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잇따른 인사 실패]박근혜 대통령만 있을 뿐, 국정 리딩그룹이 없다
ㆍ'나홀로 인사'로 고위직 후보들 낙마… '미완성 정부' 국정 장악력 급속 약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인사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낙마한 총리·장차관급 인사들이다. 고위 공무원들의 잇따른 낙마로 국회 인사청문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인사청문회는 언제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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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월 4일 청와대에서 정부조직법 개편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
박근혜 정부가 아직도 미완성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각 정부 부처 수장도 다 채워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일인 지난 2월 25일부터 '미완성 정부' 그 자체였다. 박근혜 정부는 장·차관 등 내각은커녕 청와대 비서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출범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구상했던 정부조직도 최근에야 골격을 갖췄다. 여야의 정치력 부재로 정부조직법 통과 과정이 상당 기간 지연됐기 때문이다.
출범 한 달 만에 국정장악력 약화
박근혜 정부는 새 정부 출범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야당·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은 사실상 끝났고, 출범 한 달 만에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의 여론조사가 방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218명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1%로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낮게 나왔다. 반면에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28%였으며, '보통이다'는 10%, 의견 유보는 22%였다.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2.8%)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시절 포함)의 직무수행평가와 관련해 1월에는 긍정평가가 50%선을 유지했으나, 2월 이후 '인사 참사' 문제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41%까지 하락했다.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결과는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1년차 1분기와 비교해볼 때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71%, 노무현 대통령은 60%, 이명박 대통령은 52%였다. 이와 관련, 한국갤럽의 허진재 이사는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정권 초기인 만큼 인사문제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며 "최근 장·차관급의 잇따른 낙마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의 독선·독단 이미지가 강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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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시스템 작동하지 않는 '나홀로 인사'
사실 박근혜 대통령 출범 이후 인사 낙마 사례는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출신)'과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 초기보다 많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월에 내각 후보자 3명, 4월에 청와대 수석비서관 1명 등 4명이 탈락했다. 이춘호(여성부 장관)·박은경(환경부 장관)·남주홍(통일부 장관)등 후보자들과 박미석 청와대 정책수석 등이 낙마했다.
박 대통령의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나홀로 인사'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인사기준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인사가 아닌 자신의 눈높이에 맞춘 인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즉 국민과 언론은 후보자들의 정책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중요한 잣대로 보고 있는 데 비해 박 대통령은 '일만 잘하면 됐지, 무엇이 문제야'라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 취임 한 달이 지났지만 인사와 인사검증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여야의 지적이다. 즉 현재의 인사는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특정인을 지명하면 참모진이 검증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 인사시스템은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정무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이남기 홍보수석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인사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들에 대해 '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여권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낙점한 인사를 단수로 추천했을 경우 인사위 구조상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즉 박 대통령이 인사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주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있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비서'일 뿐 박 대통령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정을 토론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현재 인사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직접 고른 사람을 대통령 혼자 결정하는 구조"라며 "인사문제 등 국정과 관련해 박 대통령과 협의하거나 논의하는 그룹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라인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인사검증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아직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따른 인사 사고가 발생하자 새누리당조차도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 등 인사 검증라인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앞으로 (인사검증과 관련한) 제도개선은 물론 필요하다면 관계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는 인사들이 없다는 점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지적돼 왔다. 친박(박근혜)계 의원들조차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빚진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현재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박 대통령과 여러 가지 국정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할 수 있는 인사가 거의 없다. 박 대통령과 국정을 함께 이끌어갈 리딩그룹이 없다는 것이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는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측근하고만 결정하는 방식이라서 혼란이 초래된 것 같다"며 "박 대통령 주변에는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복종하는 사람들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대통령 주변에 국정 논의할 인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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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3월 25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은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뒤)이 박 대통령을 지나쳐 가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명박 정부 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분석하는 새누리당 인사들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이상득·이재오·박희태 의원 등과 자주 소통하고, 그들에게 국회와 새누리당을 담당토록 일정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혼자만 있을 뿐 박근혜 정권을 이끄는 리딩 그룹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와 관련, 고시 출신 관료들이 너무 많이 등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장·차관급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을 보면 공무원 출신이 70%에 이른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관료행정국가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마치 박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고시와 육사 출신을 대거 기용했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지금은 '박정희 시대'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는 정부와 관료가 국가 정책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민간영역이 대신하고 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행정학) 교수는 "1960∼70년대에는 전문성과 안정성이 있는 관료들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서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며 "지금은 관료의 시대가 가고 민간이 중심인 사회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이 박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다. 국회는 최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무려 국회에 법안이 제출된 지 52일 만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새 정부가 출범한 후에 통과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야당의 반대가 극심했던 이명박 정부 때도 이 대통령 취임 전인 2월 22일에 국회에서 처리됐다. 김대중 대통령(2월 17일)과 김영삼 대통령(2월 23일) 때도 여야가 서로 옥신각신했지만 대통령 취임 전에는 모두 통과된 선례가 있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은 것은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박 대통령이 제출한 원안을 시종일관 고수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3월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큰소리를 내며 야당에 원안대로 통과시켜줄 것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담화가 아니라 선전포고다. 유신독재를 연상케 한다. 입법권을 무시하고 야당을 협박했다"고 비난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도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 "박 대통령의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시기와 방식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이) 너무 강수를 둬서 야당을 궁지에 몰지 않았는지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담화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논의는 상당 기간 표류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의도 정치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 왔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48%가 지지한 야당을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였던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여야가 국정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여야 대표간의 3자회담을 정례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에 제안했던 국가지도자 연석회의 개최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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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을 허태열 비서실장(앞줄 왼쪽) 등 청와대 참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
지나친 강수로 야당과의 관계도 서먹
박 대통령의 정치력 시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각종 공약이 국회의 입법과 예산지원을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대선 기간 중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의 입법화를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이 되는 오는 6월 4일까지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의 정치가 실종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추진은 굼뜰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과거처럼 다수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법안과 예산을 강행처리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느냐, 아니면 현재의 지지율마저 추가로 하락해 집권 초기부터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느냐는 박 대통령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약속했던 국민대통합 등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공약들을 강력히 추진해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탕평·국민통합·경제민주화 같은 말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통적으로 야당 강세 지역인 호남에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대탕평 인사부터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 정부 내각에서 호남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 또한 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국민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국민통합과 관련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 대해 벌써부터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특히 한반도 최대의 이슈인 대북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 등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박 대통령이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당장 통치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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