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줄 사람 모자라..혼자 젖병 무는 갓난아기들
[한겨레] 버려지는 아기들, 그 뒤 ② 품어줄 '엄마' 없는 아이들
민아(가명)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여자아이다. 두 팔을 치켜들고 안아달라고 수시로 발버둥친다. 사람의 품을 좋아해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한다. 까맣고 동그란 눈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처음 보는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잘 안기지만, 품어줄 엄마가 없다. 엄마는 지난해 7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민아를 두고 사라졌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버려진 것이다. 민아 엄마는 아이를 두고 떠나면서 아무런 정보도 남겨두지 않았다. 앞으로 민아가 자라 어른이 되어도 엄마를 찾을 방도는 없다.
지금 민아의 집은 '혜심원'이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아동양육시설이다. 1929년 평전애육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뒤, 85년 동안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살펴 온 곳이다. 이곳에는 민아처럼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뒤 옮겨온 아이들 13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민아와 아이들은 본관이 '한양'이다. 원장이나 사무국장 등의 '성'을 따서 한양 이씨, 한양 권씨, 한양 방씨 등으로 호적을 만들었다. 입양이 안 된 탓에, 법원에서 성과 본을 새로 만드는 '창성창본' 절차를 거쳤다. 권필환 혜심원 원장은 "이 곳 아이들은 자기 성씨의 시조다"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혜심원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울고 웃고 넘어지고 소리쳤다. 보육교사(생활지도원)들은 잠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는 아이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 엉금엉금 기어와 손을 뻗었다. "안아 달라는 표현이에요." 권 원장이 아이들을 힘껏 안으며 말했다. 한 아이를 안고 있으면 금세 다른 아이들이 와서 안아달라고 칭얼댔다. 울던 아이들도 안아주면 금방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줄 수 없다. 단 2명이서 13명의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보육교사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싱크대 앞에 서서 밥과 반찬을 한데 비벼 교대로 허겁지겁 떠 넘겼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청운보육원의 정길수 복지과장은 "지난해 베이비박스를 통해 12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받았다. 한 번 버려진 아이들인 만큼 더 큰 주의와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보육원의 관계자도 "늘어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보육교사 2명이 아기 13명 돌봐아기들 일부는 '셀프 수유'"아이들 안고 먹일 수 없어 가슴아파"아무런 정보 없이 버려진 아이들보육원장 성 따라 '한양 이씨·방씨'서울 유기아동은 해마다 폭증작년 239명으로 5년전보다 8배↑서울외 지역선 되레 줄어들기도
서울시아동복지센터도 예외는 아니다. 베이비박스 등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임시시설인 이 센터는 지난 12월 말부터 외부 도우미를 투입했다. 이순덕 소장은 "센터에서 돌볼 수 있는 적정 영아 수는 5명인데, 최근 14명까지 보호한 적도 있다. 보육교사가 초과근무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직원의 도움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육아도우미를 투입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국의 유기아동이 서울로 몰려들면서 각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 탓에 이런 풍경이 빚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지역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폭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요보호아동 발생 현황'과 서울시의 '기아 현황'을 보면, 2008년 29명이었던 서울지역 유기아동 수는 2013년 239명으로 5년 새 8배 넘게 증가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입양된 아이는 1명뿐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서울지역 26개 보육시설로 보내졌다. 이들은 대체로 2살 미만 영아들이다. 시설 1곳당 평균 9명의 아이들이 지난 한 해에만 새롭게 보내졌다.
전국에서 유기아동이 급증하진 않는다. 2008~2012년 집계를 보면, 2008년 202명이던 전국 유기아동은 2012년 235명으로 1.2배 느는 데 그쳤다. 서울과 달리 일부 지역에서는 유기아동이 되레 줄어들고 있다. 같은 기간 전북 지역에선 28명에서 1명으로 급감했고, 2008년 15명 버려진 경남지역은 한명도 버려지지 않았다. 경기지역도 같은 기간 39명에서 26명으로 줄었다. 전국의 유기아동이 베이비박스가 있는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정된 시설에 아이들은 몰려들지만, 지원은 좀체 늘지 않는다. 현재 정부는 아이 5명당 1명꼴(1일 기준)로 보육교사를 지원하고 있다. 보육교사들은 보통 24시간 일하고 하루 쉬는 맞교대 형태로 근무한다. 보육교사 2명이 하루씩 번갈아가며 5명의 아이를 돌보는 셈이다. 5명을 기준으로 보육 인력이 지원되다 보니, 혜심원처럼 13명의 아이가 있는 곳에 지원되는 인원은 하루에 2명뿐이다. 한 사람이 5명의 아이를 돌보기도 버거운데, 6~7명의 아이를 감당해야 한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해서 병원엘 가야 한다면, 한사람이 10명이 넘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살핌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혜심원의 보육교사 이나래(27)씨는 "아이들을 안고 분유를 먹일 수 없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일수록 신체 접촉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사회화 능력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물리적으로 20~30분씩 13명의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일 일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5~6개월 된 일부 아이들은 어깨와 가슴에 수건을 두르고 직접 젖병을 무는 이른바 '셀프 수유'를 하고 있었다. 권필환 원장은 "갓난아기는 일반 직원들까지 동원해 안고 분유를 먹이지만 팔에 힘이 생긴 아이들은 본인한테 물려 먹게 한다. 아이들 분유는 먹여야 하고, 손은 부족하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들의 일상에 숨통을 틔우는 이들이 자원봉사자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찾는 이들이지만, 시설로서는 귀하디귀하다. 매주 수요일 저녁 혜심원을 찾는 김진옥(68)씨는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 1명도 키우기 힘든데,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안타까워 매주 찾게 된다. 나라가 보육교사의 수를 늘려 버려진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엄마'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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