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풍자' 유죄..설 곳 없어지는 '풍자'의 자유
[한겨레] [뉴스AS]
전 전 대통령 풍자 포스터 붙인 팝아티스트 유죄 확정
경범죄부터 재물손괴죄까지…‘표현의 자유’ 어디로?
전두환(84) 전 대통령의 풍자 포스터를 붙인 팝아티스트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혐의는 경범죄처벌법 위반. 다른 사람 소유의 건물에 포스터를 붙인 게 이 법의 ’광고물 무단첩부(부착)’ 조항을 어겼다는 뜻이다.(포스터 내용에 위법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팝아티스 이하(47)씨에게 벌금 1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는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실상 선고를 면하게 해주는 선고유예를 받았지만, 무죄가 아닌 유죄다.
이씨는 2012년 5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 주택가에서 전 전 대통령의 풍자포스터 55장을 붙인 혐의로 기소됐다. 포스터에서 전 전 대통령의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29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다.
재판 내내 이씨는 “표현과 예술의 자유 실현으로 정당행위였다. 경범죄처벌법 적용은 법률 남용”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예술의 자유는 헌법에 따라 국가 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2심 법원도 “예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한 다른 수단이 없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 청사초롱에 대한 꿈을 강탈했다
재물손괴, 도로교통방해, 주거침입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등. 경찰과 검찰은 온갖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대통령의 풍자’를 범죄로 처벌해 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청사초롱에 쥐그림을 그려넣은 ‘G20 쥐그림 포스터’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대학강사 박아무개씨등 2명을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청사초롱은 예부터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쓰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이 청사초롱을 마치 쥐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중략) 피고는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하였습니다”고 항변한 바 있다. 법원 역시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형법상 금지하는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고, 유죄가 확정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통령 풍자 처벌이 잇따르고 있다. 전 전 대통령 풍자로 유죄가 선고된 이하씨는 박근혜 대통령 풍자 전단 1만 4450장을 뿌리고 스티커 30장을 뿌린 혐의(경범죄처벌법 위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2012년 6월 대선 때는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를 백설공주로 빗댄 포스터 200여장을 부산 시내에 붙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씨의 풍자물을 붙인 소셜아티스트(사회적 예술가) 홍승희씨도 재물손괴 등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 건물주는 문제 없다는데, 왜?
경찰은 박근혜 대통령 풍자 포스터가 나올 때마다 강한 수사 의지를 보인다. 올 6월 대구 동성로에 대통령 풍자 포스터가 붙자 경찰은 “주변에 있는 CCTV를 분석해 신원을 확보 중이다. 재물손괴 협의가 있어 신원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그림이 그려진 건물의 주인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작년 11월에는 한 대학생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벽화 5개를 동성로에 그렸다가 역시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회적 예술은 권력 풍자와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온라인 게시물, 그라피티, 전단지 등 다양한 방식이 적용되는데 공공미술의 성격도 지닌다. 국내 사회적 예술은 2000년대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대부분의 처벌은 법의 잣대가 적용돼왔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예술행위를 단순 범죄로 몰아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와 마찬가지다. 경제적 압박을 통해 권력 앞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전위적이어야 할 사회적 예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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