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償복지의 역설] [4] 名退예산 모자라.. 젊은 예비 교사들 1~2년 임용 대기

최윤아 기자 2014. 3.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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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29일, A(31)씨는 떨리는 손으로 초등교사 임용 시험 합격자 확인 사이트에 자신의 수험 번호를 입력했다. '합격'이란 두 글자를 확인하곤 주저앉아 소리 내 울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 투자했던 지난 5년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A씨는 금융회사 직원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교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스물여섯 살에 사표를 냈다. 수능을 다시 치러 지방의 한 교대에 입학한 A씨는 서른 살에 초등 임용 시험에 지원해 합격했다. "제가 봤던 책들을 쌓으면 제 키보다 클 거예요.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지독하게 공부했죠.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주는 선생님이 꼭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A씨는 임용 시험에 합격한 지 1년이 지나도록 교단에 서지 못하고 있다. 대개 임용 시험에 합격하면 6개월 정도 지나 발령을 받았으나, 올해는 신규 교사 수요가 예년보다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올해 합격자는 물론이고, A씨처럼 작년에 합격하고도 1년 넘게 발령받지 못한 예비 교사도 상당하다. 서울은 올해 신규 발령 교사가 42명으로 지난해(453명)의 10분의 1 수준이다.

신규 교사는 정년·명예퇴직 교사가 나간 자리를 메우게 되는데 올해는 명퇴 교사 숫자가 크게 줄었다. 불어난 무상 교육·복지 탓에 명예퇴직 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명예퇴직 예산은 지난해 1086억원에서 올해 255억원으로 줄었고, 경기도교육청의 명예퇴직 예산도 지난해보다 421억원(521억원→100억원) 감소했다.

그 결과 올 1월에 초등 임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7383명이나 되는데, 지난 3월 1일자로 초등학교로 발령받은 전국의 신임교사는 2071명에 불과하다. A씨처럼 작년 또는 올해 초등 임용 시험에 합격해놓고도 발령을 기다리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5594명이다. 이 발령 대기자들이 대거 계약직 교사인 기간제 교사로 몰리면서 기간제 교사 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A씨는 "기간제 한 명 뽑는 학교에 20명씩 몰려 2월에만 3번 떨어졌다"며 "올해는 발령이 날 줄 알고 대출받아 전셋집도 마련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역시 지난해 교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아직 대기 중인 예비교사 김모(29)씨는 "기간제 교사에도 탈락해 자동차 유지 비용과 공과금을 어찌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교사 대기 발령자뿐만이 아니다. 첫 번째 관문인 임용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임용 시험 문이 더 좁아질까 봐 노심초사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한 체육 교사 실기 학원. 90평 남짓한 실기 연습실에서 수차례 허들을 넘는 동작을 반복하던 김모(29)씨는 지금까지 중등 임용 시험을 5번 치렀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김씨는 대학 때 4년, 졸업 후 5년을 교사가 되기 위해 투자했다. 김씨 부모는 아들이 대학 졸업한 후에도 다달이 150만원씩, 5년 동안 거의 1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스포츠 강사로 일했다. 스포츠 강사는 학교 수업 시간에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비정규직 교원이다.

"스포츠 강사로 일하던 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는데 '탈락'했다며 속상해하더라고요. 저는 어떻게든 빨리 학교에서 일하고 싶은데…. 합격까지도 먼 길인데 그 이후에 발령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암담하네요."

노량진의 또 다른 초·중등 임용 시험 준비 학원에서 만난 김모(23·여)씨는 "미발령 사태가 누적되면 아예 임용 시험에서 교사 모집 인원을 줄이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교육부가 최근 몇 년간 교사 모집 인원을 계속 늘려 임용 시험 경쟁률은 낮아지는 추세였지만, 임용 대기자가 많으면 인원을 줄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김씨는 "서울은 신임 초등교사를 거의 1000명 뽑아놓고도 단 한 명도 발령을 못 냈는데 올해 안에 그 인원을 다 소화하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상 교육·복지 예산이 늘어나면서 스포츠 강사 등 비정규직 교사를 채용하는 데 배정하는 예산도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초등 스포츠 강사 인건비로 지난해엔 72억원을 편성했지만, 올해는 54억원으로 삭감했다. 지난해 서울의 모든 초등학교에 배정했던 스포츠 강사(584명)가 올해는 333명으로 줄었다. 전북교육청도 지난해 37억8000만원이던 스포츠 강사 예산을 올해 8억6800만원으로 줄였다.

작년까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포츠 강사로 일했던 정모(39)씨는 "무상 교육 정책이 쏟아질 때마다 '내 일자리가 계속 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작년까지는 스포츠 강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었는데 올해 일자리를 잃게 돼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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