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법관 반발 확산되나
"법관 인사-재임용 심사, 투명·공정해져야"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서기호(42·사법연수원 29기)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대법원 재임용 심사에서 끝내 탈락했다. 법원 안팎으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8년 법관 재임용 심사제도가 시행된 이래 자의(自意)와 상관없이 법복을 벗은 판사는 지금까지 단 3명. 여기에 서 판사가 추가됐지만 그 숫자를 다 합쳐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재임용 탈락은 이례적이다.
◇일선 판사들 반발 움직임…집단행동 촉구도
서 판사의 탈락 배경이 근무성적(근무평정)이 낮다는 이유로 알려지면서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관 재임용 절차에 대한 공정성·투명성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10년마다 재임용 심사 대상이 되는 판사들로서는 남의 일 만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임기가 만료된 판사 가운데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인사위원회의 심의와 대법관 회의를 거쳐 재임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다'는 것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한데다 '상대평가' 성격의 근무평정 결과를 재임용 심사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근무평정 결과를 개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행정법원 김영식 판사는 "연임심사가 대법원의 정책과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법관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해하고 관료화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 연임심사 대상이 된다는 그는 "연임심사가 다가오면 법원장에게 잘 보여야하고 마치 '선착순' 게임을 하듯 동료 법관을 밟고 일어서야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부 판사들은 집단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수원지법 유지원 판사는 법원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판사들이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을 하면 이는 사법권의 독립을 뿌리부터 흔들게 될 것"이라며 "사법권의 독립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일부 다른 판사들은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어 법원 내부의 갈등도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서 판사의 근무평정에서 '하'를 연속으로 받는 등 성적이 낮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 판사 법적 대응 가능성도…법원 안팎 '소통' 문제 도마 위
이번 대법원의 재임용 탈락 결정을 두고 서 판사는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 등 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재임용 심사에 앞서 재임용 절차에 대한 법적인 문제점을 지적, 법적 다툼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법관인사위원회 출석에 앞서 법원조직법 제44조 2항 '근무성적 평정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10년간의 근무평정 자료가 근무성적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고, 연임심사에 반영된다는 내용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법원조직법이 개정돼 근무평정이 연임심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이를 위한 공정한 평정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며 "행정처에서 제시한 근무평정은 직접적인 연임심사 자료가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선 판사들도 근무평정제도 등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점에 대해 요목조목 꼬집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판사는 "절차적,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연임심사를 통해 탈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 위반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서 판사가 탈락한 이유를 놓고 '가카 빅엿' 발언 등이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어 소통에 나선 사법부 입장에서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의 한 지법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앞으로 소신있는 판결이 제약받게 될 것"이라며 "법관들의 SNS 활동 등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행정법원 김영식 판사도 "자칫 대법원의 연임거부는 헌법이 수호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 판사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재판관여·임의배당' 문제점을 들어 징계위 회부를 주장하고 전국법관워크숍과 단독판사회의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이후 그는 근무평정에서 3년 연속 '하'를 받았다.
법관인사위는 10년·20년차 법관 180여명을 대상으로 재임용 심사를 진행, 대법관 회의를 거쳐 서 판사에 대한 재임용 탈락을 최종 확정했다. 재임용 심사에 오른 나머지 판사들은 스스로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hach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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