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불가능의 사회, 연애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변명'

박소연 기자 2014. 3. 26.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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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애의 종말③]여유 없는 '3포세대'..일자리와 '저녁이 있는 삶' 보장해야

[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자유연애의 종말③]여유 없는 '3포세대'…일자리와 '저녁이 있는 삶' 보장해야]

지난 2012년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노동당(구 진보신당) 주최로 열린 '키스 플래시몹'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키스타임을 갖고 있다. 행사에서는 연애의 적으로 '야근에 초과근무', '백수', '비정규직' 등을 꼽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사다. /사진=뉴스1

# 서울 명문대 출신의 직장인 2년차 최모씨(30)는 한 달에 2번씩 소개팅을 하지만 1년 반째 '솔로'다. 대학시절 3년 넘는 연애를 했던 최씨는 단기간에 매력을 어필하고 '밀당'하고 3~4번 안에 끝장을 보는 '인스턴트 연애'에 익숙지 않다. 자연스럽게 호감을 발전시키고 싶지만 야근과 주말 당직으로 만남의 계기가 없다 보니 소개팅만 반복하고 있다. 최씨는 "썸과 실패를 반복하다보니 두근거림이나 설렘의 감정이 짧게 소비되는 느낌이다"며 "진지하게 상대방에 대해 고민하며 만나기보다 얕은 수준에서 여자를 판단하게 되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직장인 3년차 정모씨(29·여)도 연애가 어렵다. 과거 죽고못사는 연애도 해봤지만, '머리가 굵어진' 지금, 연애는 풀어야 할 숙제다. 정씨는 "지난해 소개팅을 10번 넘게 했는데 몇 번 대화하고 아니다 싶음 과감히 다른 여자로 갈아타더라"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땐 서로 달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는데, 이젠 남자고 여자고 마음 다치지 않게 애초에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으려는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애는, 어렵다. 서로 다른 사람과 마음을 맞추고 공통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어려운 일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를 더 어려워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망이 크지만, 사랑을 키워나갈 여유와 여건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애 불가능의 사회…"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

현재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연애는 자연스러운 일상적 만남이라기보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후 치열하게 노력해 이뤄야 할 하나의 목표가 된 지 오래다. 취업이 지상목표가 된 '3포세대', '88만원 세대'에게 연애는 다른 당면 목표에 의해 미뤄지기 일쑤다. 직장인들은 야근으로 외로이 밤을 지새며 '차'와 '집' 등 '자격' 마련에 힘쓴다.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20대 여성들을 인터뷰해보면 '정규직 되면 연애하겠다'고 한다. 현재 비정규직 비율이 40%가 넘는다. 연애감정이 있을 수 있지만 유예된다"고 지적했다.

박사과정생 장모씨(30·여)는 "연애가 즐거우려면 우선 나 자신에게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30대 중반까지는 여유가 없을 것 같다"며 "각박한 세상에서 자신과의 관계구축이 늦춰지다보니 타인지향성 관계구축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현실의 연애가 어려울수록 연애에 대한 환상은 커진다. 이례적으로 '외계인' 남자주인공을 등장시킨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는 현실에서 완벽한 사랑의 어려움을 역으로 말해준다. /사진=SBS '별에서 온 그대' 방송화면 캡처

현실이 각박해질수록 사랑에 대한 이상은 높아지고 환상은 커진다. '백마 탄 왕자'와 '조건 없는 사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젊은이들은 지상을 벗어나 '외계인'(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에게서 완벽한 사랑의 가능성을 찾는다. 현실이 아니라 미디어가 연애담론을 주도하면서 사랑은 더욱 물신화됐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매체를 통해 연애가 신화화, 이벤트화되면서 기대치가 높아지는 데 반해 실제 젊은이들의 경제적 자원은 뒷받침되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 간극으로 개인의 연애 만족도는 더욱 낮아진다"고 말했다.

◇연애라는 과정, 그 참을 수 없는 불안함

현실은 TV 드라마와 다르다. 연애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동반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상처와 감정 소모를 견디기에 현대인들은 너무나 유약하고, 미래는 너무 불안하다.

김병수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현재 20~30대는 자기계발서는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형제나 부모, 친구 간 다양한 관계맺음의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며 "어떤 행동을 할 때 상대방 마음과 감정이 어떻게 움직일지 부딪히며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데 최대한 실패하지 않도록 보호받으며 자라 대인기술을 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래가 불확실하다보니 책임감이 강할수록 오히려 관계진전에 신중해진다"고 말했다.

각종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의 인기는 현재 젊은이들이 현실 연애에서 어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스스로의 연애 경험과 서사가 적은 젊은이들이 연애 서적과 컨설팅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사진=온라인 게시판

젊은이들은 억울하다. 불안을 극복하고 감정을 쌓아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소개팅'에 사활을 걸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람을 만나 전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서로 맞춰가며 사랑을 꽃피울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럴 여유가 없으니 딱 만나서 나랑 맞나 안 맞나 눈에 보이는 조건으로 한눈에 평가하게 된다. 꽃을 피워나가기보다 화려하게 손질돼 꽃꽂이돼 놓인 것만 찾으려 한다"고 평했다.

◇"젊은이들에게 연애를 허(許)하라"

연애는 개인적인 영역임과 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문제다. 젊은이들이 겪는 연애의 어려움은 결혼률과 출산율 감소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행복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 젊은이들이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돈 없으면 연애 못한다'고 한다. 양성이 평등한 복지국가 젊은이들은 덜 겪는 문제"라며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관계와 연애 서사를 시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세세하게 느끼고 감정에 따라 움직일 힘이 생긴다. 바쁘고 지치고 걱정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똑같은 대상을 눈앞에 두고도 사랑의 감정 상태를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청춘들은 사랑에 계산적인 게 아니라 미래가 불안해 실패 가능성에 위축되게 되는데 쿨하기만 해서는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없다"며 "사랑은 노력과 희생 없이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찌질함과 비참함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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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소연기자 soyu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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