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월호 참사와 닮은 열차 브레이크 납품 비리

봉지욱 2014. 5. 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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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지하철끼리 추돌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서울 메트로 측은 "열차 자동정지장치(ATS)나 신호기 고장, 브레이크 제동 장치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29일, JTBC는 검찰이 열차용 불량 브레이크 수십 만 개를 유통시킨 일당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29일뉴스보기: http://news.jtbc.joins.com/html/308/NB10472308.html )

이날 리포트에 "지금도 유통 중인 불량 브레이크가 대형 철도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멘트가 나온다. 괜한 걱정이기만을 바랐는데, 3일 만에 사고가 터졌다. 물론 브레이크 탓이 아닐 수도 있다. 해당 열차에 불량 브레이크가 장착됐는지 확인 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상세히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ATS든 신호기든, 브레이크든 현재 철도와 지하철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에 대한 안전 인증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하 철도연)이란 국책연구기관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최근 철도연을 중심으로 대형 납품 비리가 터졌다. 안전을 증명하는 '합격인증'이 조작된 것이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지난달 16일, 제동 능력이 기준에 미달한 브레이크에 조작된 '가짜 합격증'를 발부한 혐의로 철도연 소속 권모 책임연구원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권 연구원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열차 브레이크 제조업체 4곳으로부터 수천 만 원의 금품을 받고, 가짜 합격증을 내줬다. 금품을 건넨 업자 7명도 함께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업체들은 돈 주고 산 합격증을 근거로 불량 브레이크를 수십 만 개나 만들어 납품했다. 검찰은 문제의 브레이크 중 상당수가 철도공사(코레일)가 운영하는 새마을호, 무궁화호, 화물열차, 코레일 지하철 등에 장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열차인지, 몇 번 바퀴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유통 중이고, 사용 중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서울메트로 등 도심 지하철에도 납품이 이뤄졌다는 진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3일 뉴스보기 : 링크) 상식적으로 봐도 물건 파는 입장에서 납품처를 철도공사로만 한정했을 이유도 없다. 서민이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불량 브레이크라니. 이번 추돌을 단순 부품 고장 혹은 기관사의 실수로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토교통부는 불량 브레이크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철저히 조사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국토부는 이번 사건을 모르고 있다. 철도연이 보고를 안 했기 때문이다. 철도연 고위 관계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철도연은 권 연구원이 어느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인지, 불량 브레이크가 어디로 납품됐는지 등 자체 진상 조사도 벌이지 않았다.

물론 '무죄 추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권 연구원에 대한 징계는 재판 결과 이후에 해도 된다. 그런데 만약 조작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불량 브레이크가 재난으로 이어진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철도연의 무사태평에 기가 찼다.

철도연의 애매한 위치도 문제다. 철도연은 국토부 업무를 하지만, 직제상으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관이다. 이런 구조 탓에 철도연은 미래부 감사실에는 "개인적 일탈(금품수수)로 검찰이 조사 중"이라며 보고했다. 브레이크 합격증을 조작(사문서위조)한 혐의는 쏙 빠졌다. 미래부는 보고를 받은 뒤, 감사를 하든 국토부에 알리든 했어야 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많은 점에서 세월호와 비슷하다. 세월호 침몰 배경에 해양수산부로부터 선박 검사를 독점 위임받은 한국선급이 있었다면, 여기에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열차 부품 안전 검사를 독점 위임받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들은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창구로 활용됐다.

취재 결과, 철도연의 감사는 지난 정권의 교육과학기술부, 감사실장은 국토교통부 퇴직 관료였다. 권 연구원의 비위가 4년 넘게 계속됐지만, 감시나 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민간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라는 '관피아(관료 마피아)'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이 퇴직 후 민간기관에서 일하는 것까지 싸잡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세월호나 불량 브레이크 사건처럼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니 문제다. 상급기관인 미래부와 국토부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불량 브레이크를 신속히 회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선 국민들 입에서는 "도대체 믿고 탈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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