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회의 땅' 쿠바 재발견

2012. 5. 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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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거리에 현대차…집집마다 삼성TV현대차부품 구하려 경제장관 訪韓도▶저무는 사회주의…부모세대는 혁명시대 향수 자녀들 "가장 가난한 나라"▶자본주의 신호탄…작년 車·주택매매 허용 공기업 절반 민영화 추진

◆ 쿠바 재발견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청사 내 쿠바나항공 발권대. 매일 오전 8시 45분 쿠바 아바나로 향하는 쿠바나항공 발권대에는 출발 2시간 전부터 산더미 같은 짐들이 수북이 쌓인다. 마치 화물비행기를 방불케 할 정도다. 짐이 이렇게 많다 보니 수속 시간도 유난히 오래 걸린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기자에게 발권 담당자는 "쿠바로 가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많은 짐을 가져간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아바나에 산다는 카를로스 곤살레스 씨(51)는 "어렵게 나왔으니 이 정도는 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갖고 갈 짐도 아니나다를까 산더미 같다. 삼성전자라는 로고가 크게 박힌 TV에서부터 컴퓨터모니터 그리고 온갖 전기제품. 여기에다 친척들이 부탁한 식료품에 잡동사니까지. 그는 "아바나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너무 비싸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비행기는 9시 10분에야 겨우 이륙했다. "제 시간에 이륙하지 않는 최악의 항공사로 꼽히는 쿠바나항공이 고작 25분 늦었다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

기자는 1999년 이후 12년 만에 두 번째로 쿠바를 찾는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쿠바는 겉으로는 최소한 변한 게 거의 없었다. 말레콘 해변의 젊은이들, 올드타운의 지독한 슬럼가,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1950년대 체 게바라의 혁명 이전 미국산 자동차들. 모든 게 그대로다.

내국인들의 호텔 출입이 허용됐다고 하지만, 출입문을 지키는 경비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쿠바인을 골라 낸다. 길거리의 몇몇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갖고 다녔지만 요금이 비싸 전화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도 모뎀을 사용하는 탓에 이메일을 받거나 인터넷 검색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속도가 느리다. 지난해 7월 개통 예정이었던 해저케이블을 통한 초고속통신망 서비스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불기 시작한 재스민 혁명 바람에 전면 중단된 상태다.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올드타운의 플라사 비에하 광장에서 만난 호세 알바레스 씨(45)는 "쿠바는 변할 수가 없다. 미국의 경제 봉쇄가 존재하는 한 쿠바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며 비난의 화살을 미국으로 돌렸다.

그러나 겉모양과는 달리 쿠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변하고 있었다.

12년 전 쿠바를 찾았을 땐 길거리 이곳저곳뿐 아니라 집집마다 걸려 있던 쿠바 국기가 이젠 보이지 않았다. 혁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늙어가고, 2세들이 성장하면서 국가관이 변했기 때문이리라.

늦은 밤 아바나 시내 뒷골목 선술집에서 만난 청년 마누엘 페르난데스(24)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이면 정부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서로를 감시하는 조직이 있긴 하지만 혁명 1세대들에게나 통하는 것일 뿐 지금은 아무도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카스트로의 토지 개혁을 목격했던 아버지 세대는 아직도 향수에 젖어 있지만 젊은이들은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아바나 시내 어느 초등학교 담벼락에 젊은이들이 "군인들 물러나라"는 페인트 낙서를 남겼더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경찰들이 이를 분홍색 페인트로 덮어버린 사건도 일어났다고 전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념도 막지못한 욕망…신세대 "돈벌면 삼성 휴대폰 살것"

그렇다고 쿠바에서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젊은이들 중에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행복해 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가 직업과 주택 그리고 의료 교육을 무료로 주고 있고, 부족하긴 하지만 먹고 사는 데도 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쿠바 정부는 이제 국민을 책임지고 먹여살리는 데 벅차 하는 모습이다. '모든 걸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주의 이념도 경제난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지난해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는 급기야 사회주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했다. 당장 지난해 담배보조금이 폐지되고, 욕실용품 배급이 중단됐다. 직장에서의 식사 제공이 중단되고 유류보조금도 올들어 없어졌다. 주택 매매도 허용됐다. 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사회주의 자존심의 포기를 의미하고, 나아가 주택 매매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식 '이윤'을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 미장원 등 일부 소규모 사업에서 자영업을 허용해 '국가가 더 이상 모든 국민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고, 일반 국민도 중고 자동차 매매를 가능토록 했다.

한 발 더 나가 국내총생산(GDP)의 95%를 차지하는 국영 부문을 반으로 줄이기로 하는 조치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철밥통 공무원들의 대대적인 감원도 예상된다. 어느 쿠바인의 말대로 "국가주도형 경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이행되는 신호탄"이 될 듯하다.

서정혁 코트라 아바나 관장은 이에 대해 "개방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늦다"면서 "모든 것을 섣불리 기대하는 건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쿠바가 고립 국가로 인식되지만 실제 유엔 회원국 195개국 중 184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는 미국 한국 이스라엘 정도일 뿐이다. 미국이 없는 쿠바에서 중국과 베네수엘라가 맹주 노릇을 한다. 중국은 수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고, 이 돈으로 중국 물건을 구입토록 조건을 맺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쿠바 시내에 다니는 관광버스나 공사장의 중장비가 모두 중국 제품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수차례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북한이 최대 걸림돌이다. 홍성화 주멕시코 대사는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영사관계부터 맺자는 제의를 했으나 쿠바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런 탓에 쿠바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으로는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가 유일하다. 그것도 이곳에 사무소를 여는 데만 5년여가 걸렸다.

쿠바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거부해도 한국산 제품은 아랑곳하지 않고 쿠바를 파고 들었다.

삼성전자 휴대폰과 현대차는 쿠바 사람들의 '로망'이다. 가장 갖고 싶은 제품이다. 말레콘 해변에서 만난 청년들은 "돈을 모아 삼성전자 휴대폰을 사고 싶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식당에서 만난 종업원 마리아 그로드리게스(25)도 "집에 삼성 TV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념도 인간의 욕망을 막진 못했다.

그 덕분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7000만달러의 제품을 팔았다. 올해는 1억달러를 거뜬히 넘길 전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쿠바에 사무실을 내지 못했다. 현지 중개인을 통해서만 물건을 공급할 뿐이다.

현대차의 약진은 더욱 눈이 부시다. 쿠바 아바나 시내 아스팔트를 달리는 외제차 두 대 중 한 대는 한국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중 현대차가 단연 많다. 소형차가 주류를 이루지만 렌터카회사에서는 쏘나타에서부터 그랜저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삼성차와 기아차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현대차 현지 무역중개인이 부정 혐의로 쿠바 정부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으면서 완성차와 부품 수입이 전면 중단된 틈을 이들 기아차와 삼성차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부품 공급이 1년 이상 중단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미국 차가 아직도 멀쩡하게 굴러다닐 정도로 귀신같이 차를 고쳐 사용하는 쿠바인들이지만 현대차 부품 조달 차질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상 처음으로 쿠바 경제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바로 현대차 부품 조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후문이다. 경제장관이 나서 현대차 문제를 해결해야 할 만큼 현대차가 쿠바에 많이 깔렸고, 쿠바인들이 현대차를 좋아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바나(쿠바) = 장광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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