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도 환수 못하는 '분식회계 성과급'

김동욱 2016. 6.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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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가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대우조선해양 본사.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spring@hankookilbo.com(mailto:spring@hankookilbo.com)

금융당국은 STX조선해양에 대해 2014년 중순부터 1년 넘게 회계감리 조사를 벌인 끝에 올초 경영진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 6,600억원 규모의 분식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매출액은 부풀리고 매출원가는 적게 잡는 수법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해 실적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강덕수 전 STX조선 회장은 2013년 4월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바로 직전 전년도 성과급으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2008년부터 받은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분식이 이뤄진 4년간 40억원에 가까운 성과급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강 전 회장은 거짓 실적으로 수년간 거액의 성과급을 챙긴 게 사실로 드러난 셈이지만, 현재로선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미 분식 의혹이 제기된 2013년말 강 전 회장이 받은 성과급을 환수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규정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 수조원대 분식회계로 실적을 부풀린 뒤 이에 대한 대가로 거액의 성과급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에게 지급된 성과급을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짓 실적을 바탕으로 부당하게 성과급이 지급된 만큼 이를 다시 환수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이 분식회계를 통해 성과급을 챙긴 게 사실로 드러났다고 해도 이를 다시 거둬들일 법적 수단이 없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경영진이 장부를 조작해 성과급을 받았다면 사후에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도록 ‘보수환수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대우조선에 대한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은 2009년부터 퇴임한 2012년 3월까지 총 11억4,000만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2006년부터 사장직을 맡은 걸 고려하면 재임 기간 동안 성과급으로만 2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후임인 고재호 전 사장 역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7억1,00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문제는 이들이 받은 성과급이 거짓 실적에 비롯됐다는 점이다. 남상태(2008~2011년) 사장과 고재호(2012~2014년) 사장은 47개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각각 재임 시절 6,717억원과 8,07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성립 사장이 취임한 후 3분기에 이들 사업에서 3조2,437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감사원은 이 같은 대규모 부실에 대해 남 전 사장과 고 전 사장 재임기간 영업손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당해 발생한 손실을 숨기다 보니 경영성과가 실제보다 과대 평가됐다는 것이다. 전임 사장 2명을 포함해 임원들에게 지급된 220억원(2009~2014년)에 가까운 성과급이 과도하게 부풀려졌거나 부당하게 지급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STX조선과 마찬가지로 대우조선 역시 성과급 환수는 쉽지 않다. 대우조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측은 “법리적으로 가능한지 검토를 해보겠다”고 밝혔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식회계 사태를 막기 위해선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영국처럼 보수환수제도를 법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0년대 초반 보수환수제도를 법으로 도입한 미국은 지난해 법을 고쳐 상장기업은 의무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고 규정을 따르지 않는 기업은 상장폐지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미국은 수차례의 법 개정을 거쳐 최고경영자는 물론 이사회 구성원들의 성과급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보수환수제를 도입한 영국은 최대 6년의 보수를 거둬들일 수 있도록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법이 없다 보니 국내 기업 중 사규에 이 규정을 명시한 기업은 KB금융지주 1곳이 유일하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보수환수제가 도입되면 경영자로선 회계부정에 나설 유인이 줄어 무리한 경영을 펼치지 않을 것”이라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 만큼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된 회계연도 2012~2014년에 대우조선 임원진에게 지급된 성과급이 100억원에 이르는데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며 “정부와 산은이 이에 대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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