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내몰리는 다문화 2세들..'고교 졸업하면 불법체류자'

박송이 기자 2012. 6. 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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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다문화 2세 소년이 주택가를 돌아다니면서 방화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소년은 '혼혈'이라는 주변의 편견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상처받은 다문화 2세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확인되는 사건이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임선일 성공회대 박사는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지역의 PC방을 낮에 가보면 다문화 2세나 이주노동자 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며 "학교에서 차별을 받고 폭력적인 따돌림에 노출된 다문화 2세나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이탈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명동 서울문화교류관광정보센터에서 다문화가정 취학설명회가 열렸다. / 김창길 기자 초등학교 진학률 85%, 고교는 30%에 그쳐

다문화 2세들의 학교이탈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2세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85%이지만 중학교로 올라가면 60%, 고등학교에 이르면 30%대로 급락한다. 다문화 2세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낮은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언어적 문제 등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하지만 다문화 2세들을 가까이서 접하는 활동가들은 따돌림과 거기에서 오는 소외감, 정체성 혼란이 이들이 학교를 이탈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다문화 2세 고등학생인 임지영(15·가명)양은 학년이 바뀌는 것이 두렵다. 그는 "환경이 한 번씩 바뀔 때마다 크게 긴장한다. 새로운 친구들이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바뀔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밀집 지역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 지역을 벗어난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고립감을 느끼는 다문화 2세들이 많다. 용산 해방촌에서 다문화 2세와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 활동가는 "이 지역 초등학교는 다문화 가정이 워낙 많아 다문화 2세를 왕따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없어 아이들이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근방을 벗어나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따돌림 등으로 정체성의 혼란, 소외감을 느껴 우울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보다 강력한 다문화 정책 시급

임선일 박사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회 갈등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 박사는 "정부에서 제도를 통해 다문화 가정에 혜택을 준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이주민에 대한 배제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다문화 2세들이 정상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이라는 보장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의 편견과 배제의 시선을 바꾸지 않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다문화 2세들이 하층 계급을 구성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문화 2세들을 위한 다문화 학교가 사회적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다문화 학교인 '지구촌 학교'를 설립한 김해성 목사는 "다문화 2세들은 학업성취도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다문화 2세도 결국 한국 사회에 섞여 살아갈 아이들인 만큼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지금처럼 다문화 2세들이 한 반에 1~2명꼴로 있게 되면 통합이 아니라 '개밥의 도토리'가 된다. 우선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탈하지 않고 상처를 덜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다문화 2세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좀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려면 더 강력한 다문화정책이 필요하다. 다문화 2세들을 전담하는 교원도 늘리고 특정 지역에 이주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이 밀집해서 살기보다는 섞여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다문화 가정은 20만 정도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정치권 또한 이들의 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 2만 8511명, '고교 졸업 후 불법체류자'

2011년 미등록 이주민은 17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면 자녀도 미등록 이주민이다. 2010년 현재 법무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18세 미만 미등록 이주 아동은 2만8511명이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민 부모 사이에서 출생하거나 외국인 부모가 국내 입국 후 초청하는 경로 등으로 국내에서 살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 자녀는 초·중·고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와 같이 '불법체류자'가 되어 곧바로 단속의 대상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더라도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들은 무국적자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지원하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현재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선일 박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차별을 당하는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승리다문화비전센터의 김승일씨도 "다문화 가정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미등록 이주 아동은 지원에서도 배제돼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한 공단 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와르(가명·19)는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왔다. 미등록 이주민 자녀로 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현재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비교적 한국생활에 잘 적응한 안와르는 한국어도 자유롭게 구사하고 친구도 많다. 물론 상처도 받았다. 중학교 때 선생님들이 이름 대신'어이, 방글라데시'라고 불렀고 친구들은 안와르와 함께 밥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다른 이유로 잠을 못 이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를 전혀 가늠할 수 없어서다.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안와르는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만 모든 길이 막혀 있다. 그는 "나에게 꿈은 꿈일 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와르가 살고 있는 공단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 7세 이하의 영·유아들이다. 안와르와 같은 사례가 적어 지금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현재 영·유아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성장하게 되면서 이들의 교육권과 건강권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인 칸(가명·45)은 3살 된 딸이 있다. 그는 "어제도 아이가 감기로 병원에 가서 병원비 3만원을 냈다. 예방접종 비용도 너무 비싸 주사를 맞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UN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이 사회적 출신과 관련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보호조치를 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들의 건강권이 방치된 상황이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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