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삼성이라 노조를 노조라 부르도록 하라

2014. 1. 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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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사회] 인천지법 "삼성일반노조가 노조 이름 쓴 건 위법하지 않다" 결정삼성일반노조를 '법외노조'로 볼 수 없다는 판단까지 내린 건 아냐

'삼성일반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일까, 아닐까.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 질문에 대해, 최근 법원이 작은 응답을 내놨다. 삼성일반노조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이라는 점을 확인해준 것이다. 또 이미 합법적인 절차로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삼성일반노조에 대해 과거 설립 반려 사유를 들어 처벌하려는 것은 과도한 법 집행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삼성일반노조뿐만 아니라 그동안 노조법과 시행령을 과도하게 해석해 노조 활동을 제약해온 대기업·정부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1년 전 설립 과정을 문제 삼아

삼성일반노조를 둘러싼 법정 소송의 시작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환(56)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2012년 1월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 해고노동자 복직과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의 산재 보상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매주 열었다. 그가 집회를 하면서 '삼성일반노동조합'이라고 적힌 깃발·현수막을 설치한 것을 두고, 삼성화재에서는 "노조법상 적법한 노동조합도 아니면서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쓴다"는 점을 들어 고용노동부에 김 위원장을 고발했다. 노동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김 위원장을 노조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에서 문제 삼은 건, 11년 전 삼성일반노조의 설립 과정이었다. 삼성 하청업체인 '이천전기' 해고자였던 김 위원장은 다른 삼성 계열사 하청노동자·해고자와 함께 2003년 2월 '인천지역 삼성일반노동조합'을 세웠다. 인천시로부터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은 그는 보름 뒤 '삼성일반노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설립신고사항 변경신고증도 발급받았다. 일반노조는 직업·산업·지역 등에 관계없이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삼성일반노조가 삼성그룹 전 계열사, 그 산하 사내하청업체,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 및 해고자 등을 조합원 대상으로 삼도록 규약을 변경하자, 인천시는 "근로자가 아닌 해고자를 가입시켰으므로 노조로 볼 수 없다"며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라고 통보했다. 현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같은 이른바 '법외노조'로 규정한 것이다. 검찰은 오래전 인천시로부터 법에 의한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은 삼성일반노조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쓴 것 자체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4년엔 삼성생명이 명칭 갖고 소송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2단독 임수희 판사는 지난 1월9일 검찰이 김 위원장에 대해 낸 노조법 위반 소송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임 판사는 "노동조합이 적법하게 설립된 이후에 사후적으로 설립신고의 반려 사유(노조법 제12조 3항)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관해 형사적으로는 물론, 행정적으로도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 조항도 노동조합법에 두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조법 자체가 적법한 노조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규제 조항을 둔 것은 설립신고를 하지 않은 노조의 활동을 막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설립된 노조가 뒤늦게 행정관청으로부터 노조가 아니라는 통보를 받은 경우까지 처벌 범위에 두는 것은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확대해석이라는 것이다. 임 판사는 또 노조법에 이미 설립된 노조에 대한 규제 조항이 없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들의 단결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노조의 보호·육성을 위해 설립신고주의에 기반해 노조 보호 목적의 최소 관리·감독만을 요구하는 노조법 입법 목적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일반노조의 활동을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10월 당시 삼성 계열사 어용노조였던 삼성생명보험노조가 김 위원장을 상대로 '삼성노조'와 'samsung'이 들어간 인터넷 도메인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명칭 사용 금지 소송을 낸 바 있다. 삼성생명보험노조는 "삼성일반노조라는 명칭이 마치 삼성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노조이고 삼성생명 노조가 그 산하기관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으며, 성명서 등을 내면 삼성그룹 계열사 근로자들의 의사표시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재판을 맡은 인천지법 민사4부(재판장 양현주)는 삼성생명보험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은 그 규모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공적 인물에 비견되는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 설립 방해 여부는 공적 관심사에 해당된다"며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비판한 것은 회사의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며 노조 활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삼성일반노조를 '법외노조'로 볼 수 없다는 판단까지 내린 건 아니다. '법외노조'는 노조법을 충족하지 못하는 노조를 뜻하는 것으로, 재판부는 2003년 인천시가 "삼성일반노조는 법에 의한 노동조합이 아니다"라고 통보한 내용이 적합한지를 판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쟁점은 삼성일반노조뿐만 아니라 전교조 사태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전교조의 노조 설립 취소를 주장하면서 "노조 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발생하면 30일간 시정을 요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외노조라고 통보한다"(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는 법적 근거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시행령 조항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다른 제재 조치가 가능함에도 조합원 자격 요건을 이유로 노동조합 자격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다"며 삭제를 권고한 바 있으며, 현재 전교조가 이 시행령 조항에 대해 헌법상 피해최소성 원칙과 기본권 제한시 법률유보원칙·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1월15일 검찰 항소

이번 판결에 대해 김 위원장은 "10년 넘게 '법외노조' 취급을 받아오면서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직접적인 조직 확대가 아닌 삼성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과 연대의 차원에서 활동을 했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 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을 좀더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변호인을 맡은 김유정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노조법에 따른 형사처벌 규정은 설립신고증이 반려되거나 미신고된 노조에만 적용할 수 있으며, 사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삼성일반노조의 법외노조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월15일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입법 취지와 다르게 끊임없이 노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노조법 논란은 과연 법정에서 가려질 수 있을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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