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 '시즌2' 시작되다]일반고 황폐화.. 8~9월 자사고 재지정 '엄격 평가' 예고

송현숙 기자 2014. 6. 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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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사고의 운명

6·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뒤 학생과 학부모들의 눈길이 먼저 쏠린 곳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운명'이었다. 두세 달 후 자사고의 재지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설립 후 5년마다 자사고를 평가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는 첫해다. 진보교육감들은 자사고의 전면 재검토를 공동공약으로 내놨다. 현안은 자사고 재지정 문제지만, 그 이면에는 '수월성교육(엘리트교육) 대 평준화'라는 고교 체제에 대한 철학과 방향이 부딪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거 등장한 자사고들이 1974년 박정희 정부 이래 40년간 지속돼온 고교평준화와 공교육의 근간을 허물고 있다고 보고 있다.

▲ 엘리트 교육 대 평준화 '교육 철학'의 충돌학교 설득 등 교육 당국 간 갈등 조율 '과제'

■ 자사고 등장 후 일반고 황폐화 가속

자사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교육공약인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에서 나왔다.

사립고에 학생 선발과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허용하면 학교 간 선의의 경쟁과 교육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이 확대돼 공교육이 강화될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정부 지원금이 없는 대신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정부는 일반고를 더욱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자사고들은 학교마다 건학이념과 자율성을 갖고 다양한 교육을 추구하겠다는 계획서를 내 '자사고 전환'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사고 출범 4~5년을 맞은 현재, 자사고는 '또 하나의 입시명문고'로 인식되고 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자율권을 이용해 국·영·수 수업시수를 확대했고, 선발 자율권을 갖고 내신 상위권 학생들을 뽑아갔다. 외고·과학고·예술고 등 특목고는 뚜렷한 학교 설립 목적과 취지라도 있지만 자사고는 그마저도 불투명하다. 전체 자사고 49곳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서울의 경우 자사고는 고교선택제와 맞물려 일반고 황폐화와 고교서열화를 가속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현 정부도 '실패한 정책' 평가

일반고가 슬럼화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시안)을 내놨다. 제목은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이었지만, 방점은 자사고 선발 방안에 찍혔다. 서울 등 평준화 지역에서 자사고 진학 때 '상위 50%' 성적제한을 두던 것을 풀어 추첨으로 선발하겠다는 안이 나오자 '자사고 육성책 폐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조차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그러나 자사고 측과 학부모들이 '자사고 죽이기'라고 반발하자, 정부는 결국 자사고에 면접시험을 허락해 선발권을 다시 돌려주는 '개악안'을 내놨다. 학부모와 자사고의 떼쓰기에 자사고 출구찾기 전략이 미봉·실종된 셈이다.

자사고의 가장 큰 폐해는 주변의 일반고를 황폐화시켜 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점이 꼽힌다.

국회 유기홍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지역 자사고들과 주변 일반고의 교육 현황을 살펴본 결과, 한 자사고는 학급당 학생수가 29명이었지만 인근 학교는 36.5명에 이르렀다. 올해 입학생 중 중학교 내신 상위 20%에 해당하는 학생 비율도 자사고는 30%, 인근 학교는 15.8%였다. 자사고 재학생들은 학교 위치와 상관없이 서울 전역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 자사고가 생기면 인근 학교들은 학급당 학생수가 급증하는 피해를 보고 있는 게 확인됐다.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원은 "학생 구성 방식 등을 통해 나타나는 학교의 독특한 분위기가 성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맥락효과라고 부른다"며 "자사고 학생들은 긍정적인 맥락효과를, 일반고 학생들은 부정적인 맥락효과를 경험하며, 부정적 맥락효과는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연구됐다"고 밝혔다.

■ 진보교육감들 "엄격하게 평가"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올해부터 자사고 재지정 과정은 험난해질 것으로 보인다. '폐지'로 단정짓지 않았지만, 상당수 진보교육감들이 엄격한 잣대로 재지정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당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자사고 평가에 새 평가지표를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조 당선자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에 '일반고 영향력 평가' 지표를 추가하는 등 평가기준을 강화하고, 최근 엉터리로 실시돼 논란을 빚은 학생·학부모·교원 만족도 조사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당국 간 갈등 조율도 주목받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평가의 기준을 바꾼다면 현장에 혼란을 주고 시간도 빠듯할 것"이라며 조 당선자 측 구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이미 학교들이 보고서를 냈고,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평가에 들어간다. 이를 바꾸려면 학교 설득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며 "평가 결과 교육청과 교육부의 의견이 다르면 협의가 필요하다"고 교육부와의 협의권을 강조했다.

이상수 조희연 선거캠프 대변인은 "조 당선자는 당선 직후 서울시교육청 간부들과 만나 교육감직을 맡게 되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보완할 예정이므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달라고 가장 먼저 요청했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다"며 "이미 학교들이 보고서를 냈지만 몇 가지만 더 추가하면 된다. 시간표상 가능하고, 학교들도 협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주로 지방에 있던 자립형사립고(민족사관고·상산고 등)가 수도권 중심의 자율형사립고로 확대되면서 학교 지정이 남발됐고 자사고의 원래 취지는 실종됐다"며 "자사고는 혜택 배분의 형평성에도 위배되고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추진하며 보편적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현 정부의 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자사고를 없애기 어렵다면 엄격한 평가를 통해 재지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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