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ㅣ4부] (4) 결혼하는 아들 둔 부모들의 항변

이혜운 기자 2012. 7. 5.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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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사주고 가방(예단) 받은게 죄냐.. 집값 대느라 로션도 아껴"

지방 도시에 사는 박영순(가명·53)씨는 6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요양보호사로 일해 모은 돈으로 아들(27)을 대학에 보냈다. 지난해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왔다. 아들 장가보내려고 알아보니 지방도 전세값이 만만찮았다. 박씨는 고민 끝에 1억6000만원짜리 아파트(102㎡)를 담보로 1억원을 대출받았다. 아들에게 9000만원짜리 아파트(80㎡)를 얻어주고 나머지 1000만원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사돈이 현금 1000만원을 예단으로 보냈기에 그중 500만원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보냈다.

박씨는 사치 부리지 않고 알뜰하게 살아와 '살림 9단'을 자부했다. 하지만 매달 50만원씩 이자를 내려니 아무리 아껴도 생활비가 모자랐다. 일을 그만둔 지난 2월까지 한 달에 110만원을 벌었다. 척추협착증이 와서 지금은 일을 쉬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변두리에 작은 집을 얻어 이사 가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혼례문화가 아들 가진 부모, 딸 가진 부모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아들 가진 부모들이 떠안는 집값 부담이 매우 크다.

IMF 외환위기 후 3~4년에 한 번씩 집값이 폭등했다. 2011년 평균 매매가를 100원이라고 칠 때 10년 전에는 58원이면 집 한 채 샀다. 올해는 103원이 있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주춤거린다는 요즘도 전세금은 계속 상승 추세다. 덩달아 결혼비용도 껑충 뛰었다.

하지만 '집은 남자가 해온다'는 고정관념은 요지부동이다. 본지가 올해 3월 초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신혼부부 200명·혼주 200명을 조사해보니 열 명 중 여섯 명(56.7%)이 "신혼집은 신랑이 마련했다"고 했다. 양가가 집값을 분담한 경우(40.5%), 신랑 부모와 신랑은 "다 못 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문가들은 "예단 갈등이 불거지는 것도 꼭 아들 가진 부모가 나빠서라기보다 신랑이 너무 많은 부담을 지는 최근 추세에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본지가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4부―예단을 없애자'를 시작한 뒤 가장 많이 쏟아진 독자 전화도 "집 사주고 가방 하나 받은 게 그렇게 잘못이냐"는 항변이었다. 한 50대 여성 독자는 "나는 아들 집값 대느라 로션 한 병도 아껴썼다"고 했다.

이처럼 결혼비용이 자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거의 모든 부담은 부모 차지가 됐다.

강금실(가명·57)씨도 3년 전 아들이 장가갈 때 9000만원을 대출 받아 경기 분당에 전셋집을 얻어줬다. 원금은 물론 매달 40만원씩 나오는 이자는 강씨 부부가 갚고 있다. 강씨의 남편은 5년 전 퇴직하고 집에 있다가 최근 다시 의료기기 판매회사에 취직했다. 퇴직연금으로 이자 내고 나면 부부 두 사람 밥 먹고 살기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1년간 이자만 대신 내 주고 그 뒤에는 아들과 며느리가 이자와 원금을 스스로 갚으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아들·며느리가 영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애들도 결혼 후 계획이 있을 텐데 괜히 집값 때문에 발목 잡힐 것 같아 그냥 우리 부부가 내고 있어요."

강씨는 자식들 신혼살림 계획을 걱정했지만 정작 본인의 노후 계획은 말 그대로 '무대책'이었다. 강씨는 "시집 안 간 딸이 하나 더 있는데, 남은 노후자금 탈탈 털어서 딸까지 마저 결혼시킨 뒤 지금 사는 집(105㎡)을 팔아서 빚을 갚고 지방으로 이사 갈 계획"이라고 했다.

"내 능력은 이만큼이니 단칸방에서 네 힘으로 출발하라"고 하면 되지, 왜 부모들은 다 큰 아들 집 얻어주느라 이토록 무리하는 걸까? 요양보호사 박씨는 "결혼할 나이가 된 자식이 있는 부모가 아니면 이 마음 모른다"고 했다.

"세상 떠난 남편과 저는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에서 우리 힘으로 출발했어요. 기저귀 빨아서 넣어놓으면 이튿날 아침에 꽁꽁 얼었죠.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할 수 있나요. 집값은 이미 평생 모아도 못 살 액수가 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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