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 거두고 초심으로 돌아가다

주진우 기자 입력 2010. 11. 25. 11:04 수정 2022. 1. 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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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일갈하던 명진 스님이 봉은사를 떠났다. 봉은사를 둘러싼 갈등도 막을 내렸다. 봉은사가 멍드는 사이 개신교의 불교 폄훼는 날로 심해졌다. 불교계 안팎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명진 스님(60·전 봉은사 주지)은 절이나 자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스님들이 이름난 선방과 고승을 찾아다닐 때 그는 초가에서 정진하고 거리에서 수행했다. 1980년대에는 신군부에 대항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다. 1994년 스님은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종단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산문을 떠나겠다”라고 말했다. 자리에 모인 스님들이 모두 울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조계종 개혁의 시발로 유명하다. 2006년 11월 그가 부촌인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에 임명되었다는 것 자체가 조계종 내에서는 ‘사건’이었다. 명진 스님은 “‘좌파 두목’ 스님이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며칠 못 갈 것이라는 말이 총무원과 신도들 사이에 돌았다”라고 말했다. 봉은사를 시민들에게 ‘봉은’하겠다는 스님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1000일 정진기도’에 돌입하면서 바깥출입을 끊었다(명진 스님은 1000일 동안 딱 한 번 산문 밖을 나갔다. 봉은사 신도였던 권양숙 여사의 요청으로 2009년 5월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것). 새벽 4시30분 새벽예불을 드린 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하루 세 번 예불을 주관하고, 1000배를 올렸다. 운동권 주지라는 수군거림은 300일 정도가 지나자 수그러들었다.  

ⓒ시사IN 안희태 도시의 절을 떠나 산속의 절로 돌아간 명진 스님.

의혹이 사라지자 강남 신도들은 그의 ‘팬’이 되었다. 초창기 150명 정도이던 일요법회 참석 신도는 지금 1300명이 넘는다. 법당에 들어가지 못한 신도들은 법당 밖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봉은사 등록 가구도 4만 가구에서 6만2000가구로 늘었다. 등록 신도 수는 20만명이 넘는다. 자연스레 시주도 늘어났다. 해마다 시주금이 10억원가량 늘었다. 2006년 87억원이던 예산은 지난해 136억원으로 늘어났다. 명진 스님은 절 살림에 종무원 직원과 신도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살림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봉은사는 불교 중흥의 모델이자 중심이었다. 명진 스님, 이명박 정부 거침없이 비판 2009년 8월 천일기도를 끝내자, 명진 스님은 사회적 발언을 쏟아냈다. 천일기도 후 첫 외출은 용산참사 희생자 분향소였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이다”라고 일갈했다. 또 유족을 위해 개인적으로 모은 1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2009년 8월 초등생 무상급식이 무산되자 봉은사에서 모금한 성금 1억원을 경기도교육청에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를 향해 날리는 죽비는 거침이 없었다.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이냐. 깡패 세계와 같은 것 아니냐?” “정부에서 이 (천안함 침몰) 사고 때문에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총 한번 쏘지도 않은 면제자들이 대거 있었다.” “이명박 장로만큼 거짓말의 달인은 못 봤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정없이 따귀를 갈기는 것이 불가의 자비이고, 내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 역시 엄청난 자비다.” 죽비 소리가 커질수록 보수 언론과 정부는 그에게 ‘좌파 스님’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보수 인사들은 앞다투어 스님을 비난했다. 지난 3월 김성광 강남순복음교회 목사(조용기 목사 처남)는 “봉은사는 반정부·반국가 활동만 하는 단체다”라고 말했다. 11월에는 이상훈 전 국방장관이 봉은사를 ‘북한과 연계된 좌익 세력의 본부’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올해 1월 불교 4대강 운하개발사업 저지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지관 스님이 경내에서 경찰관 2명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한나라당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큰 절 주지들은 돈과 힘이 있다. 반MB 전선에 명진과 수경이 젖줄 노릇을 하고 있어서 정권에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조계종의 한 간부 스님은 “정부와 친한 ○○ 스님과 ○○ 스님을 중심으로 명진 스님과 수경 스님을 정리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특히 명진 스님이 ‘강남 좌파’를 양성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명진이 ‘강남 좌파’ 양성한다” 사건은 법정 스님이 입적한 다음 날(3월12일) 터졌다. 조계종 종회(총무원 국회에 해당)가 열렸는데 중요 안건은 추모 분위기로 인해 모두 철회되었다. 그런데 봉은사의 직영 사찰 지정 건만 통과되었다. 직영 사찰은 사고가 났거나 문제가 있는 사찰을 총무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형태다. 지금까지 절 운영을 잘해서 직영 사찰이 된 예는 없었다(22~23쪽 기사 참조). 공론화 과정도 없었고, 명진에게 한마디 귀띔도 없었다. 명진의 한 측근 스님은 “총무원에서 문자로 투표를 종용하고 자승 총무원장이 내려와 표 찍는 것을 확인하고 갔다.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표결하는 의원을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직영 사찰 지정 뒤 명진 스님은 일요법회에서 한나라당 외압설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13일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돈을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직영 문제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월 청와대에서 자승 총무원장(오른쪽)과 만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현 한나라당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가 명진 스님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이 안상수 원내대표 지역구인 경기도 과천에서 11년간 사찰 선원장을 맡아 10여 차례 만난 사실이 언론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시 총무원장과 안상수 원내대표의 식사 모임에 참석했던 김영국씨는 “명진 스님의 발언은 100% 진실이다”라고 확인했다. 한 불교단체 대표는 “자승 총무원장이 안상수 원내대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시인했다. 다만 안상수 원내대표 발언의 영향으로 봉은사를 직영 사찰로 정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라고 전했다. 총무원 기획실장 원담 스님은 지난 5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두 번 정도 여권과 정부 인사들로부터 명진 스님 발언에 대해 우려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승 총무원장의 한 측근 스님은 “정치 외압설은 말이 안 된다. 총무원 예산이 대형 교회 하나만도 못하다. 봉은사 직영은 총무원장 스님이 오래전부터 총무원 재정 자립을 위해 구상해왔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정권에 비판적이던 주지는 11월9일 ‘부자 절’을 떠나야 했다. 명진 스님의 한 측근은 “스님은 총무원과 봉은사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신도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다시 수행자로 훌쩍 떠났다”라고 말했다. 떠나는 모습이 불교계 환경운동의 상징인 수경 스님(61)과 다른 듯 닮았다. 그도 지난 6월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고 화계사 주지직, 불교환경연대 대표 등 모든 직함을 내놓고 떠났다. 가사와 장삼을 화계사 법당 불전에 올려놓은 채였다. 수경 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총무원과 이명박 정부의 ‘이심전심’ 두 스님의 퇴장으로 불교 내부에서 가장 강력했던 이명박 정부의 비판 세력은 목소리를 잃었다. 그러는 사이 사회 전반의 불교 폄훼는 더욱 심각해졌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대구시는 예산 1200억원을 들여 팔공산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팔공산에 국제관광선원을 짓고 초조대장경을 복원하는 일은 김범일 대구시장의 선거 공약이었다. 그런데 대구 지역 개신교 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5월27일에는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지역 목사·장로 1000여 명이 참석해 ‘팔공산 국제불교테마공원 조성 반대를 위한 대구지역 연합기도회’를 열었다. 결국 대구시는 이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울산시 역시 6월21일 울산KTX역의 명칭을 ‘울산역(통도사)’으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는 8월26일자 전자관보에 이를 공고했다. 그러자 울산 지역 개신교계는 “역명에 통도사를 함께 쓰는 것은 종교 편향적인 자세다”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지난 9월 울산역 청사 옥상 현판에 ‘울산역’만 내걸리고, ‘통도사’라는 명칭은 빠졌다.

 

 

 

 

ⓒ시사IN 안희태 2008년 7월 서울광장에서 현 정부의 종교 편향에 항의하는 범불교도대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개신교 신자들은 울산 통도사·대구 동화사·서울 봉은사 등지에서 조직적인 ‘땅 밟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 아무개 목사는 “팔공산이 구공산이 되도록 땅을 밟으라”며 땅 밟기를 독려했다. 〈불교방송〉에 따르면 이 목사는 “불교계의 대표 성지인 팔공산은 영적 전쟁의 최우선 공격 목표다”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간부 스님은 “내년도 템플스테이 예산이 약 50%나 줄어들었다. 개신교의 직접적인 반대 때문에 한국의 대표 문화관광 상품이 위축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0월 자승 총무원장 체제가 출범한 뒤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를 청산했다. 한 원로 스님은 “총무원장이 정권과 밀월관계 아닌가. 지난 대선에서 중앙종회 의장이던 자승 총무원장이 이상득 의원과 사찰을 돌아다닌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총무원장이 개혁적인 승려들을 몰아내는 사이에 기독교가 불교를 탄압하고 공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금의 불교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 사이, 불교 중흥의 상징 봉은사는 상처투성이로 남았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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