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공연 나선 '평택지킴이' 정태춘·박은옥

입력 2005. 8. 18. 10:50 수정 2005. 8. 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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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하나 둘…마이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광화문입니다."

묵직하면서도 낯익은 목소리가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광화문 네거리 귀퉁이에 설치한 음향기기와 마이크 2개가 무대의 전부. 조명이라고 해봐야 얼굴만 비추는 정도다. 관객들도 각자 돗자리나 신문지를 펴고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6일, 가수 정태춘?박은옥씨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거리콘서트 '평화, 그 먼길 가다'의 두 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나의 사랑 나의 고향, 평택"-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는 대추리와 함께 미군기지 확장 대상지역으로 확정된 정태춘씨의 고향이다. 고향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고, 가장 작은 일부터 실천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작은 실천이라지만 10월25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강행하는 거리콘서트가 그리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게다.

'날씨가 추워지면 지하철로 내려가서라도 공연을 계속 하겠다'는 정씨의 고집에 아내 박은옥씨도 거리콘서트에 동참했다. 박씨는 "평택이 단순히 남편의 고향이어서 콘서트를 계획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이번 콘서트에 임하는 정씨의 생각을 넌지시 전했다.

현재 정씨는 모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 그저 "콘서트를 보고 느끼라"는 한마디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는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에 핏대를 세우는 대신 노래를 통해 이야기했다.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가슴 절절함은 그가 부르는 노랫소리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도두리벌 가로질러 철조망 지나가고/ 성조기가 펄럭이고 나팔소리 울리면/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상처 아니 아플꼬/ 빼앗기고 찢겨지면 상처 어찌 아플꼬 -'나의 사랑 나의 고향' 중

그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실향가' 등 서너 곡의 노래를 부른 뒤였다. "오산에는 미군기지가 없다, 오산기지는 실제로 평택시 서탄면에 있고 미군기지는 다 평택에 있다"고 말했다. 평택은 기존의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오염과 소음 등만으로도 이미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두리와 대추리는 평택 주민들이 손으로 갯벌을 막아 일군 땅입니다. 그래서 구불거리는 길도 없고 물이 마르는 곳도 없는 너른 평야가 된 곳입니다. 그런데 그 3백만 평 가까운 어마어마한 땅을 미군에게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한반도를 동북아 전초기지로 구축하기 위해 최첨단 전투시설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짧지만 단호했다. '스스로 비장하지 않게, 스스로 감격하지 않게 여러분을 만나고 싶다'던 말마따나 시종일관 차분한 어조였다. 최근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집회의 구심점이었던 대추리 분교의 소유권을 국방부가 확보한 것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할 뿐, 흥분하지 않았다. 콘서트 내내 그는 한결 같았다.

-"평택도 매향리처럼···희망 준 공연"-

이날 콘서트는 한차례 음악이 끊어지고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등 작은 사고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짜증을 내거나 자리를 뜨는 관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격려하고 자연스레 몸을 흔들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정씨는 마지막으로 한 라디오 공개방송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관람객과의 교감이 없어 해외공연을 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그런데 오늘은 여기 모인 우리와 저 길 건너 세상 사람들 사이에 교감이 없다"며 평택에 보다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약 100명의 관객이 함께한 이날 콘서트에서 정태춘·박은옥씨는 고(故) 윤금이씨를 살해한 미군 마클 이병에게 보내는 시와 노래,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서울의 달' '사랑하는 이에게' 등을 불렀다.

콘서트가 끝난 직후, 박씨는 "'평화'라는 먼 길을 간다니까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는 너무나 편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관객이 "매주 화요일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콘서트를 끝까지 지켜 본 박상천(29)씨는 "정태춘·박은옥씨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시대를 노래하는 진정한 가수"라며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펼쳐진 콘서트였지만, 평택도 매향리처럼 하나하나 이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공연"이라고 말했다.

시민 이승용(36)씨는 가장 인상적인 노래로 '마클 이병에게'를 꼽으면서 "'편히 쉬되 무기도 가져가라'는 노랫말이 사람에 대한 증오를 평화와 사랑으로 승화시킨다"며 "정태춘·박은옥씨의 공연 중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대추리 분교를 주민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 17일 개관식을 갖고 '대추리 분교에 책 보내주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정태춘·박은옥의 거리콘서트 - 매주 화요일 8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대추리 분교에 책 보내주기 -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 160-12번지 대추초등학교

<미디어칸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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