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표현 '번역차이 노림수'.. 日 '잔꾀'에 또 당했다

신보영기자 2015. 7. 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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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유네스코 등재 문제점'강제성 명시' 결정문에 없고 주석 통해서만 겨우 확인 국제사회 알리는 효과 미미'forced to work' 표현도 日선 '일하게 됐다'로 표기주체도 '일본'이라고 돼있어 日정부 명확하게 표시 안돼

한국 외교가 5일 일본의 메이지(明治) 산업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사실상 일본에 또다시 패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강제노역'을 인정했다고 선전했지만, 곧바로 일본에서 이를 부인하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외교부가 '강제노역'으로 해석한 표현 역시 등재 결정문에 직접 게재되지 않고, 주석을 통해 일본 측 발언을 찾아야만 확인할 수 있는 숨은그림 찾기 식이다. 이에 따라 일제의 강제동원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효과도 사실상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이날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히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꼼꼼히 뜯어보면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전혀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한 셈이다.

당장 내용적 측면에서 외교부가 성과라고 자부하고 있는 '강제노역' 표현부터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부는 일본 측 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의 발언을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했던(forced to work) 일이 있었다"로 해석했지만, 일본은 일어판 번역문에서 수동형으로 "일하게 됐다"로만 표기했다.

한·일 간 강제성 부분에 대한 해석차가 있는 것이다. 막판까지 쟁점이었던 '강제노동' 부분에 대한 절충안이었겠지만,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해석 논란만 자초하게 된 셈이다. 통상 '강제노역'은 영어로는 'enforced labor'로 표현된다.

결국 외교부가 주장하는 대로 "최초로 일본이 강제노역을 인정했다"고 판단하기에는 국제사회에서도 다소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강제노역의 주체에 대해서도 '일본'이라고 돼 있지, '일본 정부'라고 명확하게 표시돼 있지 않다. 다음 문장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제대로 된 성과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했던 군함도 탄광 등 7개 시설이 이번에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허용한 셈이 됐다.

한·일 간 이번 합의의 형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적지 않다. 외교부는 등재문 주석(footnote)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 대표의 발언을 주목한다"는 표현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강제노역' 사실을 등재 결정문에 연계시켰다고 하지만, 이 발언을 찾기 위해서는 주석을 찾은 뒤 다시 참고문서 번호를 확인하고 그 문서를 찾아봐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최소한 3차례 과정을 거쳐야 일본 측 대표 발언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제의 강제노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국제기구 관례상 결정문 본문에 삽입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례가 없는 데다, 굉장히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내용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연결시켜 전체적인 공식 문서와 불가분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본이 2009년부터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하면서 준비한 이번 등재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면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이번 사태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이 문제에 뛰어들었고, 일본의 유산 등재를 저지하는 목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현실적으로 나선 것이 우리 외교의 뼈아픈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는 일종의 사전 '김 빼기'를 통해 외교 목표치를 낮게 잡으면서 여론의 비판을 피했고, 이날 등재 결정이 내려진 뒤에는 "전방위적 외교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는 자화자찬에 빠졌다는 평가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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