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 감정이 중요.. 때리고 "장난이었다" 안 먹힌다

나성원 기자 2014. 10. 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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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1심 판결 27건 보니

학교폭력으로 빚어진 법적 분쟁에서 법원은 상당히 엄격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친구끼리 싸우면서 크는 법'이라며 학교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학부모나, '장난이었다'면서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법원은 언어폭력과 사이버 공간의 욕설도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가해학생 전학 처분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민일보는 올해 전국 1심 법원에서 선고된 학교폭력 관련 행정소송 판결 27건을 5일 전수 조사했다. 학교폭력으로 징계받은 학생들이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학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이다.

법원은 20건(74.0%)에 대해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승소한 2건을 제외하면 법원은 학교의 가해학생 징계 중 81.4%(22건)는 수위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장난이었다" vs "그래도 학교폭력"

소송 27건 중 18건에서 학생들은 "사소한 다툼이거나 장난이었다"며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중학교 1학년 A군은 지난해 7월 '격투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며 같은 반 친구의 귀를 때리거나 눕혀 놓고 멱살을 잡았다. A군은 학교로부터 서면사과 및 특별교육 처분을 받은 후 "장난으로 싸움 흉내를 냈을 뿐 학교폭력이 아니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학생은 팔에 멍이 들었고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피해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A군이 교사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았으면서도 장난이라고 치부하고 행동을 고치지 않았다"며 "A군의 장래만을 고려해 비행을 불문에 부친다면 학교폭력 행위에 대한 선도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가해자가 장난이라고 주장해도 당시 피해자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며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느꼈던 감정을 중요하게 보는데 학교폭력 소송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법원은 또 학생들이 무심코 내뱉은 언어폭력과 사이버 공간에 남긴 욕설 댓글에도 관대하지 않았다. 언어·사이버 폭력 등으로 징계받은 학생들이 낸 소송 10건 중 7건에서 패소 판결이 나왔다. 초등학교 6학년 B양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같은 반 친구를 향해 "나가 뒈져. 꼴불견" "그러니까 왕따 당하지" "장기 다 빼고, 뇌 빼고 버릴 거다" 등의 글을 올렸다가 학급 교체 및 특별교육 처분을 받았다. 소송을 낸 B양 측은 "일반적인 학생들 사이에 쉽게 발생하는 갈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이버 폭력이 계속적·반복적으로 이뤄져 피해가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고1 여학생 C양이 같은 반 친구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방에서 특정 학생을 겨냥해 "영원히 쌩 깔 거다" "못생겼다" 등의 글을 올린 것도 모욕적 표현으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봤다.

전학은 낙인효과 우려… 신중해야

법원은 가해학생이 승소한 7건 중 3건에 대해선 "문제가 된 행위는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며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문제 행위의 발생 경위가 참작할 만하거나 수위도 또래 아이들 간 용납 가능한 수준이라면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D군은 2012년 4월 같은 반 학생에게 팔짱 끼기, 어깨동무하기 등의 행위를 해 불쾌감을 줬다는 이유로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의 행위는 또래 남학생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라며 "징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또 고등학교 1학년 E군은 자신을 놀리던 학생과 다투던 도중 "중학교 때 껌 좀 씹었냐"고 말했다가 교내 봉사 2일, 특별교육 1일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해당 발언이 고1 남학생들이 주고받는 말의 수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가해학생의 전학 처분에 대해 징계 수위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경우도 있었다. 전학 처분이 쟁점이 된 소송 7건 중 2건이 이 같은 이유로 승소했다. 전학이 퇴학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인 점, 학생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상당한 심적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점 등이 고려됐다.

법원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 화해가 이뤄졌거나 학교폭력이 신체적·물리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경우 전학 처분까지는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부모들

학교폭력 징계를 받은 학생들은 법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소송을 직접 진행할 수 없다. 법적 대리인인 학부모가 학생 대신 소송을 맡아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때문에 학교폭력 소송 법정에서는 아이를 대리해 소송에 나선 학부모들이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학부모가 증인으로 나온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다그치거나 "허위로 조사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변호사를 선임하고도 학부모 본인이 직접 선생님을 증인 신문하거나 피해학생의 얘기를 들어보겠다며 수차례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한다.

학교폭력 소송을 맡았던 부장판사는 "학교 측 징계위원회의 보고서가 잘못됐다며 교사와 학교장을 고발하는 학부모도 있었다"면서 "학교 측 조사보다 아이의 말을 더 믿겠다는 것인데 징계위원회 보고서가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학교폭력 사실이 학생부에 기재되는 것에 대해 상급학교 진학을 우려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부모들도 많다"며 "다 자식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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