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은 폭동·광주 5.18은 민중반란"이영조 진실위위원장의 기막힌 역사인식

입력 2010. 11. 18. 10:55 수정 2010. 11. 18. 13: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 [기사수정 : 18일 오후 1시 38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 위원장 이영조)는 지난 5일 사업계획서에도 없는 예산 5000만 원을 들여 미국 세인트루이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가, '한국 과거사 정리의 성과와 의의(Transitional Justice and Beyond in South Korean)'라는 주제로 제2차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제학술회의는 국제적 학회인 미국서부정치학회(ISA Midwest, International Studies Association Midwest), MALAS(Midwest Association for Latin American Studies), CSC(Central Slavic Conference) 공동주관으로 열렸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나라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라는 애초 보도자료 내용과 달리, 미국 현지에서 10여 명만이 참석했다고 심포지엄 참가자는 밝혔다.

진실위 활동을 비롯, 한국의 과거사 정리 활동과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인권침해 사건 등의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열린 심포지엄이지만 국내 언론엔 한 줄도 보도가 안 되었다. 지난해 안병욱 전 진실위 위원장 시절, 200여 명이 참석하고 언론에 많이 보도된 진실위 국제심포지엄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국제심포지엄에 대한 보도자료와 자료집조차 불과 행사 전날인 지난 4일 부랴부랴 공개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자료집도 이영조 위원장의 글을 포함해 거의 전부 영문으로 되어 있다. 제일 뒤 한 사람의 발제문만 국영문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일반 한국인들이나 유족들이 알아 볼 수 없는 내용의 자료집이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이 진실위 국제심포지엄을 한 줄도 다루지 않았던 것같다. 보통 한국 관련 국제포럼을 할 때는 주최 측에서 국영문 자료집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다.

하여간 영문으로 된 이 자료집을 읽다가 '이영조 위원장은 왜 보통 한국인들은 알아볼 수 없는 영문으로만 된 자료집을 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영문 자료집을 다 읽고 난 후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국제심포지엄 자료집바로가기).

영문으로 된 자료집, 누구 위한 심포지엄?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먼저, 한국 최초의 진실위라 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와해 과정에 대한 이영조 위원장의 평가를 보자(실제 심포지엄에서는 이영조 위원장 대신 강규형 위원이 자료집을 대독했다).

반민특위는 국회에 의해 1948년 10월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친일파와 결탁한 이승만 정부의 방해, 친일세력의 특위위원 암살 음모, 친일경찰의 대습격, 백범 김구의 암살 등으로 발족 1년만인 1949년 10월에 비극적으로 해체됐다. 이 반민특위의 와해 과정을 이영조 위원장은 영문 발표문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반민특위가 와해된 것이 이승만과 부역자(친일)들이 공모, 모의한 결과라고 보는 학자들 및 활동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승만이 평생 독립운동 지도자로 살아왔다는 점과 철두철미한 반일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경멸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볼 때, 이승만이 반민특위의 활동 승인을 거부한 것은 어떤 공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기반 건설의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이승만으로서는 반한(反韓) 행위 숙청보다 국가기반을 닦고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지켜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같은 평가는 이영조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금서 조치를 한 진실위 영문책자 < Truth and Reconciliation > (진실과 화해)에 있는 안병욱 전 진실위 위원장의 아래 글과 대조된다.

"이승만 정부는 위원회(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였고 끝내 해체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일제 침략에 협조하였던 인사들은 처벌받기보다는 이승만 정권뿐만이 아니라 그 후 군사정권하에서도 권력을 가지고 큰 영향을 행사했다. 이승만 정부의 실체는 자주적인 국가라는, 한국민이 염원하고 기대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이영조 위원장이 반민특위 와해 사건을 이승만의 "국가기반 건설의 필요성 때문"으로 평가한 반면, 안병욱 전 위원장은 이승만 정부가 "자주적인 국가라는, 한국민이 염원하고 기대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판이했다"고 다른 평가를 내린다.

"제주 4·3은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광주 5·18은 민중반란"

제주도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와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못을 박은 1948년 4월 3일 미군정 하에 벌어졌던 4·3항쟁에 대해서도 이영조 위원장은 이렇게 묘사한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rebellion)이 발생하여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미 진상규명 끝난 4·3 항쟁을 단순히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문제다. 4·3사건의 배경에는 제주도내 남로당지부의 활동,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과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단체들의 폭력과 횡포에 대한 제주도 주민들의 반발 등 여러 복합요소들이 얽혀 있다. 제주 4·3항쟁을 통해 약 3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 당했다. 이 중에는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은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와 군경토벌대에 의한 희생자였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1998년 11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 CNN > 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1999년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0년 제정 공포되면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2003년 10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실과 화해를 추구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직책으로 국제심포지엄에서 다시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영조 위원장의 상식을 뛰어넘은 표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때는 '광주사태'로 불리다가 1988년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영조 위원장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에서 발생한 민중반란(a popular revolt)"이라고 썼다. 이 '민중반란'이라는 표현은 신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우파 인사들만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영조 위원장은 개인 자격이 아니라 국민들 혈세로 운영되는 과거사정리 기관의 공식 수장인 공무원 신분으로 이 글을 쓴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표현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편향된 진실위 조사관"의 실체

또한 발표문에서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 조사관들의 소위 '편향성"을 이렇게 묘사한다.

"중도 성향의 한 NGO의 분석에 따르면, 진실위에서 채용한 조사관들의 65.5%가 진보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사 정리와 관련된 단체들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위원들의 경우, 이데올로기적 성향은 조사관들만큼 편향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영조 위원장은 편향된 조사관 성향을 언급하는 근거로 < 동아일보 > 를 인용했다. 난 이영조 위원장이 말하는 중도성향의 한 NGO가 어딘지 그가 인용한 < 동아일보 > 를 찾아봤다. 그것은 이영조 위원장이 사무총장을 지내던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단체였다. 이 단체에 관여하고 있는 몇몇 인사들을 보니 남덕우, 박효종, 류근일, 봉두완씨 등이었다. 이 단체에 대한 언론의 표현을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우파NGO의 원조", "뉴라이트계열 시민단체", "보수단체", "보수성향" 등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창립식을 다룬 교수신문(2002.4.9)은 이렇게 기술한다.

"이 단체에는 과거 권위주의와 관치경제가 횡행했던 시절, 정권에 직접 참여했던 정관계 인사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고 상식적인 중도나 보수로 여기기 힘든 수구적 인사까지 들어있어 과연 스스로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영조 위원장님, 앞으로 진실만 말하세요

극우에서 보면 우익이 좌편향적이고 극좌에서 보면 좌익도 우익으로 보인다. 사람은 상대적 존재라는 말이다. 나는 이영조 위원장이 향후 공직자나 학자적 입장에서라도 좀 더 공식적, 중립적이고 신중한 표현을 사용해주길 기대한다. 특히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발표하는 국제심포지엄에서 말이다.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이 배포 중단을 지시한 영문책자 < 진실과 화해 > 표지.

ⓒ 진실과화해

해외 출장 12차례로 이미 국민혈세 1억 원 이상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또 다음 달 진실위 종료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영국 출장을 또 준비하고 있는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의 예산문제도 이번 국제심포지엄 발표문에서 이렇게 비판한다. "진실위는 보고서 한 편당 평균 2억5000만 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영조 위원장의 이런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위가 지난 5년간 보고서 발간을 위해 쓴 총 예산은 760억 원이다. 이것을 진실위 결정사건 수 436개(진실규명 결정 사건 372개+진실규명불능 결정 사건 64개)로 나누면, 1개 사건 보고서 당 1억7400여만원을 사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2억5천만원은 잘못된 계산이다. 이영조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들은 결국 진실위 활동을 폄하하기 위한 의도적인 숫자놀음과 조작에 불과하다.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도덕적 존재이어야 할 인간이 추구할 당연한 의무 사항이기에 하는 것이다. 돈이 안 생기면 부모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가? 인간성을 상실한 효율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진실위가 그 설립목적에 맞게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