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인 고공농성 한진중 노조위원장 자살

2003. 10. 1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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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오후 3시30분] 시신 검안 끝나... 부인 "어제 마지막 통화"오후 2시30분 시신을 검안한 부산지방검찰청 담당 검사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할 문제이며 시신처리 여부에 대해 아직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검사가 유족들을 만나 사체를 병원으로 옮겼으면 한다고 말하자, 형 김주현씨는 "유서가 명확하고 자살로 보이기에 사체를 옮기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검사는 부인 박성희씨에게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한 게 언제냐"고 물었으며 박씨는 "어제"라고 말했다.

"고인의 죽음에 의문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형 김씨는 "크레인에 올라지 129일째였고 자살로 보이기에 의문이 없다"고 말했다.

검사는 17일 아침 현장을 처음 목격한 최홍규씨등을 만나 당시 정황을 들어본 뒤 사체처리 여부를 최종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2신 - 오후 2시30분] 김 지회장 자살 오래전부터 예견됐었다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은 조합 및 조합원에 대한 회사측의 무리한 가압류 등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진중지회는 지난해와 올해 파업 등과 관련해 해고 1명, 조합가압류 7억4000만원, 퇴직금과 주택 등에 대한 개인 가압류, 체포영장 6명 등이 내려진 상태다.

해고자인 노용준 부지회장은 "지난해 7월 해고되었다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 올해 4월 복직되었다가 다시 해고되었는데,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정이 내려졌지만 회사는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 부지회장은 "회사는 개인 가압류는 다 풀었다고 하지만 월급에 관해서만 풀었지 퇴직금과 주택 가압류를 그대로 남아 있고, 조합 가압류도 풀겠다고 말만 하고 있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낮 12시경 85호 크레인 앞에서 열린 첫 보고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의 조합원들은 모든 책임을 회사에 돌렸다. 조합원들은 배 진수 뿐만 아니라 지난 13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회사는 "불법파업 참가자 법적절차 착수 통보"라는 통신문을 발송했는데, "10월 15일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청구, 가압류, 사규위반 징계조치, 무노동무임금 적용으로 인한 급여 미지급과 10월 상여금 지급 불가 등을 조치하겠다"고 밝혔던 것.또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한 간부는 "14일 배 진수 때 회사는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고공 크레인에 사람이 있는 한 공권력 투입은 불가하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회사가 밧줄을 끊고 끝내 진수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정통신문에서 고소고발 등을 운운하면서 조합원들에 대해 협박을 했고, 상여금 미지급 등을 통보한 것은 단협 위반으로 부당노동행위였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정혜금 조직부장은 "회사는 2년간 노조 길들이기를 했고, 가정통신문을 보내 조합원의 이탈 의도를 드러내려고 했다"면서,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은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 회사측 "유족, 노조와 협의해 원만한 해결 노력"한진중 회사측은 김주익 지회장의 자살사건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는 "이같은 사퇴가 발생한 점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회사는 유족과 노조와 협의하여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회사측은 "그동안 현장을 점거하고 농성 중인 조합의 간부들과 지속적인 대화와 협의를 지속해 오면서,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와 협상의 대표로 참석해 주기를 누차에 걸쳐 적극 권유해 왔다"면서, "지회장이 점거 중인 크레인 주변은 조합원들이 완전히 점거하여 회사측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었고,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 왔다"고 밝혔다.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가정통신문 발송과 관련해 "직원 가족들에게 보내는 통상적인 내용이었다"면서, "회사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을 호소하고, 파업을 하더라도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회사가 경영이 어렵다면서 주식배당을 많이 한 것 등을 지적한데 대해 회사 관계자는 "2003년 임금협상은 어느 정도 의견접근을 한 상태였고, 2002년 임금까지 함께 적용해 달라고 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라며, "주주배당은 회사 규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국 노동단체 대표들 속속 현장 도착... 고인 유서 낭독하자 울음바다김주익 지회장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부산과 전국 규모의 노동단체 대표자들이 한진중공업 현장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정의헌 본부장과 경남본부 이흥석 수석부본부장을 비롯해 금속노조 지도부도 현장에 상황실을 마련하는 등 대책에 나섰다. 현장에는 이날 낮부터 전국 노동지도자들이 보낸 조화가 도착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오후 3시 한진중 광장에서 2차 보고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매일 저녁 7시에는 전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악질재벌 한진중 규탄과 김주익 지회장 추모대회"를 열기로 했다. 정의헌 본부장은 "김 지회장의 갑작스런 운명 소식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노무현 정권의 노동탄압과 악질 한진 자본에 의해 고 김 지회장은 스스로 자신을 던져 투쟁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광장에서 열린 1차 보고대회에는 3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했다.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김인수 사무장이 고인이 남긴 유서를 낭독하자, 조합원들은 고개를 숙여 흐느끼기도 했다. 김 사무장과 조합원들은 "살려내라 살려내라 김주익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시신은 17일 오후 2시30분경 검사가 지휘를 받아 검안이 이루어졌다. 부인과 형 등 고인의 유족들은 이날 오전 현장에 도착해 울음바다를 짓기도 했다. 대책위원회는 전국 단위로 꾸려질 예정이다.

김주익 지회장 약력 1981년 2월 : 태백기계공고 졸업 1982년 2월 : (주)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소 입소 1982년 8월 1일 : (주)대한조선공사(현)한진중공업 입사 1990년. 8월: 제28년차 대의원, 문체부장 1992년. 8월: 제30년차 수석부위원장 1993년 8월 25일 : 제 30대 부위원장 역임 1994년 제 31대 사무국장 역임 1994년 7월: LNG 선상 파업투쟁으로 구속, 강제휴직 1995년 8월: 원직복직, 산업안전보건위원 1996년 8월: 제34년차 대의원 1997년 8월: 제35년차 대의원 2000년 11월 5일 한진중공업 통합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당선 2002년 11월 한진중공업 지회장 재당선(임기중) / ▲ 담요가 덮인 김주익 지회장의 시신 ⓒ 오마이뉴스 윤성효 [1신 - 기사 수정: 오전 11시30분] ▲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벌인 고공 크레인 ⓒ 오마이뉴스 윤성효 129일째 35m 높이의 고공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여온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부산광역시 영도구) 김주익(41) 지회장이 17일 새벽 자살했다. 지회는 교섭 등과 관련해서 회사와 갈등을 빚어왔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8시30분 회사 안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김주익 지회장은 집회때마다 크레인에서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면서 집회에 동참해왔다.

그러나 17일 집회때에는 김 지회장이 크레인 밖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한진중공업 특수선지회 차해도 지회장은 "전화를 안받아 크레인에 올라가 확인한 결과 김 지회장이 목을 매달아 숨져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지회장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오전 9시부터 현장확인 작업에 들어갔으며, 조합원들은 시신 사수를 위한 집회를 갖고 있다. 오전 10시20분 현재 경찰과 조합원들 입회 하에 검안 작업을 하고 있다.

유서 내용을 본 손송주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회사가 흑자를 내면서 임금인상 등에 있어 2년 간이나 교섭을 끌어오면서 노조 탄압을 일삼았고, 손배 가압류,징계 해고 등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주익 지회장 유서에는 자기 몸을 희생해서라도 악질적인 노무 탄압의 고리를 끊겠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자살 사고 현장은 검사가 도착한 뒤에 수습할 예정이다. 금속노조는 범 노동계 차원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17일 오후 3시 30분 한진중공업에서 금속노조 영남권 각 지회 간부들이 집결해 집회를 갖고, 18일과 19일에 전국 금속노조 14개 지부 임원들이 집결해 시신을 사수할 예정이다.

20일에는 금속노조 확대간부 한진중공업에서 집회를 갖고, 촛불집회 등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자녀 세명이 있다.

▲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이 현장에 도착해 울먹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김주익 지회장이 목을 매달았던 현장 ⓒ 오마이뉴스 윤성효 "나의 죽음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 [전문] 김주익 지부장이 남긴 두개의 유서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였던 고공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한진중공업 공장의 모습. ⓒ오마이뉴스 윤성효 김주익 지회장이 농성을 벌이던 크레인 위에서 두 개의 유서가 나왔다. 하나에는 지난 추석 이틀 전인 9월 9월 쓴 것으로 되어있고, 다른 하나는 10월 4일 날짜가 적혀있다.

이에 따라 김 지회장은 오래 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현장에서 발견된 두개의 유서 전문이다.

(10월 4일자 유서)조합원 동지 여러분. 회사의 경영진들은 우리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인간 대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대의원 이상 간부 동지들, 그리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투쟁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노동조합을 사수할 수 있고, 우리 모두의 생존권도 지켜질 수 있습니다.

동지들. 나의 주검의 형태가 어떠하든간에 나의 죽음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입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입니다.

(9월 9일자 유서)유서.오랜만에 맑고 구름 없는 밤이구나. 내일모래가 추석이라고, 달은 벌써 만월이 다 되어가는데, 내가 85호기 크레인 위로 올라온지 벌써 90여일. 조합원 동지들의 파업이 50일이 되었건만, 회사는 교섭한번 하지 않고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을 말살하고, 노동조합에 협조적인 조합원의 씨를 말리려고 작심을 한 모양이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단기 순이익의 1.5배〜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당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500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이 회사에 들어온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0몇 만원. 근속 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경영진들은 지금 자신들이 빼어든 칼에 묻힐 피를 원하는 것 같다. 그래,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제물로 바치겠다.

하지만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 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을 이 투쟁을 통해서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승리할 때가지 이번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 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이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지 며칠 안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아, ○○아, ○○야. 아빠가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적어보는 이름이구나.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지 10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 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 가신 부모님과 막내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그럼 모두 안녕.2003년 9월 9일김주익. / /윤성효 기자 (ysh@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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