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빈집이 너무 많다

입력 2005. 7. 21. 09:02 수정 2005. 7. 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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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녹색에세이/ 달려라 냇물아 얼마 전, 배낭을 메고오랜만에 남녘으로 갔다. 교편을 잡고 있는 한 시인이 강연 요청을 한것이다. 그 핑계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못 만나던 친구 얼굴이나 보려고 장수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장마전선은 북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다가 다시 북상하는 것같더니 잠시 주춤거렸다.

땅거미가 내리는데 섬진강 상류의 산허리에는물안개인지 산구름인지 모를 허연 띠가 거대한 빨래줄처럼 걸려 있었다. 수량이풍성해진 강물은 멀리서도 들릴 만큼 세찬 소리를 내며 흘렀다. 우중이지만뚜벅뚜벅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마을을 지나치는데, 느닷없이개떼들이 요란하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난데없는 개떼들의 극성에 마을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언제 다시 다른마을이 나타날지 알 수 없어 천천히 마을로 접어들었다. 앞발에 힘을 주고빳빳하게 고개를 처들고 미친 듯이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떼들은 정말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서너 마리 정도가 아니라 좋이 예닐곱 마리가 넘었다.

검거나 누런 색의 "똥개’들인데, 왠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물을 해칠까봐 시골에서는 대개 개들을 묶어놓고 키우는데 이 마을은 달랐다.

더러 목에 개줄이 매달려 있기도 했지만, 아예 목줄이 없는 놈들도 여럿 있었다.

정수리에 털이 뭉텅 빠진 놈도 있었다. 틀림없이 털 속에는 진드기들이 수백마리는 붙어 있을 것 같았다. 이상한 마을이다, 싶었지만 놈들이 짖어대는 것이지네들도 낯선 이가 겁나고 불편해서 짖는 일이라 조심만 하면 물리지는 않으리라믿고, 한발 한발 마치 내습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마을로 들어갔다.

흙담은보기 흉하게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고, 길 가장자리에는 장마철의 잡풀이 제세상을 만난 것처럼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논의 벼들은 용케자라고 있었지만, 돌볼 사람이 없었는지 논둑의 풀이 벼보다 높이 자라 있었다.

마을 초입의 밭은 옥수수니 고추니 콩이니, 작물이 자라고 있어야 마땅하겠건만,거기 역시 잡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마을의 기운이사람살이가 차분하게 진행되는 기운이 아니었다. 쥐똥나무 울타리  너머마당은 엉겅퀴나 쇠뜨기, 비름, 개망초들이 점령했고, 이름을 알지 못할덩굴식물들은 섬돌을 넘어 마루에까지 팔을 뻗고 있었다. 발 밑은 아예 밭둑에서나자주 보이던 독새기 밭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떠나면 광이나 축사도곧바로 기울어지는 것인가. 버려진 축사에서는 급속도로 부식이 진행되고있었다. 공기가 우선 그랬다.

골목 깊숙이 들어갔는데도 여러 채의 낡은집들이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비는 오다 멎다 했지만, 장마철 저녁답의후덥지근한 열기는 빈 마을을 뒤덮은 초여름의 야성의 기운과 뒤엉켜 형언하기힘든 쇠락의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물봉선이 그득한 개울가 빈집의 조금열려 있는 대문을 넘어섰더니, 이내 끈적끈적한 거미줄이 얼굴에 휘감긴다.

거미란 놈들은 쳐놓은 거미줄에 먹이가 안 걸리면 자신이 쳤던 거미줄을식량으로 먹어치운다고 한다. 거미줄 자체가 양질의 단백질이라던가. 훠이훠이손짓을 해 얼굴을 휘감은 거미줄을 치웠다. 말라붙은 날벌레 한 마리가 거미줄과함께 땅에 떨어졌다. 마당 구석으로 허리께까지 무성하게 자란 튼튼한 풀은틀림없이 명아주였다. 지팡이 중의 상품이 바로 명아주 지팡이라 들었다. 한철식물이긴 하지만 잘만 자라면, 가볍되 단단해서 늙은 왕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마루에는 떨어진 문짝이 비뚜름하게 얹혀져 있었고, 지붕에도 작고 노란 꽃이 피어있었다.

주인이 사라진 살구나무에서는 살구가 익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뒤안에는 능소화처럼 보이는 주홍색 꽃잎도 장마비에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었다.

산과 연해 있는 장독대에는 버려진 장독을 휘감은 칡덩굴의 널찍한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렸다. 담벼락 너머에는 뽕나무도 보였다.

오래 전에 오디가 떨어져 범벅이 된 땅바닥에 그래도 찾을 게 있었는지 새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대추나무잎은 저녁답인데도 왜 그리도 반짝이는지. 문득, 2백여년 전, 경상도 장기로 유배갔던 다산이 장마철에 쓴시가 떠오른다.

 ‘지겨운 비 지겨운 비 지겹게도 오는 비에  밝은 해나오지 않고 구름도 안 열리네. 보리는 싹이 나고 밀도 가로눕는데 돌배와산앵두만 커가는구나…’(「苦雨歎」중에서. 박석무 번역) 필경 이 집에 살았던사람들이 심었을 이 나무들이 한때는 얼마나 사랑을 받았을까. 이 나무들이 철마다어김없이 베풀어준 과실들은 이 집 식구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마침내한 집에서 사람의 인기척을 만났다.

 “누구요?” 마루에 앉아 콩깍지를 까고있던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였다.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놀랍던지.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섬뜩함에 가까운 반가움이었다.

 “예, 목이 말라 물을좀 얻어 마실까 합니다.” 엉겁결에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우물도 있고,수도도 있고, 아무 거나 찾아 마셔.” ‘깐 콩깍지인지 안 깐 콩깍지’인지손에 콩깍지 줄기 하나를 들고 마당 복판을 향해 허공에 손짓을 하는데,아무래도 이상해서 긴장한 마음으로 다시 살폈더니 할머니는 눈을 뜨고 있었으나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노안(老眼)일까, 보고 싶은 앞날이 없어서일까,마당께를 가리키는 할머니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말과는 달리 마당 한구석의우물은 메워진 지 오래였다. 우물 옆의 바닥은 거칠게 시멘트를 처발랐고,수도꼭지 파이프는 색 바랜 판자로 싸여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미지근한물이 흘러나왔다.

이 나라 시골, 지금 빈집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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