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허위 보고 알고도 묵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59·사진)가 검사 시절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 때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건경위보고서를 작성한 치안본부 관계자를 철저히 수사하지 않은 정황이 일반에 공개된 당시 수사기록에서 확인됐다. 기록을 보면 박 후보자는 숨진 박종철씨의 몸에 고문과 구타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경찰관을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해 수사하면서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치안본부의 엉터리 보고서를 누가 왜 작성했는지 수사하지 않았다.
10일 경향신문이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검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2차 수사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1987년 1월20~23일 진행된 1차 수사 당시 박 후보자는 강진규 경사(당시 직위) 등 고문 경찰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치안본부의 사건경위보고서 작성자에 관해 일절 질문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건경위보고서에 관한 경찰들의 진술도 나온 것이 없다. 당시 언론 등을 통해 사건경위보고서 내용에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정작 수사 검사인 박 후보자는 '상식적인' 의심조차 품지 않은 것이다.
반면 1차 수사의 부실이 드러난 뒤 5월20일쯤 시작된 2차 수사 때 강진규 경사 등은 검사가 묻자 사건경위보고서의 작성 경위와 사실 여부에 관해 순순히 진술했다. 강 경사는 "조한경(경위)이 책상을 내리치며 거짓말한다고 추궁하니 박종철은 어 하는 신음소리와 같이 쓰러졌다는 부분은 누가 작성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홍승상(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 5과 1계장)이 이와 같이 작성한 것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검사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그 내용이 사실인가요"라고 묻자 강씨는 "허위"라며 "홍 계장도 알면서 허위로 사고 경위를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박씨 유족들은 "박 후보자가 경찰의 사건 경위 보고에 의심을 품고 수사를 진행했다면 사건의 전모를 일찍 밝힐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경위보고서의 작성 경위와 배후를 캤다면 박씨 고문을 지시·방조하고 은폐하려 한 '윗선'이 누구인지 1차 수사 때 밝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박종철 사건의 윗선 개입 문제에 접근하는 주요한 계기가 최초 경위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가인데 1차 수사에서 언급조차 없다는 게 놀랍다"며 "박 후보자를 어느 국민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최후의 보루로 신뢰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후보자 측은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의혹은) 수사의 전체적인 진행 상황과 사건 기록의 맥락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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