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제2롯데월드' 추락사..119신고는 없었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일어난 추락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제2롯데월드'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제2롯데월드'는 아직 공사 중입니다. 고층부 건물인 '롯데월드 타워'는 아직 공사가 한창이고, 저층부 건물인 '롯데월드몰'은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 돼서 지난달부터 개장에 들어갔는데요. 이번 사고는 저층부 '롯데월드몰'에서 공사가 유일하게 진행중이던 '롯데콘서트홀'에서 일어났습니다.
'롯데콘서트홀'은 2천석 규모의 대형 클래식 전용 공연장입니다. 실내 공연장의 높이는 일반 건물의 3층 이상으로, 층고가 15미터를 넘길 정도입니다. 지난 16일 낮 12시 50분쯤 이 콘서트홀에 설치된 비계(공사용 가설 시설물과 작업 발판)위에서 떨어진 김 모 씨가 크게 다친 것도 이 때문인데요. 김 씨는 비계 설치와 해체작업을 수십 년 동안 맡아온 전문 기술자로 알려졌습니다.
■의문의 신고와 이송 과정.. 신고는 없었다
건설현장에서의 추락 사고는 사실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가는 건 김 씨가 비계에서 떨어진 그 이후의 일들입니다. 김 씨가 일하던 콘서트홀 공사장에는 20여 명의 근로자들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큰 충격음이 났고, 실내라는 작업환경의 특성상 대부분의 작업자들이 그 충격음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추락 직후 상당수의 작업자들이 사고 현장에 모여들었는데요. 크게 다쳤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는 김 씨를 보고도 119에 신고한 근로자들은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119 신고 되지 않은 대신 김 씨의 이송은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김 씨를 최초로 발견한 화재감시원이 현장의 안전 관리자에게 알리고, 안전 관리자는 다시 제2롯데월드 지정병원의 원무팀장에게 전화를 합니다. 원무팀장이 해당 병원의 사설 구급차를 사고 현장으로 보내고, 김 씨를 실은 구급차는 해당 병원을 들렸다가 최종적으로 근처 대학병원에 김 씨를 내려놓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50여 분 정도. 결코 짧지 않았던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숨을 거둡니다. 물론 이 과정이 단축됐다고 해서 크게 다쳤던 김 씨가 살아났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만 유족들은 "김 씨의 임종 정도는 지킬 수 있지 않았겠냐"며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 "119신고 말라 반복교육" vs "119와 지정병원 동시 신고"
왜 119신고는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듯 일반인들은 사고가 나면 무의식적으로 119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 당시에는 주변에 있는 20여 명의 근로자 가운데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 동료 근로자들이 다친 동료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을 만큼 냉정해서일까요? 이에 대해 롯데 측과 근로자들의 주장은 엇갈립니다.
근로자들은 평소에 공사현장에서 "사고가 나도 119에 신고하지 말라는 안전교육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자체 의료진이 있으니 안전 관리자에게 알리거나 지정병원에 직접 전화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수시로 반복해서 교육을 받아왔다는 거죠. 이런 점들이 매뉴얼에까지 기록돼있다고 합니다.
롯데 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119와 지정병원에 동시에 신고하도록 교육을 해왔으며, 실제 공사를 책임지는 하청업체에도 충분히 전달을 해왔다는 겁니다. 다만, 하청업체가 롯데 측의 방침을 어기고 119신고를 기피하도록 했을 가능성은 인정했습니다. 하청업체가 너무 많다 보니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명도 덧붙였습니다.
■119는 1년에 0건 vs 지정병원은 한 달에 7건
제2롯데월드를 관할하고 있는 송파소방서를 통해 '119'신고 기록을 확인해 봤습니다. 화재나 오인신고를 제외하고 롯데 측이 먼저 안전사고로 인한 구조.구급을 요청한 적은 올 한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제2롯데월드 같은 대형 공사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비해 제2롯데월드와 송파소방서와는 '핫라인'까지 구축돼 있었는데 신고가 한건도 없었다는 건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제2롯데월드 지정병원은 어땠을까요. 취재진이 입수한 지정병원의 구급차 운행기록을 보니 지난 한 달에만 7차례나 이송기록이 있었습니다. 이 지정병원의 경우 제2롯데월드와 1km정도 떨어져 있어서 가장 가까운 119안전센터보다도 2배나 멉니다. 더구나 구급차도 1대 밖에 없어서 센터보다 신속한 대응이 늦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입니다.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에서 119신고를 하지 말라는 교육이 있었다는 정황을 더욱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안전사고' 쉬쉬.. 제2롯데월드만 그럴까?
뉴스가 나간 이후 많은 시청자들 분들의 제보와 의견이 있었습니다. 뉴스 내용이 맞다 며 롯데에서 일하는 근로자 분들이 전해오신 의견도 있었지만, 다른 대형 공사현장 역시 비슷하다는 제보도 많았습니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119신고를 막는다는 겁니다. 119에 신고 되면 일단 기록이 남고, 언론 등 외부에서 그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지난 2013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사망자가 1,929명에 부상자는 82,803명에 달합니다.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인구 만 명당 산재로 숨지는 인원이 20.99명에 달해 가장 낮은 영국의 0.7명에 비해 30배나 높았는데요.
이게 다일까요? 건설현장에서 파악되지 않은 안전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안전보다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건설사들이 각종 사고를 은폐하거나 쉬쉬해 제대로 된 안전조치 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적지 않은데요. 산재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설사들의 왜곡된 '폐쇄주의'가 먼저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제2롯데월드 추락 사고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로가기[뉴스9]"롯데, 사고 나도 119에 신고하지 말라 교육"
이슬기기자 (wakeu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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