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부작용 '시간낭비 격차'
NYT "빈곤층 자녀, IT기기로 더 많은 시간 허비"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 `디지털 격차'는 1990년대에 기술 분야의 유산자와 무산자 계급을 구분하는 용어였다.
이 구호는 컴퓨터를 비롯한 최신 IT(정보기술) 기기가 미국의 모든 가정, 특히 저소득층에 보급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결국 디지털 격차는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이는 '시간낭비의 격차'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유발했다. 빈곤층 자녀들이 부유층 자녀들에 비해 컴퓨터와 게임기, TV 등 각종 전자기기 앞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카이저가족재단(KFF)의 2010년 보고서를 인용, 부모의 최종 학력이 고졸 이하인 가정의 자녀들이 디지털 기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대졸 이상인 부모의 자녀들에 비해 하루 평균 90분이나 많다고 보도했다. 1999년에는 양측의 격차가 16분에 그쳤었다.
이 조사에서 고졸 이하 부모의 자녀들은 매일 11시간30분을 TV를 보거나 컴퓨터나 게임기 등을 갖고 놀며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1년 전에 비해 4시간40분이 늘어난 것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정도는 덜했다. 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들이 디지털 기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10시간으로 11년 전보다 3시간30분 증가했다.
이런 격차는 부모가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살피고 제한할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파생된 문제다.
캘리포니아주(州)의 한 공립중학교 교장인 로라 로벨은 "개인적으로 집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이 구세주도 아니다"며 "페이스북을 어떻게 모니터링하는지 모른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말했다.
미 정책당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억달러를 투입해 컴맹퇴치 강사를 대규모로 양성할 방침이다. 이들 강사는 각급 학교나 도서관 등에 배치돼 부모와 학생, 구직자들에게 바람직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게 된다.
이와 별도로 올 가을에는 소년소녀클럽,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시민 연맹, 유색인종 발전을 위한 전미협회 등에 이들 강사를 파견해 컴맹퇴치 활동을 도울 계획이다.
`커넥트 투 컴피트'라는 구호의 이 프로젝트에는 베스트바이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민간기업도 재정을 후원한다.
연방정부에 앞서 일부 주정부와 민간단체도 빈곤층 부모나 실직자들에게 IT기기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가르칠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율리우스 게나초우스키 FCC 의장은 "컴맹 퇴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부모에게 교육과 직업훈련을 위한 기술 사용법과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 또한 디지털 격차 해소의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미국에서 디지털 격차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FCC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정의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은 65%에 달하지만 연간 소득 2만달러 이하 가정의 보급률은 40%에 머물고 있다. 히스패닉과 흑인 가정의 보급률은 각각 50%와 59%로 집계됐다.
그러나 통신망이 갖춰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다나 보이드 연구원은 "통신망은 그동안 간과한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측면이 있다"며 "디지털 격차 해결을 위한 초기의 노력은 컴퓨터가 오락에 사용될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wolf8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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