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탄원서 언론 공개..탈북자 가족 안전은 안중에 없는 국정원

2014. 4.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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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탄원서 유출피해 탈북자

"문화일보에 보도 항의한 직후

국정원 이 처장이 전화 걸어와"

다음날 중앙일보 같은 기사엔

'국정원이 공개한 탄원서…' 명시

국정원이 증언·탄원서 유출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적용 가능

"저는 거대한 국가조직과 싸우고 있습니다. 힘없는 탈북자라고 업신여기고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사람의 생명은 안중에 없이 멋대로 탄원서를 유출한 자들(국가정보원)을 용서 안 합니다."

유우성(34)씨 재판에서 비공개 증언한 사실과 탄원서 제출이 언론에 보도돼 북한에 있는 가족이 위험에 빠졌다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출신 탈북자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을 두고 "용서할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ㄱ씨 사례를 보면,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북한에 있는 탈북자 가족의 안전 정도는 개의치 않는 국정원의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정원은 '민심'을 조작하려던 대선개입 사건, 특정인을 간첩으로 몰기 위한 증거조작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또 그마저 덮으려고 여론조작까지 시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문화일보에 소송 걸겠다니 국정원에서 연락"

ㄱ씨는 지난해 12월6일 유우성씨 재판에서 비공개로 증언한 뒤 북한에 있는 가족이 보위부 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탄원서 내용은 <문화일보> 4월1일치 보도로 알려졌는데, ㄱ씨는 보도의 배후로 국정원을 지목했다.

ㄱ씨는 "보도가 나온 직후 문화일보 사회부장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그는 내가 기사를 내보내도 괜찮다고 승인해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도해도 좋다고) 승인해줬다고 말해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들 기사를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은 안중에도 없느냐. 소송 걸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는데, 바로 뒤 국정원 이○○ 처장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유씨 사건 수사를 지휘한 대공수사처장으로, 구속된 김아무개 대공수사국 과장 등과 더불어 증거조작 사건 핵심 당사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ㄱ씨는 "이 사람(문화일보 부장)이 국정원에 연락을 한 것"이라며, 소송을 건다니까 국정원이 놀라서 연락을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이 처장이 저녁에 만나자는 걸 거부했더니 이튿날 낮에 회사로 찾아왔다며 국정원이 다급하게 움직였음을 시사했다. '이 처장이 소송 포기를 요청한 논리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대가성이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검찰에 가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ㄱ씨는 유출 당사자가 아니라면 소송을 강하게 만류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사실과 다르다. ㄱ씨가 함부로 유추하고 있다"고 했다.

■ "국정원, <중앙일보>에도 탄원서 건네"

국정원의 '작업 대상'은 문화일보만이 아니었다. ㄱ씨는 "문화일보 보도 다음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쓴 중앙일보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하니 '국정원에서 탄원서를 받았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실제 2일치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탄원서에 따르면'이라고 돼 있다. 탄원서 보도로 ㄱ씨 항의를 받는 와중에도 '언론 플레이'가 계속된 셈이다.

ㄱ씨의 항의를 받은 문화일보는 1일 저녁 인터넷에서 기사를 삭제했지만, 이튿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탄원서 내용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출처를 국정원으로 명시했지만, 조선일보는 탄원서의 사본을 사진으로 찍고 전문을 실으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ㄱ씨는 탄원서 공개가 이 처장 혼자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는 "내가 문제를 제기하면 국정원에서는 이 처장 선에서 끊고 '용도폐기'하려고 할 테지만, 난 국정원 전체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증언·탄원서 유출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병현)에서 수사 중인데, 유출에 국정원이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 등이 적용될 수 있다. 국정원직원법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 누설을 금지하고, 직무 관련 사항을 공표하려면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한 부장판사는 "탄원서로 인해 비공개 증언을 한 탈북자의 신분이 노출된다면 비밀 누설로 봐야 한다. 충분히 국정원직원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국정원이 탄원서를 받아 공개했다는 건 국가기관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김원철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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