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위험사회, 국민은 알아서 살아남아라?

2014. 4. 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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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돈의 논리에 사로잡힌 정부, 정치적 셈만 따진 권력, 눈치만 보는 관료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든지 돈이 되게 하기 위해' 규제를 마구잡이로 풀고, 이명박 정부는 집토끼를 염두에 둔 '안보 강화'에만 신경을 쓰고 재난을 관리할 컨트롤 타워를 해체했다. 가뜩이나 성과주의에 익숙한 관료들은 박 대통령의 "옷을 벗기겠다"는 잘못된 메시지에 더욱 몸을 사리고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어디에도 없다. 세월호 참사는 위험사회,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돈이 되지 않는다면, 돈이 되게 해줘야 한다. 돈이 되게 하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

돈이 되는 방법을 찾으라는 명령에 각 정부 부처는 누구보다 신속하게 움직였다. 3월 27일 정부 부처는 합동으로 규제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현장건의 후속조치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이 계획에는 총 41건의 규제개혁 추진계획이 담겨져 있었다. 대통령으로부터 후속조치 마련이 주문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기업들은 각종 규제들을 성토했다. 각종 건의들을 추려내니 총 52건. 박 대통령은 "규제완화를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손톱 밑 가시 선정을 왜 했나"라면서 "어떻게든지 되게 하려 한다면 문제도 해결하고 쉽게 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17일 실종자가족을 만나는 박근혜 대통령. | 김영민 기자

돈 되는 일이라면 현행법 간단히 무시

대통령의 말을 좇아 '어떻게든지 되게 하려 한' 결과, 현행법은 간단히 무시됐다. 의료법 시행령 20조는 의료법인 및 부대사업은 영리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인의 해외진출 시 비영리법인으로 활동하여 많은 제약이 발생하므로 영리 자법인 허용을 통한 애로 해소가 필요하다"는 박성민 보바스병원장의 건의에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이 가능하도록 자법인 설립 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화답했다. 의료법인의 영리행위가 현행법에 막히자, '어떻게든지 되게 하기 위해' 시행령도, 시행규칙도 아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을 두고 '전봇대 뽑기식 규제개혁'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하나로 의료체계를 바꾸고 민영화를 하겠다는 꼼수라는 것이다. '규제완화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대명제에 기형적인 제도까지 도입하며 대통령도, 부처 장관들도 누구보다 신속하게 움직였다. 대한민국 정부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는 돈인 셈이다.

규제완화를 '어떻게든지 되게 해'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창출하려는 생각 속에 국민들의 안전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근본적인 배경 중 하나로 돈부터 따지는 정부가 지목되는 이유다. '어떻게든지'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창출하려는 정부의 기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비용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결국 국민들에게 위험을 부담시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건이 최악의 참사로까지 번진 데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들이 뒤엉켜 있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에서는 폐선 연령인 선령 20년의 노후 선박이 인천과 제주를 오갈 수 있도록 한 규제완화 때문이다. 2009년 당시 국토해양부는 기존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했다. 선령 제한을 완화하면서, 그 명분으로 2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내걸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제한한 규제를 '해양사고는 선령과 직접적으로 무관하다'는 이유를 들어 풀어버린 셈이다.

선박ㆍ선원ㆍ터미널 노후화 대책 전무

그러나 선박 노후화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는 전문가들로부터 계속해서 지적돼 왔다. 김수엽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해사정책연구실장은 2013년 < 현대해양 > 에 '선박 노후화, 선원 노령화, 터미널 낙후 등 삼로(三老)현상 심화'라는 제목으로 선박 노후화가 해양 안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2003년에는 21년 이상 된 여객선이 3척이었으나 2011년에는 23척으로 증가했는데, 여기에는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최대 30년으로 변경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노후한 여객선이 많을 경우 해양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져 자칫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지만, 이에 대한 관계부처의 대책 마련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비용 절감을 위한 추가적인 규제완화책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장이 배의 안전관리 체제를 검사해 부적합 사항을 조사하고, 선박회사도 별도의 심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던 규제를 완화해 지난해 6월부터는 선장 보고와 선사의 내부심사를 폐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법률안심사소위 의원들과 해수부 관계자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비용 절감·수익 창출의 논리가 '안전 논리'를 압도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3월 27일 '현장건의 후속조치 계획'에서는 종합의료시설 용지제도 개선에 대한 규제완화가 제시돼 있다. 현행법상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종합의료시설 용지에는 종합병원만 설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박성민 보바스병원장이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종합의료시설 용지에 종합병원 외의 의료기관 건립 허용을 건의하자, 정부는 택지개발지구 내 의료기관의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도록 입지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럴 경우 가뜩이나 종합병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환자나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 더 부족해지는 상황이 초래될 위험성이 높다. 우석균 실장은 "종합병원에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있지만 전문병원은 중환자실 응급실이 없고 딱 돈 되는 수술만 한다. 돈 안 되는 수술은 안 한다"라면서 "종합의료시설은 한 지역사회에 가장 필요한 의료기관이라서 규제를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게 사라지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색깔 지우려다 시스템 망쳐

그렇다면, 비용 절감·수익 창출이라는 돈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정부도 국민의 안전을 고려할까.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정부의 속살은 돈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국민의 안전보다는 정부의 정치적 셈법이 우선적 고려 대상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실종자들에 대한 구조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정부를 향해서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가 어디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참여정부 시절 위기나 재난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진 위기관리센터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각조각 해체됐다. 참여정부의 색깔을 지우려는 정치적 셈법이었다. 당시 위기관리센터장이었던 류희인 충북대 겸임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이었던 인수위 시절을 회고했다. 류 교수는 "당시 이명박 당선인을 찾아가 폐지하면 안 된다고 적극 만류했다. 제발 부탁이니 청와대에 들어가서 눈으로 보고 판단한 후에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없애달라고 사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위기관리센터 내의 한 부서였던 상황실만 빼고 모두 폐지됐다. 상황실의 인원도 3분의 2 정도로 줄어들었고, 위기관리팀으로 지위도 격하됐다. 참여정부 당시 위기관리센터는 안보와 재난, 그리고 사회 핵심 기반시설 등 세 가지 영역의 위기를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안보만이 위기관리팀에 남고 나머지 영역들은 해당 부처로 내려가게 됐다.

이명박 정부가 안보만을 위기관리팀에 넣은 것은 '안보 강화'의 이미지가 '집토기 잡기'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정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0년 < 보수정권의 위기관리 능력 > 이라는 칼럼에서 "안보는 국가안보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안보로 그 영역과 포괄범위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재난구호와 위기관리 능력이 오늘날 정부의 안보능력을 좌우하는 가늠쇠가 되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가안보'라는 측면에서만 안보를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는 집토끼 결집 효과만을 통해서도 충분한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안이한 인식 하에서 쉬운 재집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듯하다"면서 "선거에는 이길지언정 정작 장기적 지도력을 상실하게 되는 성공한 실패"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의 말대로 안보만을 강화한 정권은 국민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재난이나 위기상황에는 무력했다. 무엇보다 '인간안보'라고 할 수 있는 재난 구호와 위기관리 능력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볼 수 있듯 재난은 보통 한 부처가 아니라 범정부적인 대처를 요구한다.

대통령 엄포에 공무원들 되레 안 움직여

류 교수는 "보통 하나의 재난에 9개 정도의 부처가 관련되어 있는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임무가 중복되지 않게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게끔 해주는 게 위기관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각 부처와는 독립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컨트롤타워가 사라지고 수평적인 관계인 각 부처가 서로 재난에 대응하다 보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류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때 구제역이 발생했는데 농림수산축산부가 국방부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장병 부모들이 여기에 대해 반대하는 민원을 넣자 국방부에서는 병력 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만든 2800쪽 분량의 부처별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 | 경향신문

이러한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위기나 재난상황 때마다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어, 위기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류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 안전을 국정과제로 잡고 부서 이름도 안전행정부로 바꾸었지만, 행정안전부든 안전행정부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문제로 남아 있던 위기관리 컨트롤타워 기능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행사하던 컨트롤타워 역할을 안전행정부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관련 부처 간 입장 차이나 갈등을 조율해낼 수 있는 조정권이 있어야 하는데, 같은 부처가 횡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한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참여정부 색깔 지우기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재난관리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은 정치적 이득을 국민 안전보다 앞세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참사 겪고도 변화 없으면 살 곳 아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국가안보와 재난사고에 대한 통합적 대처시스템을 참여정부에서 만들었는데 그걸 이명박 정부에서 축소하고 없애버린 것은 정말로 통탄할 만한 일"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게 정부의 제1 임무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의식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수익 창출, 정치적인 셈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 순위로 국민의 안전은 고려될까.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의 안전이 관료들의 성과주의와 눈치보기에 가로막혀 있었음을 보여줬다. 또한 관료들의 이와 같은 태도를 부추긴 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지적이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후, 가장 먼저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일성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는 관료들의 "옷을 벗기겠다"는 것이었다. 한상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첫 메시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메시지를 연구하는 한 연구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첫날 메시지는 정말 잘못된 것"이라며 "그렇게 말하면 공무원들은 아무도 안 움직이게 된다. 확인되지 않은 컨트롤타워가 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신속히 이행했다가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되면 옷을 벗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리더는 '옷을 벗기겠다' '엄단하겠다' 같은 메시지를 절대 내보내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하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하라'고 말해야 한다."

해수부의 한 관계자는 "해경의 경우 예산이 적다. 예비비도 적고, 단속업무를 할 때도 기름값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였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이 해경의 구조작업을 위축시켰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장재연 아주대학교 교수는 "관료들의 대통령 눈치보기가 너무 심하다. 과잉충성 방식인데, 이번에도 환경부가 규제를 8%씩 없애겠다고 한 것은 그야말로 국민들 안전이나 이런 거 상관없이 대통령의 눈치만 보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대통령의 메시지는 관료들의 성과주의와 눈치보기의 관행을 긴급한 상황 속에서 더 부추기는 역할을 한 셈이다.

세월호 참사로 4월 25일 현재, 사망자가 185명에 달하는 가운데 정부는 침몰 직후 구조한 최초 구조자들 외에 단 1명도 추가로 구조해내지 못했다. 국가적인 재난에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을 두고 정부의 재난구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부터 아예 시스템이 없었다는 지적이 엇갈리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점검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돈의 논리, 정치적 셈법, 관료들의 무책임한 관행이 정부를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국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이 없다면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라며 "그것은 인간이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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