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싸가지 없다"는 최씨 박근혜 찍을까

입력 2012. 5. 14. 19:50 수정 2012. 5.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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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난한 민주주의 상. 빈자의 꿈-보수 집권

진보? 보수? 나라가 잘살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

사회 양극화가 깊어질수록 각 정치세력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겠다고 저마다 나선다. 그들의 정치적 구애 앞에서 한국의 빈곤층은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 <한겨레>는 국내 처음으로 빈곤층 정치의식 여론조사를 벌였다. 전국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상중하 가운데 고르게 하고, 정당·정치인 선호도를 비롯한 여러 항목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박정희, 새누리당, 박근혜를 첫손에 꼽고 있었다.

여론조사와 별개로 심층면접조사도 실시했다. 지난 4월말부터 2주에 걸쳐 서울 강서구 화곡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70명의 빈곤층을 일일이 면접조사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이 주로 사는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여론조사의 숫자보다 더 강하게 보수정치에 대한 선호를 드러냈다. 개혁 또는 진보 정치세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학)는 "학계에서도 이런 연구가 시도된 적이 없다"며 "<한겨레>의 보도가 한국 빈곤층 정치의식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서울 강서구 화곡동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최영훈(가명)씨는 48살 무직 남성이다.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화법으로 재구성했다.

보수가 정확히 뭔지는 잘 몰라진보는 싸가지 없어 보이고나라가 잘살아야 우리도 잘살지노무현은 너무 물러김정일한테도 꼼짝 못하고그래서 이명박 주저없이 찍었지새누리당이 잘사는 편만 든다고?완벽한 정치가 어딨겠나밑바닥 사는 사람들이야누가 되든 달라질 것 없어삼겹살 사준다면 찍어주겠다

내가 보수냐고?

사실 보수가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진보라고 하는 애들이 텔레비전 나오는 거 보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왜 그렇게들 목소리가 크고 앙칼진지. 그냥 '싸가지' 없어 보인다. 그런 게 싫어 보이면 보수인가? 새누리당을 보수라고 하나? 그렇다면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나는 보수가 맞나 보다.

특별히 보수가 되려고 노력한 적은 없다. 그냥 나라가 잘사는 쪽으로 발전하는 걸 보고 싶다. 아이엠에프(IMF·외환위기) 때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나라가 다 망한 거 아니었나. 나라가 망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나라가 잘살아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 최근에 복지가 많이 좋아진 건 그나마 나라가 잘살게 돼서 그런 거 아닌가?

①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빈곤층은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한겨레> 정치의식 여론조사를 보면, 자신의 이념 성향을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은 하층은 14.0%로, 상층 3.3%, 중층 5.0%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난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다. 민주당을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다 보니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뉴스를 봐도 싸우는 것만 나오더라. 그 당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진보당은 뭔가? 진보당은 아예 잘 모르겠다. 들어본 적이 없다. 새누리당하고 민주당밖에 모른다.

파업 같은 거 하는 노동자들 보면 이해가 안 된다. 나 같은 반거지도 있는데, 멀쩡한 직장 있는 놈들이 무슨 파업인가. 세상 돌아가는 일은 텔레비전 저녁 7시 뉴스에서 본다. 일찍 자기 때문에 9시 뉴스는 못 본다. 신문은 안 본다. 인터넷은 할 줄 모른다. 휴대폰도 없다.

② 면접조사한 임대아파트 주민 가운데 90%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정치 정보를 얻는다"고 대답했다. 인터넷은 1.5%뿐이었다. <한겨레> 정치의식 여론조사에서도 하층 집단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정치 정보를 얻는 경우(58.7%)가 많았다. 신문 및 잡지는 7.3%에 불과했고, 인터넷으로 접하는 비율은 19.0%였다. 상층의 경우 인터넷으로 정치 정보를 접한다는 비율이 34.7%였다.

내 고향은 서울 봉천동이다. 그 동네 사람들은 다 못살았다. 우리 집은 제일 못살았다. 아버지는 일찍 죽었다. 간경화였다나. 엄마는 '함바집'에서 일을 했다. 형과 남동생이 있었다. 우리 형제는 거의 방치됐다. 밥을 '떡 먹듯' 굶었다. 난 주로 구멍가게에서 '뽀리'(좀도둑질의 은어)를 해서 먹었다. 배가 고파 학교를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3일을 굶어봤다. 내내 물만 먹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거 같았다. 너무 배고파 벽을 치면서 막 울었다. 그래도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엄마가 들어왔다. 한 손에 빵이 들려 있었다. 그 빵이 나를 살렸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은 박정희다. 내가 제일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에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다. 그때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건 그 사람 탓이 아니다. 당시엔 내 몸은 힘들었지만 나라가 좋아진다는 느낌이 있었다. 자고 나면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들어섰다. 박통이 새마을운동을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도 놓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 사람을 죽인 놈이 나쁜 놈이다. 아마 박정희는 한번만 더 대통령 하고 그만하려고 했을 거다. 만약 그때 안 죽었으면 영웅이 됐을 거다.

③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나라가 발전해야 내가 산다"고 종종 말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힘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자주 표현했다. 민주주의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닌 듯했다. <한겨레> 정치의식 여론조사에서 하층 집단의 52.0%가 박정희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박정희를 좋아하는 이는 41.7%였다.

고등학교 중퇴 이후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엄마가 날 먹여 살렸다. 엄마는 요즘도 폐지를 줍는다. 1994년. 이곳 임대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당시 138만원을 내고 입주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한달에 48만원을 받고 생활한다. 결혼? 난 여자를 잘 모른다. 날 좋아해줄 리도 없고. 꽤 오래전부터, 아마 20년 전부터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여자들도 나오는데, 거기 여자들은 다 장로나 집사들 딸이다. 내가 넘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새누리당에서 이자스민인가 하는 필리핀 여자에게 공천을 줘서 국회의원이 됐다는 뉴스를 봤다.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만, 그건 마음에 안 든다. 어떻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필리핀 여자가 국회에 갈 수 있나? 그런 아량이 있으면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을 국회로 보내달라.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외국인들보다 못한 대우 받는 거 같다.

④ 가난한 이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복지와 일자리를 이주민들이 뺏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한겨레> 정치의식 여론조사 결과 '외국인의 국회 진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하층의 44.7%가 부정적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상층은 30.6%만이 부정적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빈곤층은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의식에서도 보수성이 강하고 개방성이 낮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새누리당 구의원들이 다닌다. 자주 오는데 나를 보면 꼭 손을 잡는다. 처음엔 시큰둥했는데 자꾸 아는 척을 해주니 고마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난 이명박 대통령도 좋아한다. 이 대통령은 영어도 잘하고 다른 대통령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안 좋아한다. 너무 무르다. 북한에 가서 고개 숙이고 심지어 자살까지 했다. 그때는 동네 사람들도 노무현 찍으라고 그래서, 노무현 찍어줬다. 그런데 정치를 이렇게 할 줄 몰랐다. 김정일한테도 꼼짝 못하고, 대통령으로서 많이 모자랐다. 그 뒤로 이명박을 찍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야 복지가 중요하긴 하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뭐가 다르겠나. 아프고 가난하고 기술 없고 생활능력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산다.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이 동네 사람들 사는 건 똑같다. 새누리당이 잘사는 사람 편만 든다고 하는데 그건 당의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완벽한 정치가 어딨나. 모든 백성을 만족시키는 정치는 없다. 다 그런거 아니겠나.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지만 다시 아이엠에프 터뜨릴 거 같은 사람은 절대 찍지 않을 것이다.

⑤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경우 각 정당의 정책이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정치 정보를 습득할 경로가 거의 없다는 데서 비롯한 문제로 보였다. 특별한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공중파 방송을 제외하면, 신문이나 인터넷은 거의 접하지 않았다. 그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최씨의 경우 통신사의 강압에 떠밀려 집에서 인터넷 회선을 쓰고 있는데, 곧 해지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달에 나가는 2만2천원이 너무 아깝다는 이유였다. 가난한 이들은 미래의 정치보다 당장의 현금에 더 욕심을 냈다.

나에겐 꿈이 없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지금까지 살았는데, 꿈이랄 게 뭐 있겠는가. 정치가 내 인생을 바꿔줄 거라는 생각도 안 한다. 한가지 꿈이 있다면 88살 때 눈감고 자다가 조용히 죽는 게 소원이다. 그리고 지금 삼겹살이 너무 먹고 싶다. 못 먹은 지 1년이 됐다. 누가 삼겹살을 사준다면 이번 대선에서 찍어줄 용의가 있다.

이정국 정환봉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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