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울대 음대 '임용 비리'-'학력위조' 의혹, 진실은?

한세현 기자 2014. 1.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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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악대학

기사를 쓰면서 바라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예술가를 양성하는 건물답게 설명하기 어려운 웅장함마저 느껴집니다. 적어도 밖에서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출입기자로서 바라본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웅장한 건물 안에선 크고 작은 잡음과 고성, 갖은 비방이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엔 '신임 교수임용'과 '허위 학위논란'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수 임용과정에서 '내정자 밀어주기'가 있었다."

논란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울대는 성악과 교수 신규 임용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지원자는 모두 7명, 하지만 1단계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단 1명이었습니다. 나머지 지원자 6명은 1단계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무더기로 탈락한 것입니다. 뜻밖의 결과에 많은 사람이 당황해 했습니다. 교수공채 심사규정에는 임용 예정 인원이 1명인 경우 1단계에선 3배수를 면접 심사 대상자로 선발한다고 명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단계 심사에 홀로 올라온 지원자가 심사위원 6명 중 4명으로부터 만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음대는 연구실적물 평가에서 5점 만점에 4점 이상 받은 사람에 한해 2단계 평가를 진행하는데, 지원자 7명 중 단 1명만 4점 이상을 받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교수와 지원자들은 '사실상 내정자 밀어주기'라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단독 후보로 올라간 테너 신 모 씨는 현직 음대 교수인 박 모 교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교육받았고, 공연도 수차례 같이했다.'고 주장했고, '박 교수가 다른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신씨를 강하게 밀고 있다.'는 주장 등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더 커지게 됩니다.

이들은 신씨는 미국의 한 음악아카데미를 수료했는데, 그곳의 수료증은 우리나라에서 석사학위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고 따라서 신씨의 최종학력은 '학사'로 봐야 한다며 '박사학위나 그에 따르는 경력을 요구하는 자격 요건에 맞지 않다.'라고 반발했습니다. (성악계 인사 190여 명도 신씨가 공부한 아카데미를 정식 학위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만점 대 0점'으로 나뉜 심사위원 평가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신씨를 상대로 진행된 2차 오디션 평가에서 심사위원들의 점수가 극과 극으로 나뉜 것입니다. 6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4명은 100점 만점을 줬지만, 나머지 교수 2명은 0점을 줬습니다. 이런 논란에도, 서울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한마디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신씨가 졸업한 아카데미가 학위 인증기관은 아니지만, 신씨가 그곳에서 4년 동안 1,800시간 교육을 받았고, 그 정도면 박사학위에 준하는 경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사에서 탈락한 지원자들과 성악계 인사 150여 명이 다시 인사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서울대는 결국 지난 8월 교수 임용 절차를 중단하게 됩니다. (당시 서울대는 신규임용이 취소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후 신씨의 교육경력 부족이 취소 원인이었다고 밝힙니다.)

"서울대 음대 현직 교수의 학위도 가짜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던 교수 임용 논란은 지난해 9월, 서울대 음대가 다시 교수 임용공고를 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지난 평가에서 유일하게 1단계 심사를 통과했던 테너 신 모 씨가 또다시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논란에도, 신씨는 이번에도 다시 최종 후보로 결정됩니다. 서울대는 재심사에서도 신씨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고, 지원자격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판단해 신씨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씨는 다음 달 4일, 인사위원 9명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거쳐 교수로 임용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이번엔 신씨와 가까운 사이로 신씨의 임용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성악과 박 모 교수의 학위가 가짜라는 논란이 불거진 것입니다. 국내 테너계의 대표 주자로 평가받은 박 교수는 지난 2004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임용 당시, 박 교수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이탈리아 페스까라(Pescara) 고등음악원과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Creteil) 국립음악원을 수료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서울대가 발행하는 교수 명부에도 박 교수의 최종 학력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박 교수가 교수로 부임하기 직전(2004년 2월) 열었던 귀국독주회 안내 책자에도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을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올라와 있는 공연 소개에도 박 교수는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제가 만난 박 교수의 지인들도 박 교수가 프랑스 크레테이 음악원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문화체육부 홈페이지 올라온 박 모 교수 프로필

"우리 음악원에 그런 이름의 학생은 없다."

하지만, 취재진이 프랑스 크레테이 국립음악원에 확인한 결과, 박 교수는 국립음악원에 다닌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크레티이 음악원은 "우리 음악원에 그런 이름을 가진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학교에 다녔다는 어떤 기록도 찾을 수가 없었다."라고 공식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국립음악원 공식 답변서,

"우리 학교에서 '미스터 박'이 전혀 교육받은 바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하단에 서명한다."

박 교수의 해명을 듣기 전, 서울대 교무처에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먼저 물어봤습니다. (박 교수에게 먼저 연락하면 박 교수와 서울대 교무처가 의견을 조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교무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박 교수가 채용 당시에 제출했던 서류를 보면,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음악원 5년 과정 중 1년만 수료했다고 적혀 있다. 그 음악원 이외에도 우리 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페스카라 고등음악원)에서도 공부했기 때문에 임용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서울대의 해명은 당사자인 박 교수의 해명과 또 차이가 있었습니다.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박 교수는, 1년 간 다녔다는 교무처 해명과 달리 자신은 프랑스 파리 크레테이 음악원을 다닌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14년 전 국립음악원 교장에게서 졸업에 준하는 인증을 받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교수로 임용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파리 크레테이 음악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는 건 등록금을 낸 적이 없다고 한 얘기가 와전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박 교수와 통화한 뒤 관련 내용을 서울대 교무처에 다시 확인하자, 그제야 교무처는 박 교수와 같은 입장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또, 박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기로 했고 박 교수도 관련 서류를 준비해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취재과정에서 전·현직 음대 교수 8명을 포함해 유럽과 미국 등 외국에서 공부한 성악가 28명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또, 논란의 중심에 선 테너 신 모 씨, 서울대 음대 박 모 교수와 같이 공연했던 예술가들도 만나 얘길 들어봤습니다.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공통으로 모이는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음악은 음학(學)이 아니라 예술성을 정확하게 수치화해서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서울대와 테너 신씨, 박 교수 모두 이번 교수 임용과 허위 학위 논란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다.",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서울대를 포함한 당사자들의 해명이 명쾌하지 않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건 분명하다."

물론, 외국의 음악교육 제도는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교수 임용과정에선 학위뿐만 아니라 공연한 무대의 수준과 횟수, 오디션을 통한 실기 평가, 콩쿠르 수상 경력 등을 다양하게 평가하게 됩니다. 학교마다 점수 규정을 만들어 공정하게 평가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일부 서울대 음대 교수들은 자기 학교에서 교수를 뽑고 있지만, 그동안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자신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통해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도덕적인 사람도 특정 조직에 속하게 되면 조직의 이익에 따라 비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제도를 통해 이런 비리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재원을 만나고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전 니부어의 지적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서울대가 심사과정에서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만약 있다면 이를 어떻게 수치화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지, 또 그 과정을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어떻게 설명하지 고민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논란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 취재과정에서 화강윤 수습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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