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무명옷에 얽힌 '비통한 역사'..조국 잃은 그들은 양복을 팔았다

2015. 8. 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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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생활고·신분 노출 위험 탓…

임정 요인 등 무명옷 입고 다녀

박은식, 안창호, 김구, 여운형, 신익희, 이광수….

95년 전 기념사진 속엔, 당시 출범 1년째를 맞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요인과 직원들 대부분이 한자리에 서 있었다. 1920년 4월14일 상하이에서 엄수된 독립지사 안태국의 장례식장이다. 다들 검은 양복을 차려입었는데, 당시 임정 경무국장으로 궂은일을 도맡았던 백범 김구만 행색이 다르다. 그는 투박한 회색 양복에 팔에 검은 상장을 두른 채 유난히 앞쪽으로 나와 있다.

이 희귀 사진은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70돌 특별전 '길 위에서의 삶'(20일까지) 들머리에 내걸렸다. 사진 아래 설명글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당시 상하이의 한인 남성들은 양복을 주로 입었고, 여성들은 한복, 치파오, 양장 등을 다양하게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들의 모습이 30여년 망명의 세월 동안 어떻게 변해갈까?'

'길 위에서의 삶'전은 이 설명글에 얽힌 후일담들을 중국옷 실물들을 보여주면서 풀어낸다.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옮겨가며 임시정부를 꾸려갔던 독립지사들의 힘겨운 삶을 지탱해준 일상복이었다. 기록과 사진 등을 보면, 김구, 이시영 등 임정 요인들은 양복을 처분하고 중국 서민 남성들의 무명옷 '창산'(長衫)을 주로 입고 다녔다. 생활고 탓이었지만,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전시장엔 창산과 더불어 여성복 치파오(旗袍), 국가예복 '중산복' 등과 이 옷들을 입은 지사들의 사진, 버들가지로 만든 여행용 가방 등이 나와 항일독립투쟁의 험궂은 지난날들을 실감하게 해준다. 영화 <암살>을 본 관객이라면 극중인물들이 입은 창산, 두루마기 등을 떠올리며 전시장의 실물 옷들을 견줘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곳인 서울 정동 중명전에는 광복 70돌 체험전시가 차려졌다. '중명전, 고난을 넘어 미래로'(9월6일까지)전은 관객 움직임에 맞춰 가상현실을 연출하는 키네틱 영상시스템으로 3·1 만세시위 현장에서 함께 만세를 부르는 듯한 가상 체험을 선사한다.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은 15일 시작하는 '광복 70년, 그날의 기억을 따라'(10월4일까지)전에서 임정 대일선전성명서 등의 사료들과는 별개로 역대 광복절 주요 경축행사 영상과 관련 기념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주제 전시 '대한제국, 근대국가를 꿈꾸다'(9월13일까지)에서 구한말 전보용지, 물에서 도약하는 용을 새긴 고급 도자기 등의 대한제국 유물들을 보여준다.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선연한 전시 서두의 글씨 '용공난용 연포기재'(庸工難用 連抱奇材: 서툰 목수는 아름드리 재목을 쓰기 어렵다)가 눈매를 숙연하게 한다.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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