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실세 엄삼탁, 어떻게 돈 모았을까
노태우 정권 실세였던 고(故) 엄삼탁 전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의 600억원대 빌딩 소유권이 유족에게 있다는 확정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엄씨가 어떻게 이 빌딩을 소유하게 됐는지, 매매 경위와 자금 조성 과정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엄씨의 부인 정모(69)씨와 자녀(43) 등 유족이 18층 높이의 서울 역삼동 W건물 소유권 이전등기를 이행하라며 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 박모(74)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박씨가 해당 토지와 건물의 명의신탁을 인정하는 각서·확약서·위임장 등을 엄씨에게 써줘 명의신탁 약정이 성립한다고 보고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엄씨는 2000년 권모씨 형제에게 줬던 투자금 250억원과 이자를 변제받기 위해 권씨 형제가 신축 중인 건물을 사기로 하고 평소 친분 있던 박씨를 매수인으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2008년 엄씨가 숨진 뒤 유족은 박씨에게 확약서 등을 근거로 반환을 요청했지만 박씨는 "토지와 미완성 건물을 엄씨로부터 다시 매수해 완공했다"며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엄씨가 신분을 노출하기 어려운 처지여서 매수인을 박씨로 하고 관리를 맡겨온 것"이라며 박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엄씨로부터 해당 건물과 토지를 매수했다고 판단해 원고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엄씨가 해당 부동산을 박씨에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보고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의문이 남는다. 엄씨가 어떻게 권씨 형제에게 250억원을 빌려줬는지 불분명하다. 권씨 형제는 엄씨에게 갚을 돈이 있어 건물과 토지를 매매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엄씨가 권씨 형제에게 어떤 채권을 갖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적었다.
돈의 출처도 알려지지 않았다. 유족은 엄씨가 권씨 형제에게 1992년 3~5월 250억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엄씨는 당시 안기부에 재직 중이었다. 1990년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그는 자산가로 알려진 적이 없었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검찰에 불려갔다. 일각에서는 돈의 출처가 노 전 대통령이나 안기부 비자금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엄씨가 생전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다가 지병으로 숨지기 얼마 전에야 소유권을 언급한 대목도 의아하다. 엄씨는 숨지기 직전 한 지인에게 "명의신탁한 건물을 가족이 돌려받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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