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휴가지 업무처리가 미담? 고용노동부 공식블로그 글 논란

이우중 2016. 4. 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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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휴가지에서까지 업무에 시달린 이야기를 미담처럼 포장해 네티즌의 빈축을 샀다.

최근 방문자 수 1000만명을 돌파한 고용노동부 공식블로그에 지난해 ‘휴가지에서 현지 바이어를 감동시킨 김 대리’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은 14일 한 포털사이트 메인에 링크되면서 널리 퍼졌다.

김 대리 1인칭 시점에서 작성된 이 게시물에서 김 대리는 아내와 함께 3박4일 동안 괌으로 휴가를 떠났다. 첫 날 일정을 마치고 호텔방에 들어오자 김 대리의 휴대전화에는 회사에서 부재중전화와 메신저 수십 통이 와 있었다. 마지막 메신저는 상무가 보낸 것이었다.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동료에게 연락하자 “야 인마 휴가면 다냐. 말레이시아 계약 건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험한 말이 날아왔다. 그날 밤 늦게까지 업무를 처리한 김 대리는 다음날에도 불안감에 내내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이런 탓에 아내와 싸우게 됐지만 김 대리는 자신을 이해 못하는 아내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날 밤 김 대리는 “휴가 중인데 정말 미안합니다”로 시작해 “중요한 내용이니 꼭 검토 바랍니다”로 끝나는 메시지를 받았다. 스페인어 계약서 업무였다. 방을 뛰쳐나가 일정을 함께 했던 한국인 여행객에게서 노트북을 빌린 김 대리는 밤늦게까지 계약서를 작성했다. 휴가가 끝날 때까지 아내는 김 대리에게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회사로 복귀한 날 상무가 김 대리를 불렀다. 악수를 청한 상무는 “휴가지에서도 한몫을 하다니 정말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대리는 “아내의 화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무님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하고 싱글싱글 웃음이 나왔다”며 글을 맺었다.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 ‘일·가정 양립’은 5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나온다. 
고용노동부 블로그 캡처
네티즌들은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노예고용부’냐”, “고용노동부가 김 대리의 쉴 권리를 보호해 줘야지” 등 비난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현실판 사축동화”라는 표현도 나왔다. ‘사축’(社畜)은 ‘회사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힘든 현실에 놓인 직장인들을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사축동화’가 번역돼 전해지면서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노동부 블로그에서 게시물이 문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성형, 취업 7종세트 조건으로 자리 잡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취업 성형을 다뤘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가 SNS에 올린 트윗. 논란이 일자 블로그 게시물과 함께 삭제됐다.
인터넷 캡처
이 게시물은 ‘기업에서 선호하는 얼굴 스타일’이라며 남녀 사진을 실었고 취업 성형 경험자의 조언을 곁들여 취업 성형을 조장하는 듯한 글로 비판을 받았다. 당시 노동부는 “해당 글은 청년 기자단이 작성한 것으로, 앞으로 블로그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나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와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바 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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