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 기관사 "내 가족이 기차 탄다면 말리고 싶다"

2014. 5. 2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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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공공성 무너진 나라-③ 공공분야까지 파고든 돈의 논리 / 철도

"내 가족들이 기차를 탄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서울과 대전·대구 등을 오가는 새마을호 기관사 김광철(가명·47)씨의 넋두리다. 지난 13일 퇴근길에 만난 김씨는 "코레일 직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특히 정비를 맡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제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철도는 예방정비가 중요한데 지금은 고장이 나야 고치는 수준"이라고 했다. 2009년 이전만 해도 새마을호는 종착역에 승객을 내려줄 때마다 검수를 받곤 했지만 지금은 3500㎞를 달린 이후에나 받을 수 있다. 케이티엑스(KTX)도 검수 주기가 3500㎞에서 5000㎞로 늘었다.

이런 정비 축소는 인력 감축이 주된 원인이다. 철도공사 차량 정비 인력은 2003년 7000명가량이었지만 현재는 5181명으로 줄었다. 공사 쪽은 2018년까지 1144명을 더 줄일 계획이다. 지난 2월에는 전체 1200여대의 새마을·무궁화호 열차 가운데 160여대가 검수 시기를 넘긴 채 운행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현수 철도노조 차량국장은 "지난해 11월 무궁화호 사고와 올해 2월 새마을호 사고 등이 모두 검수 회기를 넘긴 상황에서 운행하다 벌어졌다"며 "이런 문제가 외부에 드러나자 공사가 최근 특별점검을 벌였다고 했지만 인력이 없다 보니 행정 직원들까지 동원되는 등 부실점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한달 사이에만 12건의 열차 고장 사고가 발생했다.

"몇 차례 인력감축 과정을 거치면서 정비 부문에서 경력이 오래된 숙련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또 선로 보수·유지 업무가 상당부분 외주 하청업체에 넘겨지면서 중대 사고 때 유기적 대응도 어려워졌다"며 김광철씨는 말을 이어갔다. 모두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였다. 그런데도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전까지는 이런 관행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는 연안여객의 운영이 온전히 민간업체에 맡겨지면서 불거진 측면도 있다. 선사와 이른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해운조합이 도맡는 시스템이었다. 구조업무도 비용 절감 차원에서 민간업체들이 투입됐다. '안전'보다는 '수익'에 몰두하는 구조였다. 이번 사고가 난 뒤 정치권에선 여객선 '공영제' 혹은 '준공영제' 도입론이 나오고 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월호 참사는 1997년 이후 줄곧 추진돼온 철도 민영화의 미래를 보여준 것 같다"며 "공공성이 강하게 작동돼야 할 영역이 수익성과 효율 위주로 운영되면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는 예방정비가 중요한데지금은 고장 나야 고치는 수준"정비인력 11년새 2000명가량 줄어검수시기 넘겨 3~4월 12건 고장정부, 적자해소 위해 민영화 역설취약계층 서비스 '공공회계' 필요

세월호 같은 연안여객선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인 철도의 민영화는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본격 추진됐다. 당시 노조 파업으로 이런 시도가 좌초되자,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철도청을 공사화(코레일)하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임기말인 2011년 수서발 케이티엑스 사업의 민간 위탁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다시 반발 여론에 밀려 접었다. 박근혜 정부는 좀더 우회적인 방식으로 철도 민영화 논쟁의 불을 지폈다. 2016년 개통하는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지난해 12월 자회사 형태로 분할·설립한 것이다. 정부는 자회사 지분 41%를 코레일이, 나머지 59%는 공공자금이 차지하도록 한 데다 민간에는 팔지 못하게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철도노조와 시민단체·야당 등에서는 민영화로 가는 시발점이라고 맞서고 있어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김광철씨는 1995년 철도청에 입사했다. 공무원 신분이었던 그도 2005년 공기업 직원이 됐다. 월급은 좀 올랐지만 인력감축으로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2000년 4만1970㎞였던 1인당 수송거리는 2012년 6만5000㎞까지 늘어났다. 공사화를 1년 앞둔 2004년 케이티엑스 개통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비용절감을 위해 업무의 상당부분이 외주화되면서 같은 열차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끼리도 소속 회사가 달라졌다. 불법파견 논란을 빚은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이 대표적이었다.

수익성이 중시되는 바람에 서민들의 이동권도 크게 제약받기 시작했다. 수익성이 높은 케이티엑스 운행 편수가 많아지면서 요금 때문에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고 싶은 사람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싼 열차를 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역 전광판에서 케이티엑스로만 운행시간표가 주르륵 뜰 때 착잡하다"고 그는 말했다.

철도공사 자료를 보면, 2008년 455회였던 일반철도(새마을·무궁화호 등)의 운행 횟수는 지난해 388회로 뚝 떨어졌다. 2018년에는 275회로 줄어들 것으로 공사 쪽은 내다봤다. 적자노선이 폐지되거나 지방간선철도 이용자들의 불편은 더 심해질 게 뻔하다. 종전에도 한국철도는 영업거리가 짧아서 네트워크 교통으로 기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971년 약 3200㎞였던 철도의 영업거리는 2012년에도 3378㎞로 여전히 300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일반철도가 줄어든 것은 적자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2009년 기준으로 영업계수를 비교해보면, 케이티엑스가 75인 반면에 새마을과 무궁화호는 각각 170와 200이다. 영업계수가 100을 넘으면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부산' 열차 시간표를 확인해봤더니, 20일 기준으로 케이티엑스는 운행 편수가 새벽 5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61회나 됐지만, 새마을호는 오전 8시43분부터 밤 10시50분까지 6회('ITX-새마을' 별도로 6회 운행), 무궁화호는 오전 6시10분부터 밤 10시50분까지 15회에 그쳤다. 케이티엑스의 운임은 5만3300원(특실 7만4600원),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각각 4만700원과 2만7300원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운임으로 이동하려는 일반철도 이용객들의 선택권이 지나치게 좁아진 셈이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무궁화호가 언제 비둘기호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케이티엑스의 '요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2012년 요금인상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서울지하철 9호선 사례가 민영화된 케이티엑스의 거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자로 건설된 서울지하철9호선의 기존 대주주였던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가 50% 이상 요금을 올리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증폭되자, 현재는 서울시가 다시 운임 결정권을 가져온 상태다. 민간 시장에 맡겨진다고 해서 효율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대체로 민영화 반대운동의 맥락에서는 기본적 재화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접근성과 관련돼 있다. 고교 평준화 폐지론에 맞서온 '교육 공공성'이나 금융권에서 거래하기 어려운 기업이나 계층에 대한 접근성 강화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거론하는 '금융 공공성'도 이런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광철씨는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새 노동자들이 방만경영·비효율의 주범이 돼 있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철도를 비롯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 쪽 논리는 한결같다. 공기업의 과다부채 문제가 그 중심에 있다. 코레일은 출범 이후 해마다 5000억원 이상 적자가 지속돼, 2005년 4조5000억원이던 적자 규모가 지난해 17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경쟁체제 도입과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정부 쪽은 강조한다. 민영화 추진의 불씨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물가인상에 못 미치는 요금인상을 고려해야 하는데다, 부채 급증에는 인천공항철도 인수, 사회취약계층 서비스 제공 같은 정책적 요인도 작용했다는 반박이 나온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철도공사의 운영적자는 사회적 취약 계층과 지역에 철도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공공기관 평가에서 종래 기업회계방식뿐 아니라 공공적 부가가치를 계량화해서 반영하는 '사회공공회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철도노조는 수서발 케이티엑스 주식회사 설립이 민영화로 가는 포석이냐 아니냐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안전과 공공성 강화라는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을 세우는 데 더 무게를 둘 것인지, 아니면 수익성이 한층 강조되는 조직으로 재편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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