이 < 발뉴스 > 를 믿고 계시니까 다시 한번 제보를 주셨으면 좋겠다."

- 현재는 비자금 관련 제보는 없는 상황인가.

"없다. 쏙 들어갔다. 엄동설한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걸 제보해봤자 개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적인 질문들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해명하고, 언론을 통해 소통이 원활해야 하는데, 언론이 힘들여 문제 제기를 해도 권력 기관은 그 질문을 우롱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것 자체도 유보된 것 같다. 공동체의 건강성이 유지되기 위해서 소통이 돼야 하는데 정상적인 소통도 안 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고통적인 내용을 꺼내 제보를 할 수가 있을까. 내가 진정성을 먼저 보여 드리면서 (제보를)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전두환 취재가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

"사실 부담이 많이 된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죽지 않았다. 대단히 권력화 돼 있고 자본화 돼 있다. 중요한 점은 이분들이 확신범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광주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고, 학생, 시민, 노동자를 고문하고 때려 죽인 경험이 있다. 그들과 의견이 다른 나도 그들의 오판에 따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각오하고 있다. 실제로 취재하면서 '그만해라. 조심하는 게 좋을꺼다'라며 협박이라든지 경고 같은 것도 있었다. 전두환씨 측근으로부터 듣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전화로 그 얘기를 들으며 정말 등골에 땀이 났다. 그래도 인터넷이나 트위터 가 발달돼 있으니까 국민들이 지켜줄 것이라고 본다. 정말 두려운 것은 < 발뉴스 > 가 여러분 알권리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다."

인터뷰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이상호 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C & I는 < 손바닥 뉴스 > 를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이번에도 사측이 < 발뉴스 > 취재를 문제 삼지 않을까.

"사측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손톱만큼도 없다고 본다. 나는 기자이고 뉴스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내가 자회사로 가길 희망하고 사측이 인사 발령을 낸 취지도 인터넷 뉴스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해 오고 있는데, < 발뉴스 > 는 블로그의 영상 버전이다. 그걸 막으면 언론사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 발뉴스 > 를 막는 건 기자들에게 블로그나 트위터를 하지 말라고 하는 말과 같다. 박제가 된 기자, 와이파이가 연결 안 된 네이게이션 같이 살라는 말 아닌가. 기자로서 취재하는 부분, 시청자와 만나는 부분에서는 회사와 타협할 생각이 없다. 회사의 어떤 탄압이 있어도 기자니까 취재는 계속할 것이다."

- 이번에는 '전두환 특별취재'로 공익 펀드에 나섰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취재비를 마련할 예정인가.

"미국에 2년 간 있으면서 1년은 버클리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커런트 TV(Current TV, 앨고어 전 부통령 등이 설립한 진보 언론)의 자문역을 했다. 미국의 경우 돈 있는 사람들이 죽으면서 언론사나 언론 후원 단체에 주로 기부를 한다. 미국 사회의 민주화, 다양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곳이 언론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점점 고령화 되고 핵가족화 되면서 자녀에게 유산을 주기보다는 사회적인 재투자를 많이 했다. 많이 부러웠다. 이번에는 전두환 취재 과정에서 빚어진 소송 비용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참에 미국처럼 '국민 모금식 취재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했다. 앞으로도 뜻 있는 언론인들이 뭉쳐서 프로젝트별로 펀드를 운영해 취재해보면 어떨까? 언론 개혁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횟수로 18년 간 언론사 생활을 하면서 불만을 가진 것이 언론사 편제가 기관별로 정치 기구처럼 닮아버린 것이다. 권력 감시라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기관의 이해를 대변하게 되고 스스로 권력화가 돼 버린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편집국이 의제별로 팀이 꾸려지면 어떨지 고민해봤다. 여성팀, 인권팀, 전두환팀, 재벌팀, 병무비리팀 등 프로젝트별로 팀을 꾸리고 그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팀을 해체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경력 관리도 할 수 있고, 전문성도 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서 발뉴스 펀딩 2호는 이건희, 펀딩 3호는 다문화를 주제로 계속 이슈별로 프로젝트별로 취재하는 팀을 만들면 어떨까. 전문성 있는 언론인과 사회 운동가 같은 사람이 모여서 같이 취재하고, 직접 국민들에게 심판받는 언론 조직이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 새로운 시도다. 뉴미디어 환경인데 앞으로 언론이 어떤 뉴스로 승부해야 한다고 보나?

"공중파에서 인터넷 생방송에서 팟캐스트까지 어찌보면 내가 겪는 (제작)상황은 열악해졌지만, 덕분에 다른 동료 기자들이 보기 힘든 부분을 보게 됐다. 방송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현 정부의 언론 정책으로 언론자유가 위축되는 정치적인 이유로 공중파의 역할이 작아진 것도 있지만, 기술 변화에 따라 공중파 매체의 환경이 많이 변한 것 같다. 기술력의 발달, 매체 소비 패턴의 변화 등 언론 환경의 변화가 명백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 속도가 가속화 되고 있다."

- 끝으로 MBC 기자 선배로서 현재 MBC 파업에 대해 말하고 싶은 점은?

"자회사로 파견 나온 신분이어서, 내가 원해도 파업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하고 있다. ( < 발뉴스 > 취재 과정에서)김재철 사장도 만났고, 이른바 부역 기자들도 만났다. <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 에 나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방송도 했다. 노조원으로서 소명으로 느끼는 부분에 대해 제한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말 소중한 방송인데 너무나 망가지는 것 같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

김재철 사장이 생각하는 MBC의 미래가 국민들이 바라는 MBC의 미래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국민들은 경쟁력 있고 돈 버는 MBC가 아니라 어려운 국민과 함께 해주는 친구 같은 MBC를 원한다는 것이다. 김재철 사장이 지금이라도 이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 미디어는 허상에 불과해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리는 순간 방송국은 스튜디오 임대 회사에 불과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면 한다. 모두가 생활인인데 800명에 달하는 MBC 선후배들이 이 더위에 길거리에서 고생하고 있다. 아무쪼록 빨리 파업이 끝나서 우리 선후배들의 가족도 MBC도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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