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간첩사건' 36년만에 무죄

2012. 3. 30.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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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살이 김원중 씨 재심에서 법원 "고문에 의한 증거조작"

[동아일보]

유신 시절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 '재일교포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김원중 일본 지바(千葉)상과대 상경학부 교수(61·사진)가 36년여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는 김 교수가 청구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29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975년 재판 당시 인정된 증거들은 중앙정보부의 불법 구금과 '잠 안 재우기' 등 고문, 구타에 의한 것"이라며 "이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김 교수는 판결 직후 "이것이 다 한국이 민주화된 덕분"이라며 "우여곡절이 많긴 했지만 정말 잘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1970년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김 교수는 1학년 때 반국가단체인 한국민족자주통일청년동맹 간부에게 포섭돼 사상교양과 지령을 받고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 학생시위 모습 등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고 일본에 돌아가 해당 간부에게 보고한 혐의로 기소돼 1975년 12월 징역 및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및 자격정지 7년으로 감형되긴 했지만 이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김 교수는 1982년에야 만기 출소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12명의 재일교포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에서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재판 당시 증거는 중앙정보부의 가혹행위 등에 따른 허위 자백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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